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일 | 자연생태계

“세계문화유산 공산성, 머리통 쥐 파먹은 꼴”

[제보취재] 100여년 된 느티나무 싹둑… 문화재청 “경관 정비 목적”

15.11.01 19:55l최종 업데이트 15.11.01 20:3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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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구나무 폭 93cm, 둘레가 250cm로 한눈에 보아도 수십년 백년 가까이 자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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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에 있는 100년 이상 된 나무까지 다 베어 버렸네요.”
제보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다급하게 들렸다. 사적 제12호인 충남 공주시 공산성은 지난 7월 4일 자로 ‘백제 역사 유적지구'(공주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익산 미륵사지)에 속해 우리나라에서 열두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산성에는 연일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1일은 주차장부터 도로까지 가을 나들이로 이곳을 방문한 차량·관광객들이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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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공북루에서 만하루와 영은사가 있는 작은 언덕에서 자라던 둥구나무 폭 93cm, 둘레가 250cm가 잘려서 쌓여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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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현장을 확인한 결과, 나무가 베어진 곳은 문화재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공북루에서 만하루·영은사가 있는 작은 언덕, 공주 잠종 냉장고 뒤쪽이다. 공주시가 수목 정비라는 명목으로 베어낸 나무는 당산나무로 알려진 둥구나무부터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뽕나무, 단풍나무, 아카시아 등이다.
성곽 길 공주 잠종 냉장고 옆의 베어진 느티나무(둥구나무)는 폭 93cm에 둘레가 250cm 정도인 나무로 양팔을 다 벌려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고목이었다. 베어진 자리 일부는 흙과 톱밥으로 덮여 있었다. 이 나무는 언덕에 쌓여 있었다.
그동안 나무와 풀에 가려져 있던, 돌로 쌓아 놓은 석축도 드러났다. 중장비가 베어진 나무를 옮기면서 도로가 만들어지고 일부 석축은 무너지고 깨졌다. 나무가 잘리고 붉은 속살을 드러낸 주변에는 깨진 기왓장과 도자기 파편이 나뒹굴고 있었다.
“수호신 같은 고목이 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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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공산성 (빨간색) 헤쳐진 땅이다. 무성한 나무들이 베어지면서 황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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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메 저렇게 큰 나무를…, 큰 나무는 함부로 베는 것이 아닌데.”
“공산성 머리통에 영락없이 쥐가 파먹은 꼴이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서 왔는데 온통 공사장이다.”
안타까움에 성곽을 걷던 관광객들도 한마디씩 던지면서 지나갔다. 혀를 끌끌 차는 사람부터 베어진 고목을 향해 두 손 모아 인사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용인에서 왔다는 최이선(46, 여)씨는 이번에 두 번째로 공산성을 찾았다. 그는 베어진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안타까워했다.
최 씨는 “옛날에 한 번 다녀갔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오게 됐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르게 성곽을 걸을 수가 있다”라면서 “마을 입구에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당산나무(둥구나무)도 여기는 성곽 주변에 지천이다, 두 팔을 다 벌려도 안기 어려울 정도로 큰 나무를 무슨 이유로 베었는지 참 흉측하다”라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인근 사찰 관계자는 “수풀이 빽빽하게 우거져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봄이면 나물과 뽕나무 순을 따다 먹는 곳”이라면서 “문화재 보호한다는 문화재청 사람들은 다 뭐 하는지 공사를 하면 나와서 살펴봐야 하는데, 책상에서 펜만 굴리고 앉아 있으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내 그는 “공사하다가 문화재가 나와서 가져가도 모르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라면서 “말로만 ‘문화재 보호하자’ 그러지 정말 한심스럽다”라고 덧붙였다.
환경단체 “세계문화유산 관리 능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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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공북루에서 만하루와 영은사가 있는 작은 언덕, 공주 잠종 냉장고 옆 둥구나무 폭 93cm, 둘레가 250cm가 잘려서 쌓여있는 모습을 노스님이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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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민속식물 연구소장(공주대 식물자원학과 교수)는 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산성의 나무는 일부 잡목을 솎아내는 차원에서 제거해야지 집단으로 베어버리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자원 환경도 문화재 지정할 때 다 들어가는데 (폭 93cm, 둘레가 250cm 정도 되는) 큰 나무는 자생 수종이자 배경목으로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에 인위적 간섭이 있었다고 제보하면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나올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된다”라고 말했다.
양흥모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올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세계 사람들이 공산성과 백제 역사지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을 단풍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기에 이런 공사를 하다니 말도 안 된다”라면서 “백제 역사가 가진 가치도 중요하지만, 관리 등의 분야에서 세계문화유산에 걸맞은 행정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훼손은 공주시와 충남도,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수령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잡풀 하나부터 고사목까지 보존됐다면 그 자체로 경관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라면서 “인위적으로 훼손을 가하거나 변경을 할 때는 신중한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일반 수목 정비 사업처럼 일을 진행한다면 세계문화유산 관리 능력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양 처장은 “최근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관리 지침을 새롭게 하면서 강조한 것이 인권, 평화, 환경이었다”라면서 “유적을 훼손한 사실만으로도 공주시가 책임지고 관련 행정을 점검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백제역사지구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세밀하게 (관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아카시아 나무 많으면 성 조성 당시 목적에 맞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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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을 맞아 관광객이 밀려들면서 성곽 길을 걷고 있다. 나무가 베어진 아래쪽으로 금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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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문화재과 담당자는 지난 10월 3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문화재청으로부터 설계 승인을 받아서 수목 정비를 하고 있다, 이 정비는 12월 13일까지 진행된다”라며 “수목정비 하는 장소가 6500제곱미터 정도로 아카시아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종류인 둥구나무 등 전체 100주 정도(고사목 포함)”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로 보기에 따르겠지만, 둘레가 40~50cm 정도로 그리 큰 나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전통 수종인 소나무 180여 주 정도를 군락 식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담당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성안에 들어차 있으면, 성 조성 당시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라면서 “그래서 경관도 트여줄 목적으로 정비를 했다, 큰 나무라 할지라도 성 조성 이후에 자라서 성의 원래 모습을 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거할 필요성이 있어서 간벌했고 관람객 휴식 공간도 만들기 위한 정비였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11년 공산성 성안마을에서 1400년 전 칠(漆) 갑옷이 출토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 이 기사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56198&CMPT_CD=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