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서암 큰스님 어록-

2009년 12월 22일 | 회원소식나눔터

내 그림자에 속지 말거라
스님께서 노환으로 누워 계시던 때이다.하루는 옆에 있던 시자에게 문득 말씀하시었다.”내 그림자에 속지 말거라.”
“스님, 좋은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좋은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모양인가?부처님과 다른 옛 성현들이넘칠 만큼 좋은 말씀들을 해 놓았지 않는가?하나라도 실천해야지.”
앞길
“스님. 스님은 자신의 앞길에 대해 자신 있습니까?””앞과 뒤, 그런 망상하지 마라다만 이것일 뿐이다.”
부처가 병들었다
어느 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가 병들었다.
부처님은 병들고, 생각많고, 갈등많고, 가장 복잡한 분이다.
부처님은 병들지 않을 수 없다.나도 부처님을 만나 병들었다.
“”왜 병들었습니까?”
“헤매는 그대의 모습을 보고서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모든 경계가 다 꿈이다.꿈이 꿈인 줄 바로 알아야 한다.
“”꿈 아닌 소식은 무엇입니까?”
“꿈이 ‘꿈 아닌 소식’이다.”
“꿈이 ‘꿈이 아닌 소식’이 되는 이치는 무엇입니까?”
“꿈과 ‘꿈 아닌 소식’을 나누니 보따리가 많구나.
그렇게 보따리가 많으니 꽤 무겁겠구나.”
오도송
계룡산 나한굴에서나고 죽는 것이 없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하는데오도송을 읊으셨습니까?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그런 거 없어.”
열반송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한 평생 사시고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
“할 말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달리 할 말이 없다.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그렇게 갔다고 해라그게 내 열반송이다.”
사리
“생(生)을 어떻게 정리하시렵니까?”
“이 좋은 그대로””극락과 같습니까?”
“같다”
“스님. 다비하고 사리가 나오면 어떻게 할까요?”
“사리는 대보살(大菩薩)이나 나오지, 나는 나오지도 않는다.찾을 생각 말아라.”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스님꼐 시자가 여쭈었다.
“스님, 30년 후에 누가 스님의 소식을 물으면뭐라고 대답할까요?”
“……”
“말씀 안 해 주시겠습니까?”
스님께서 고개를 가로 저으셨다.
“말씀 해 주실래요?”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그때 저도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본래면목(本來面目)
“스님, 누워 계시면서 무슨 생각 하십니까?”
“아무 것도 안 한다.”
“목석(木石)도 아니신데 무슨 생각이라도 하실 것 아닙니까?”
“……”
“법을 아끼시지 말고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고 있다.”
“본래면목을 아직도 못 찾으셨습니까?”
“찾기는 벌써 찾았지.하지만 찾고 또 찾고 자꾸 찾는다.너도 자기 면목을 부지런히 찾거라.”
하루는 떡이 너무 많아서 시자가 여기저기 나누어 준 적이 있었다.
“절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좋지만,수행자가 배만 부르면 되는 것이니두고두고 밥 삼아서 먹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쉽게음식을 처리하느냐?”고 꾸짖으신 일도 있었다.
동지 때에는 팥죽이 많아 걱정을 하면,”원적사에 혼자 살 때에는 한 달 동안 팥죽만 먹은 일도 있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공부만 잘 했다.”고 하시어팥죽이 바닥날 때까지 그것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나물 반찬 남은 것을 몰래 파묻었다가,스님이 아시고는 다시 파다가 씻어서 같이 드신 적도 있었다.
거제도 토굴에 계실 때, 시자가 잠깐 외출을 하고 오니스님께서 몹시 노한 모습으로 계셨다.
누가 다녀가면서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음식을 내다버렸는지,무엇을 한참 찾고 계셨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으신 모양이다.
“너 또 음식을 함부로 버렸구나.””아닙니다.
스님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상한 음식으로 알고 어디 파묻었나 봅니다.”
결국 그 넓은 토굴 주위를 몇 시간 동안 여기저기스님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삽질하면서 땀을 흘려야만 했다.
한번은 누가 우유를 많이 갖다 놓은 것을 시자가스님께서 잘 안 드신다고 한쪽에 미루어 두었던 것이 상하였다.
시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것을 보시고,”우유가 상했구나. 상한 음식도 끓여 먹으면 괜찮다.끓여서 같이 먹자”고 하셨다.
시자가 상한 음식을 차마 스님께는 드릴 수 없어서혼자서 몰래 끓여 먹은 적도 있었다.
