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다들 안녕하신가요? 금강 지킴이 나귀 도훈입니다.
큰비가 지나가도 더위가 식을 줄 모릅니다. 태풍이 불어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고요. 지구가 안 좋기는 안 좋은가 봅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기후위기를 음모론 취급하는 사람들이 성황리에 정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외침이 ‘참 미약하다‘ 싶다가도, 기꺼이 투쟁의 자리에서 함께 땀 흘리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못 먹어도 고’ 해야지 싶습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세종보 재가동 반대 농성 천막이 딱 123일 차를 지납니다. 민주적 절차고 뭐고, 시민의견 수렴이고 뭐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할 거라는 정부가, 세종보를 재가동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5월 초입니다. 우리는 4월 29일에 세종보 상류, 수문을 닫으면 수몰되는 지역에 천막을 쳤습니다. 지금 세종보는 열려있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이곳 금강 변에서 119일 동안 강을 지켰습니다.
만약 세종보 수문이 닫힌다면, 4대강 16개 보는 고스란히 닫히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나라 물정책은 고스란히 12년 전 이명박 정부 당시로 회귀됩니다. 세종보는 2017년 11월 완전개방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열려있고, 자연성 회복의 상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요. 세종보는 수문이 닫혔을 때의 문제점과, 수문을 열었을 때의 회복 상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거지요. 그런 세종보를 지금 정부는 다시 닫으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낙동강에서는 녹조 소식이 연일 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8일부터 3일 동안 직접 낙동강과 내성천 영주댐에 가서 녹조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왔어요. 낙동강에는 4대강 16개 보 중 8개의 보가 설치되어 있어요. 낙동강은 초속 2cm로 흐르고 있어요. 걸음보다 몇 배나 느립니다. 그러니, 사실상 멈춰있는 거예요. 기온이 34도인 날, 낙동강 수온은 32도~34도를 오갔습니다. 영주댐 온도는 36도였어요. 방수 페인트를 뿌린 것처럼 온통 녹색 곤죽으로 떡 져있었습니다. 곤죽을 걷어내도, 그 안에는 ‘물’이랄 것 없이 녹조로 가득 차 있었어요. 악취와 날파리 때문에 접근도 힘들었습니다. 청산가리보다 6,600배 독한 간독성, 신경독성, 생식독성 녹조 독극물이 영주댐부터 낙동강 전체에 흐르고 있었어요. 낙동강은 영남 주민들의 식수이고, 농업용수입니다. 녹조 독성 마이크로시스틴은 농산물에서도 발견됐고, 인근 아파트 거실에서도 검출됐습니다.
대청호에도, 소양호에도, 팔당호에도 연일 전국에서 녹조의 소식이 들립니다. 소양호 상류는 50년만에 처음인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이에요. 장마 이후에 비가 뚝 그치고,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녹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어요. 녹조의 3요소인 영양물질, 기온, 유속 중에 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오염물질은 계속적으로 저감 노력을 하고 있고, 4대강 사업 당시보다는 오염물질의 유출량은 줄었어요. 기온은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요. 그렇다면 ‘유속’ 하나가 남지요. 간단합니다. 수문을 열면 유속이 확보되고, 녹조는 개선됩니다. 낙동강 물은 초속 2cm로 속수무책으로 햇빛에 달궈지는 반면, 금강 세종보 구간은 힘차게 흐르고 있고 녹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문을 개방하지 않으려고 모르는 척, 쉬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의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흐름을 빼앗기고 느려진 강물, 거기서 창궐하는 녹조, 떼죽음당한 물살이들, 강바닥에 쌓인 악취 펄과 거기 득시글한 붉은 깔따구 유충과 실지렁이들,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큰빗이끼벌레. 우리는 15년을 싸웠습니다. 가까스로 수문을 개방했고, 보 처리방안도 마련했어요. 그런데 이 정부는 이 모든 과정을 무위로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분노하고 있어요.
여기 금강에서 119일을 지내면서, 점점 더 확신이 생깁니다. 어떻게 해야 강이 살게 되는지요. 4월 29일, 알 상태로 이곳에서 만난 흰목물떼새들이, 이제는 비행 연습을 마치고 독립을 준비합니다. 어린 박새도, 어린 수달도, 어린 고라니, 어린 꾀꼬리, 어린 황조롱이, 어린 참새… 이곳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흰수마자도, 미호종개도 보았구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수염풍뎅이도요. 이 생명들을 지키고자 천막을 쳤습니다. 끝까지 지켜낼 겁니다.
세종보 재가동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비웃고, 비아냥거립니다. ‘돈 벌어 먹고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합니다. ‘너희들에게 가는 세금이 아깝다.‘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강을 지키기 위해, 생명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우린 나라에서 보조금 같은 거 안 받아요. 그래야 치열하게 싸우지요. 우리 뒷배는 따로 있지요. 바로 여러분이 우리 비빌 언덕입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멋있게 싸울게요. 세밀하게 지켜보고, 응원해 주세요.
지금 막 너구리 한 명이 지나갑니다. 이제는 뛰지도 않아요. 고라니도 두 명이 지나가네요. 강은 평안합니다. 녹색 벗님들도, 두루, 안녕하세요.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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