[세종보 천막소식 600일 차]
2025.12.20
이 아침, 난로에 끓인 따뜻한 물에 세종동지가 만들어준 유자청 두 큰술을 탔습니다. 오늘이 세종보 재가동을 실질적으로 막아내고, 4대강 16개 보 철거를 요구하면서 농성을 시작한 지 딱 600일 되는 날입니다. 45년 되는 제 인생에 600일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습니다. 여기 세종 한두리대교 아래에서 같이 600일을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다리 밑에서 거의 매일 같이 인라인을 연습하는 아저씨입니다. 농성을 처음 시작할 때는 자꾸 넘어지고 기술도 매끄럽지 않았는데, 600일을 연습하고 지금은 달인이 되었습니다. 뒤로 옆으로, 발가락으로 뒤꿈치로 아주 그냥 날아다닙니다. 600일은 그런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천막을 비우지 않고 24시간, 600일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세종보는 꼼짝없이 열린 채로 8년째를 지납니다. 우리도 강을 600일 지냈으니, 이 강이 능숙해졌습니다. 이 강을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금강은 한결같이 흐릅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멈춰있고 그런 일이 없습니다. 강은 그렇게 흐르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동강에 가면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흐르게 태어났는데, 흐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부에는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전략이 없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4대강을 본래 모습으로 회복하는 일이 이념적이고, 정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정치적입니다. 강의 흐르는 본성에 대해 증거 따위를 보여줘야 하는 일입니까? 합리적 데이터가 필요합니까? 강의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선거 표 계산에 써서 되겠습니까?
갑자기 기러기 떼가 끼룩끼룩 소리를 지르면서 떼로 날아오릅니다. 아무래도 누가 자갈섬에 침입했나 봅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할미새는 가만히 강을 보면서 사색에 잠겼습니다. 청둥오리, 논병아리, 비오리, 원앙 물 위를 동동떠다니고, 흰꼬리수리 두 녀석이 협동 사냥을 합니다. 깝짝도요, 삑삑도요 나란히 강변을 쪼아댑니다. 천막에 등줄쥐가 들었습니다. 동지의 발등 위를 오르락내리락, 두려움도 없이 천막을 누빕니다. 떨어진 덩어리를 하나 발견하고는 앗싸 하고 채갑니다. 등줄쥐는 한타바이러스의 매개체로 유명합니다. 대전의 박사님이 덫을 설치하고 갔습니다. 이렇게 귀여운데, 어쩌면 좋을까요. 저는 물에 잠긴 새까만 강 말고, 지금 이 강이 좋습니다. 까맣게 모든 것을 물아래로 빨아들이는 강 말고, 오르락 내리락 밀었다 당겼다 운율 있는 강이 좋습니다.
23일(화) 오후 2시, 농성장에서 600일 기자회견을 엽니다. 우리는 여전히 ‘강’합니다. 우리는 이재명 정부의 조속한 4대강 재자연화 정책 추진을 촉구합니다.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확정하여 추진하도록 우리는 계속 투쟁합니다. 그리고 오는 크리스마스 오후 3시에는 농성장에서 성탄미사가 봉헌됩니다. 600일 동안 성심으로 금강을 모셔주신 신자동지들께 감사합니다. 미사를 마치고 4시부터는 투쟁 문화제를 진행합니다. 지금 이 시대, 전쟁에 농성에 투쟁에 아픔의 현장들이 너무 많아 예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음이 분주할 테지요. 아, 예수야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겠지마는, 단언컨대 여기는 들렀다 가실 겁니다. 오세요. 빈 자리 있습니다.
농성장 지킴이 나귀 드림
=============================
일시 : 12월 23일(화) 오후 2시
장소 : 세종보 천막농성장
일시 : 12월 25일(목) 오후 3시
장소 : 세종보 천막농성장
일시 : 12월 25일(목) 오후 4시
장소 : 세종보 천막농성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