일력(日曆)종이로는 메모지로도 쓰시고 화장실에서도 쓰셨다.
편지를 받으시면 겉봉투를 뜯어 안쪽 면은 메모지로 쓰셨다.
코를 풀고 난 화장지는 바닥에 잘 펴서 말렸다가, 화장실에서도쓰시고 붓글씨 쓰시다가 바닥에 묻은 먹을 닦아내는 데에도 쓰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양말 젖는다고 맨발로 다니시곤 했다고 한다.
여름철에 모시옷을 입고 외출하셨다가 비에 젖어 돌아오시면,왠만하면 다시 빨아서 풀을 할 텐데 극구 “그럴 필요 없다.”시며방바닥에 잘 깔아 말려서 입으셨다.
하루는 풀먹이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다.
보통 옷에 풀을 먹일 때에는 풀을 쑤어서 대야에 담은 옷에부어넣고 치대는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다.
우선 대야에 옷을 넣으시고는작은 찻잔을 가져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찻잔에 조금씩 풀을 담아 옷에 부어 치대시고, 다시 조금 부어치대시고, 끝내 그렇게 조금씩 부어 옷을 다 풀 먹이시는 것이었다.
냄비에 남은 풀이 조금 있었는데, 방에서 쓰시던 좌복피를가져오라고 하시어 남김없이 풀을 사용하셨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시자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혹 빈방에 전등이라도 켜놓은 것을 발견하시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희 아버지가 한전 사장이라도 되느냐?”
모든 게 다 시주의 은혜로 충당하는 것인데,시주가 절에 아까운 돈 갖다 주는 것은 스님들이 공부하라고하는 것이거늘 왜 필요 없이 낭비하느냐 이 말이야?”
늘 스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셨다.
누가 차를 사드리려고 하면 다른 말씀을 하신다.
“나에게는 이미 좋은 차가 있다.기름도 필요 없고 어디 주차시킬 걱정도 없다.이 두 다리만 있으면 다른 차들이 못 가는 산이며 강이며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갈 수 있다.게다가 서울 가면 늙은이라고 해서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도공짜로 타고 다닌다.우리나라가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이긴 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회자되는 스님의 몸에 밴 검박한 생활은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스님의 공양상에 몸에 좋다는 음식이 올라가면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고목(枯木)에 비료줘 봐야 필요 있나?
너희들이나 먹어라.”
시자가 꿈을 꾸었는데,공교롭게도 꿈이 여러번 현실에서 들어맞았다.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해서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제가 아주 묘한 꿈을 자주 꿉니다.”
“지금도 꿈 속에 있으면서,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느냐?그런 정신없는 소리 하지 마라.”
원적사에서의 일이다.
스님께서 화장실에 들어가 계신 것도 모르고제자 둘이 화장실 밖에서 스님 흉을 보고 있었다.
평소 스님의 꾸지람은 극성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에제자의 입장에서는 간혹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흠.”하면서 스님이 화장실에서 나오셨다.
순간, 목청 높여 흉을 보던 한 제자의 얼굴이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러나 스님은 모른 척하며 지나가셨다.나중에 다른 한 제자가 스님방을 찾아갔다.
“스님. 저는 스님 욕 안했습니다.”
“나도 아무 것도 안 들었다.”
너 하기에 달렸다
병이 깊이 들어 생사의 기로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출가해서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여 살면서삶을 마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단의 규정은 병든 몸으로출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출가는 하고 싶고, 사정은 어렵고 해서 고민 끝에 스님을 찾아와 여쭈었다.
“이렇게 병이 깊은데 출가할 수 있습니까?”
스님은 단호히 말씀하셨다.
“산문(山門)은 항상 개방되어 있다.너 하기에 달렸다.”
그는 스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어려운 행자생활을 거쳐서마침내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뒤에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병든 사람에게 계를 주는 것을주변에서 강력하게 만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시자가 다른 큰스님들의 인품에 대해꼬치꼬치 캐물은 적이 있었다.
“니가 무슨 수사관이냐? 쓸 데 없는 데 관심이 많구나.니 방에 가서 공부나 하거라.”
스님께서는 신도들에게 먼저 부탁하는 것을 꺼려하셨다.
물론 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셨다.
혹 찬거리가 없어서 신도에게 부탁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있는 것 가지고 아무렇게나 배만 부르게 먹으면 될 일이지,왜 쓸데없이 연락해서 사람들 귀찮게 하느냐?잘 먹고 잘 입으려고 중 되었냐?그런 식으로 내 옆에 있으려면 당장 짐 싸서 떠나거라.”
