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갈 때 —갑천상류에서
여름내 사람끓던 마을어귀 느티나무
이따금 된바람에 누런 잎새 흩날리네.
해묶어 금줄삭은 이끼낀 선돌위엔
날 사나운 지푸라기 다시엮어 둘러쳤네.
도리깨 쳐 알맹이거둔 쭉정이 깻단지고
바닥보며 걸어가는 노인네의 힘든 발걸음.
땀으로 세월로 손때절은 지팡이 한짐 지게끝엔
타들어가는 고추만큼이나 더 빨간 잠자리.
신작로 반뚝 떼어 낱알멍석 깐 옆에는
잎새떨군 줄거지에 깡말라 벌어진 콩깍지들.
점찍어 찬서리피할 호박 영금질 매듭할 때,
여름의 무게만큼 씨알 무거운 해바라기.
부쩍이던 여름물가 무심뱉은 씨앗들이
뙤약볕 고독하게 수박되고 참외됬네
맘급한 물고기들 색곱게 물들이고
짝찾고 부모몸짓 여울속을 후벼파네.
지레뛰는 길앞잡이에 길내주어 따라가면
주인몰래 붙어앉은 도꼬마리 귀여운 놈들.
개울가 허연털갈대 한바람에 도열해 춤추면,
때 이른 북녘오리 삼삼오오 와서노네.
해마다 터 찾아준 제비집은 주인보내 쓸쓸한데,
제비똥 허드렛일 줄어 웃음짓는 쥔할매.
밭일 바빠 텅빈집마당 볕쪼이는 가을열매
귀한곡식 후질를까 꽉묶인 백구 늘어져자네.
한소끔 밥짓는 연기 해거름 석양에 섞일때
하룻볕 쬐인 가을걷이들 또내일의 가을볕을 기약하고
비로소 두 다리 쭉펴고 누운 가을깊은 노곤한 밤
제 짝 찾아 목청올린 귀뚜리 날밤새며 울어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