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정호(대전 서구 관저동)
지난 5월 28일 하늘 맑은 토요일 아침, 대전녹색연합주관의 농촌마을체험 투어를 아내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목적지는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배바우 마을. 차창에 펼쳐진 대청호와 금강의 싱그러움과 이를 끼고 도는 웅장한 산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느덧 이름도 정겹거니와 4~5년 전 동네 지기들 몇 가족이 함께 와 하루를 묵은 예쁜 추억이 서린 배바우에 도착한다. 오늘 도착한 곳은 ‘배바우 공동체’란 곳이다. 마을의 삶인 생산에서 판매, 그리고 도농연계 농촌체험사업 또 현지 노인들의 한글 교육까지, 한때 동네에 젊은이가 없어 생기가 없던 마을에 다시 미쁜 생기를 불어넣는 곳이라고 한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이 곳 강당벽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그림 작품이 초등학교 학예회 한 켠의 그림 전시를 보는 듯 그 아이같이 귀엽고 익살스런 그림일기 솜씨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태반 연세가 90이 다되신 분들이 ‘어찌 저리 순수하실까’. ‘아직도 해맑음이 남아계시구나’ 감탄하다가도, 한편으론 행간이나 꼬리글에 뭔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분들 자녀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있으리라. 마을 이장님과 ‘배바우공동체’ 스텝분들의 마을 현황 설명을 들으며, 귀촌을 꿈꾸는 우리 부부는 한껏 부푼 꿈을 꾸어본다.
배바우 마을은 안남면 연주리(蓮舟里)의 다른 이름으로 도덕리 덕실 부락 냇가에 마치 배(舟)처럼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란다. 오래전 이 마을에는 ‘배바우가 물 속에 잠기게 될 것이며 그 앞의 넓은 들은 호수가 되어 배를 띄우게 되고 포구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대청호가 생기고 1987년 금강홍수 때 대청호 물이 면소재지로 범람하여 지금의 면사무소 잔디밭에 살던 수십 가구가 산 위로 이주했다고 하니 허튼 전설이 아니게 되었다.
산과 강에 둘러싸인 이 배바우 마을은 대청호 수질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대청호의 시원한 자연, 금강의 풍부한 관광자원이 마을주민들의 넉넉한 인심과 어우러진 곳이다.
이런 청정한 기운이 풍수지리적으로 모이고 강을 따라 외부와 소통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아서인지 다양한 채널의 정부 예산 지원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예로 충청북도의 우수 정보화마을로 선정되어 토마토, 우리밀, 옥수수 등 친환경 재배 농산물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판매한 성과를 인정받은 일,
농식품부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권역으로 선정 작년 2015년까지 총 58억원의 사업비로 ‘로컬푸드 네트워크’ 기반 시설에 투자되어,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재(액비, 미생물 등)지원 시설, 품질관리 선별 포장시설 등을 갖춘 일,
도농교류 체험프로그램과 농산물 직거래 장터 활성화로 안전행정부의 마을기업 육성사업 대상으로 ‘배바우 지역홍보와 장터운영사업’이 선정된 일이 그것이다.(전국농민총연맹 홈페이지 참조)
부푼 꿈을 잠시 뒤로하고 우리 30여명 일행은 인근의 토마토 농장으로 농산물 수확 체험에 나섰다. 대형 비닐하우스를 갖춘 곳으로 지하수를 이용한 자동 급수시스템을 뿌리에 둔 토마토는 긴 넝쿨은 천정에 매달고 탐스런 열매를 뽐내고 있다. 우리 일행의 절반인 어린 친구들은 엄마와 함께 각자 주어진 작은 상자가 넘쳐라 이리 저리 살피며 서툰 가위질에 신들이 났다. 우리 집사람은 상자에 담기보다는 맛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배를 채우기 바쁘다. 해마다 한두번 지인들을 통해 맛을 보게되는 이 곳 토마토는 그 맛이 과연 남다르다.
수확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노라니 벌써 점심 시간. 과연 시골 밥상. 올갱이 아욱국에 생야채 겉절이, 채소말랭이 볶음류 등 재료부터 맛까지 정과 성이 넘친다. 2%가 아쉽다면 ‘이거 전부 최고 안주감인데’ 막걸이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금강이 휘감아 돌아 마치 한반도 형상을 하여 그 전망대로 유명한 ‘등주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작은 개천을 건너 면사무소 쪽으로 나오니 장이 섰다 매월 한번 열리다가 최근에 토요일 마다 열리는 소박한 시골장터다. 지역에서 직접 생산한 옻순, 두릅, 무 농약 토마토, 감자, 옥수수, 밀, 보리쌀 등, 저렴한 친환경농산물들이 좌판에 벌어진다. 물론 생산자-소비자의 직거래이다. 지나치던 중 아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대전에서 마을어린이도서관 봉사를 하시다가 이 곳으로 귀촌하여 사는 분들이란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이 분 들의 자녀 덕에 이 곳 시골 초등학교가 폐교를 면하게 되었다는 말에 흐뭇해진다. 동네 청년 한 분이 우리 산길을 위해 길지기로 나서셨는데 구수한 말솜씨로 앞선이 뒷선이의 말동무가 되어주신다. 사위질빵, 며느리밑씻개 잎줄기를 꺾어 들고 듣는 그 이름의 유래가 참 정겹다. 산정상은 과연 일품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넘어 저 드넓은 만주벌판 아시아 대륙이 아득히 펼쳐진다. 남녘 전라도와 경상도 모양이 살짝 바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전망대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보니 완벽한 한반도 지형이다. 하산하는 길엔 일행과 조금 쳐져서 오붓하게 아내와 음악을 들으며 살림욕을 즐겼다. 하산해서 쑥개떡 만들기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10년 뒤 우리 부부의 농촌 삶을 그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