하루는 스님께서 먼저 돌아가신 도반스님의 제자를찾아가신 적이 있다.
그 도반스님의 제자에게,”너희 스님은 한번 가더니 오지도 않고…편지도 없고 전화도 없지?”
“예, 스님.”
“참 야속한 사람이다”옆에 있던 시자가 여쭈었다.
“그러면 스님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다시 오시겠습니까?”
“그래, 공부 잘 하면 내가 오지.”
원적사에서 도량 주변의 풀을 벨 때의 일이다.
다 벤 풀을 거두어 치우는데, 법당 뒤에 솟은 학바위의 풀들은옮기기가 힘들어 한쪽에서 태운 적이 있었다.
무심코 태웠는데 그 불기둥이 대단하여자칫 화재로 이어질 염려가 될 정도였다.
당시 스님께선 봉화 무위정사 토굴에서 기거하셨다.
그날 저녁 원적사로 스님의 전화가 왔다.
“원적사에 뭔 일 있지?”
스님께서 먼저 전화하시는 일은 없으셨다.
스님의 말씀에 크게 당황스러웠으나,낮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부주의를 참회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시자가 마당에서 여신도와 잡담하는 것을스님이 보시고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저 놈 ** 놈 아이가!”당시 시자는 ‘별 말씀을 다 하신다’며 스님의 말씀을 흘려들었다.
그러나 훗날 세심하고 깊은 스님의 뜻을 헤아리고크게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 어떤 경우에는 참선해라 하시고,어떤 경우에는 염불해라 하시고또 어떤 경우에는 진언해라 하시는데, 왜 그러십니까?”
“세모난 그릇에 물을 부으면 세모나지만,세모난 물을 부은 것은 아니거든.
마찬가지로 네모난 그릇에도 네모난 물을 부은 것은 아니지.
사람들의 그릇도 저마다 달라서 여러 수행법을 제시하지만,그것들이 다른 것 같아도 근본원리는 똑같은 거다.”
어느 날, 시자가 떨어진 고무신을 꿰매고 있는 모습을스님이 보시고는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그래. 중 노릇은 그렇게 수수하게 하는거다.”
“스승이란 무엇입니까?”
“스승이란 제자의 인생을 내다보고, 그 제자가 바른 길을 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선방 다니는 제자들이스님의 시봉을 걱정하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나는 시봉을 받으려고 너희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옆에 있어도 공부에 장애가 없고도움이 된다고 생각될 때 그때 오너라.
부모형제 버리고 부처를 구하고자 출가한 사람들이이 늙은이가 혼자 있다고 해서 공부를 주저해서야 되겠느냐?
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내 평생 혼자 이렇게 살아왔다.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러 가거라.”
스님께서 원적사를 다녀가실 때의 일이다.
자동차가 없어서 산 아래까지 걸어 내려가셨는데,새로 주지를 맡은 제자가 모시고 따라갔다.
산 아래까지 다 내려가서 문득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중은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루는 시자가풀 먹인옷을 다리미로 다리는 광경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공부하는 수좌가 뭔 옷을 다리냐?
그냥 밟아 입으면 되지.”하루는 시자가 오래 입어서 헤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 수좌는 그런 거 입어도 된다.”
한여름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게 났다.
시자가 땡볕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았다.
스님께서 그 광경을 지켜보시다가 말씀하셨다.
“중은 일을 수행삼아 조금씩 하는 거다.한꺼번에 일처럼 해서야 되겠느냐?”
제자가 다른 곳에 살다가 스님을 뵈러 원적사에 올라갔다.
마침 배관이 잘못되어 스님이 땅을 파헤치는 작업을 하고그 옆에서 스님이 지켜보고 계셨다.
제자는 곧장 걸망을 내려놓고 삽을 들고서 같이 작업을 했다.
“그래, 중은 그래야 된다.남의 절에 가더라도 누가 일하고 있으면자기 일처럼 같이 거들어야 되는 거다.그게 우리 절집안의 전통이다.”
후원에서 과일즙을 짜서스님께 올려드리라고 시자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시자는 스님께 과일즙을 올려드렸다.
그러나 별 생각없이’후원에서 해 올린 것’이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과일즙을 올려드렸다.
하루는 스님께서,”이거 니가 했나?”
“아닙니다.”
“니가 하지 않았으면서 왜 아무 말 않고 니가 한 것처럼 하느냐?”
“스님, 주무실 시간입니다.”
“잠자는 시간이 따로 있나?스스로 잠자고 싶을 때가 ‘내가 잠자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