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심사 즉각 중단하고
경제성 없는 신규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 건설 추진을 철회하라!
1983년 가동을 시작한 고리 2호기는 이미 설계수명 40년을 초과한 낡은 원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수명연장 절차를 강행하고 있으며,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원안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최후의 방파제이지만, 지금 그 책무를 저버리고 ‘안전 규제자’가 아닌 ‘산업 추진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행태이다.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심사는 중대사고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PSA)를 축소하는 등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 세계 원전 규제기관들이 중대사고 대비 강화와 최신 기술기준 반영을 강화해 온 반면, 원안위는 이를 무시한 채 ‘공학적 판단’이라는 불투명한 기준으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PSA에서 도출된 상위 사고경위 중 절반 이상이 “예방 가능하다”는 이유로 배제되었고, 수소폭발이나 격납건물 과압 등 필수적 중대사고 평가 항목들이 자의적으로 제외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원자력안전법」 제1조가 규정한 ‘국민의 안전 확보’라는 법의 목적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더욱이 원안위는 국제 기준조차 따르지 않고 있다. IAEA와 WENRA가 명시한 안전성 강화 지침에는 중대사고 관리지침(SAMG)과 PSA 인사이트의 전면적 활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고리 2호기 심사는 이들 국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원안위 스스로 만들어 놓은 안전고시조차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규제기관이 스스로 정한 기준을 어기고 사업자 편의를 위한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규제가 아니라 면죄부 발급일 뿐이다.
안전성뿐 아니라 경제성 평가에서도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은 정당성을 상실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공식 분석에 따르면, 80개월 연장 운전 시 118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운전 기간이 더 줄면 적자 규모는 900억 원대로 커진다. 최근 평균 이용률이 60% 중반에 그치고, 신고리 5·6호기 가동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이어지면 이용률은 더 하락할 것이다. 한수원이 추산한 3,100억 원의 투자비는 실제 안전기준을 모두 충족할 경우 조(兆) 단위 비용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후쿠시마 이후 원전 1기당 약 5조 원을 안전설비 보강에 투입했다. 안전성 보강비와 폐로 비용까지 고려하면,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은 국민 부담만 가중시키는 적자 사업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러한 노후 원전 연장은 더욱 위험하다. 해양수온 상승으로 냉각 효율이 떨어지고, 냉각계통 설계 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고리 2호기 인근 해역의 여름철 해수온은 이미 설계해수온도(31.5 °C)에 근접하고 있으며, 이 한계를 넘으면 발전소는 냉각 기능 저하로 운전 정지에 이를 수 있다. 일부 원전은 설계해수온도를 임의로 상향 조정했지만, 이는 냉각계통을 개선하지 않은 채 기준만 올린 위험한 편법에 불과하다. 열교환기 등 냉각설비 교체 비용은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어, 노후 설비 유지 자체가 비효율적이다.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은 안전성과 경제성, 그리고 기후적합성 측면에서 모두 파산 상태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고리 2호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는 ‘차세대 원전’이라는 이름으로 SMR(소형모듈원전) 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위험의 규모를 분산시킬 뿐, 근본적 안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SMR 역시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 폐기물 문제를 회피하지 못하며, 기술 상용화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를 강행하는 것은 또 다른 ‘실험적 도박’이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지역 공동체의 안전과 생태계를 위협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지연시키는 퇴행적 정책이다. 정부와 산업계가 ‘탄소중립’의 명분 아래 핵발전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기후위기를 빌미로 한 위험의 재생산일 뿐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안위는 심사 과정의 주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중대사고 시나리오와 PSA 결과를 비공개 처리했다. 「원자력안전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훼손한 불투명한 행정이다. 또한, 심사위원 선정과정 역시 산업계 중심으로 이루어져 이해충돌 소지가 크며, 시민 참여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원안위는 “안전 규제의 독립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에 종속되어 있으며, 국민이 아니라 사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2차 사업부서’로 전락했다. 노후원전 수명연장에서도 이런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원안위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SMR에 제대로 된 규제를 할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원안위가 해야 할 일은 산업 논리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규제기관의 본분을 회복하는 것이다.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심사는 중대사고 시나리오 배제,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 축소, 국제 기준 불이행, 경제성 상실, 기후위기 대응 부재 등 다중적 결함을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 SMR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추진은 동일한 위험 구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정책이다.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정책적 정당성을 모두 상실한 절차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심사를 즉각 중단하라.
둘째, SMR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전면 철회하라.
셋째, 중대사고 대비와 기후위기 리스크를 반영한 안전성 재평가를 실시하라.
넷째, 심사 과정과 PSA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
다섯째, 독립적 규제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시 세워라.
국민의 안전보다 우선하는 원전은 없다.
원안위와 정부가 지금의 길을 계속 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니라 국민 안전에 대한 배신으로 기록될 것이다.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심사를 멈추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