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파수꾼 임상순 회원의 찐~한~ 이야기

2017년 6월 30일 | 미분류, 회원소식나눔터

“JYP 박진영이 축하 공연을 왔었죠. 당시엔 더 섹시하고 춤도 파격적이었어요. 공연도 멋지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식을 성황리에 개최했습니다. 창립식 때를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군요.”
대전충남녹색연합 20주년을 맞이하여 초대 운영위원장이시며, 씨앗자금을 내시어 단체 설립에 큰 힘이 되어주신 임상순 변호사를 찾아뵈었다. 장소는 초대 사무처장인 박정현 대전시의원의 사무실. 두 분은 빛바랜 사진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한참 회상에 젖었다. 1997년 10월 30일, 대전평송청소년수련원 대강당에서 진행던 창립 총회 사진에서 좀더 젊고, 결의에 빛나는 두 분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임상순회원 인터뷰(6013)
“96년말 배달환경연구소가 서울로 이관하면서 장원 교수가 우리 지역에도 녹색연합을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박의원은 대전YMCA에서 일하다 제안을 받았지요. 일 잘하는 박의원이 당시 사무장을 맡아서 준비 기간이 오래 안 걸리고 97년에 창립 할 수 있었습니다. 배달환경연구소가 중촌 사거리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1년 정도 있었고, 이후에는 여민회와 함께 배인학원 공간을 반반씩 나누어 썼습니다.”
배달환경연구소는 1991년에 창립했다. 금강제2휴게소 건설 반대 운동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관해 지역시민단체가 연대운동을 펼치며 ‘환경보전시민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이후 대안있는 환경운동을 주창하며 장원 교수를 중심으로 배달환경연구소가 문을 연 것이다.
“장원 교수가 주도해 환경문제 관련 특정 사안에 대해 연구하고, 실태보고서 작성까지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정종관 선생이 장원 교수와 그 일을 맡았습니다. 당시 장원 교수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고 연구도 하고, 대안을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연구와 운동을 같이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1993년에 전국조직인 배달환경클럽을 창립하게 된 겁니다.”
임상순회원 인터뷰2(6.13)
‘배달환경클럽’은 창립 이듬해인 1994년에 ‘푸른한반도되찾기시민모임’과 ‘녹색당준비위원회’와 결합해 배달녹색연합으로 재창립하였고, 1996년에 녹색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
“녹색연합은 강을 중심으로 충청, 호남, 경상 등 권역별로 본부를 꾸리고자 했습니다. 1997년 8월부터 장원, 한원규, 박경, 김규복, 간호진, 정해순, 정종관, 송태재, 박정현 선생이 모여 지역녹색연합 창립을 준비했고 그해 10월에 녹색연합 충청본부 창립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지역의 환경현안에 더 집중하기 위해 대전충남녹색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임상순 변호사는 창립 초기 3천만원 종잣돈을 기부하며 녹색연합 충청본부의 주춧돌을 만들어주셨다. 당시에도 이렇게 큰 기금을 쾌척한 사례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앰내스티(Amnesty)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단체 초창기에 설립자들이 재산을 털어 기금을 마련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금을 통해 단체가 건전하게 영속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초창기 물적 여건이 여의치는 않았습니다. 실무를 꾸릴 사람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장원 교수와 박의원이 그때 그 순간 있었고, 대전YMCA 환경문제연구회부터 수년간 열심히 활동했던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임상순 변호사는 이후에도 활동가들의 근로여건개선을 위해 앞장서 목소리를 내어 주셨고, 올해 설 명절에도 활동가들이 빈 손으로 고향집에 내려가지 않도록 살뜰히 챙겨주셨다.
“초창기에는 회원모임이 참 활발했습니다. 아들의 고물자전거를 빌려 타고 푸른자전거 모임에도 가고, 몇 해 전에는 하모니카를 배우러 음악소모임에도 참여했습니다. 99년에 재활용가게인 녹색가게가 한창이었을 때에는 옷 사러 일부러 들르기도 했습니다. 생활 속의 환경운동은 녹색연합을 알리는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후발주자로 뛰어든 녹색연합은 타 환경단체와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생활 속 환경운동을 주도했다. 운영위원들의 부인들이 열심히 참여해 녹색가게를 운영했다.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아나바다운동이 있기는 했지만, 지역에서 상설 재활용가게를 연 것은 처음이었다. 이를 통해서 회원 가입도 많았다. 녹색연합을 더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창립식을 가졌던 1997년은 우리나라가 IMF 시절이었고 귀농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귀농학교를 열며 환경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어린이환경학교, 청년환경학교, 교사환경학교, 주부환경학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단체를 알리고 회원활동을 권유했습니다. 청년환경학교 자원활동을 통해 지금 양흥모 처장도 활동가로 발탁하게 되었죠. 교사환경학교에 오셨던 이상덕 선생이 운영위원도 하셨고, 대표도 하셨습니다. 교육을 통해 지도력을 확보하고, 단체를 알리려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임상순 변호사는 녹색의 저력으로 ‘사람’을 꼽는다. 사람이 일을 망치기도 하지만, 사람이 일도 해결하고, 새로운 일도 만드는 것이니 시민운동도 시민들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가, 넓혀갈 것인가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임상순회원 인터뷰3(6.13)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녹색연합과 그 속에서 후배를 키워내며 성실하게 달려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늘 고맙습니다. 오늘 나의 부족한 기억을 도우며 함께 해준 박정현 의원께도 감사합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은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향해 쉼없이 걸음을 옮긴 이들의 발걸음으로 20주년을 맞이했다. 또 앞으로의 20년! 새로운 운동에 대한 다짐으로 또 다시 내일을 향해 길을 연다.

– 인터뷰 · 정리 : 육정임 간사(253-3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