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의 독서일기 5
글/권혁범 회원
회색인의 독서일기라는 글을 주제로 연재해 주실 권혁범 회원님은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2009년 2월 부터 홈페이지에 회색인의 독서일기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계신데요, 초록이메일을 통해서도 회원님께도 발송할 예정입니다. 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지나간 호는 회원님의 홈페이지 두 번째 면 http://dragon.dju.ac.kr/~kwonhb/bookweek.htm 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21. 영화 <이키루 Ikiru>
내가 아주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이다. 젊은 시절 민족주의자였던 나는 구로사와가 명감독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가 일본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작품을 전혀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지는 치기였다. 민족주의를 벗어나면서 일본 영화 및 사회에 대한 관심, 우월감도 열등감도 없는 관심이 커질 수 있었다.
한 공무원 중년 남자가 암에 걸리자 그냥 무너져버린다. 30년간 시계추처럼 출퇴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그는 자신이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술집, 재즈 바, 무도회, 홍등가를 배회했던 그의 최종적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구로사와의 스토리텔링과 미장센은 탁월하다. 아쉬운 점은 그의 대표작 <나쇼몽>과 이 작품에서도 드러나듯 가부장적인 미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22. 이득재,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소나무, 2001)
저자는 생존에 관한 짐을 가족에게 맡기는 국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교육, 의료, 주거문제 등에 관련해서 근대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책임을 방기함으로써 가족주의가 더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지원이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는 개인이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핏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집안의 어른이 입원한다고 생각해보자. 전체 가족이 총동원되어서 그를 간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의 시민들은 유달리 ‘가족애’를 강조하게 된다. 가족애는 유사시에 대비해서 들어놓는 일종의 사적 보험이다. 이득재는 가족을 통해서 개인을 등쳐먹는 국가를 ‘절도정’이라고 까지 부른다. 내용이 좀 선언적이고 지적인 흥분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게 아쉬운 점이다. 대학 2,3학년 수준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3. 앙드레 고즈 Andre Gorz, ������에콜로지카 Ecologica������ (생각의 나무, 2008).
오스트리아 출신의 생태 사상가/언론인인 저자는 자본의 수익성의 필요에 따라서 생산된 욕망이 오늘날 환경문제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해결책은 ‘덜 일하고 덜 소비하는 것’ 이외의 방법밖에 없다. 필요는 줄이고 자율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자동차는 무한한 독립성을 주는 것 같아도 운전자는 수리 센터, 정유소, 석유, 전문가, 교통경찰, 도로에 의존하고 있으며 “오직 제 3자만이 공급할 수 있는” 수많은 유료서비스와 산업 제품을 소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볼프강 주카만의 “파국을 향해 가는 자동차”론이나 이반 일리치의 “자동차는 그것만이 좁힐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낸다”는 주장과 한배를 타고 있다. 우리는 쇼핑센터가 멀어서 자동차를 타는 게 아니라 자동차 때문에, 걸어갈 수 없는 거리에 쇼핑! 센터가 들어서게 되는 역설에 갇히게 된다. 깊이 있는 통찰이 많은 책이다. 주로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하기 때문에 내용이 만만치 않다. 대학 4학년이나 대학원생 수준으로 보인다.
‘환경정치론’ 시간에 자동차의 반생태적 성격에 대해 열띤 토론 시간을 가진 후 후 퇴근길 주차장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교수님도 자동차 타시네요!” “응, 소형차야” “아방테는 중형차예요 교수님!” “아니야 소형차야!”
내년에는 이 주제를 뺄까? 아니면 자가용이 없이 사는 방법을 연구해볼까….
24. 안연선,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 (삼인, 2003)
‘종군 위안부’라는 말은 얼마나 기만적인가? ‘성노예’가 적합한 표현이다. 또한 ‘할머니’라는 표현도 쓰지 말자. 그 이유를 모른다면 여성학을 좀 더 공부해야 한다.
이 책은 ‘일본군 성노예’ 여성과 그들을 성노리개로 삼았던 일본 군인들에 관한 ‘보고서’다. 큰 장점은 당사자 여성과 군인들에 대한 인터뷰에 기초하고 있고 그래서 리얼리티와 설득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한국 대 일본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이 문제가 민족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는 점을 은폐한다고 본다. 이것을 ‘민족적 수치’ 혹은 ‘치욕’으로 보는 한국 남성들의 시각은 ‘종군위안부’가 몇십년간 침묵할 수 없었던 이유, 즉 가부장적 순결주의와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또한 ‘자발성이냐 강제성이냐’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 방법은 일부 매매춘 여성 (주로 일본인이었지만)을 주변화하거나 침묵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성과 문화의 정치학> 교재로 오랫동안 사용! 한 책이다. 학생들은 이 주제에 관해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몰랐던 생생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이론적 설명이 많은 1장을 제외하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25. 공진성, ������폭력������ (책세상, 2009)
우리는 흔히 ‘폭력’하면 길거리 싸움이나 폭력배를 생각한다. 하지만 폭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조직이다. ‘조직 폭력배’라는 말에서 보이는 것 처럼 한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폭력은 그만큼 위험하고 무섭다. 국가도 폭력 조직이다. 깡패와 다른 점은 헌법에 의해서 그 폭력이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얘기하듯 근대국가의 딜레마는 평상시에는 시민들의 폭력적 성향을 억제해야 하지만 (폭력 순치!) 전쟁을 대비해서 타민족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적 훈련을(폭력 충전) 평상시에 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폭력을 충전하는 일은 위험하다. 사용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래서 조용히 그것을 방전시키는 방법이 요구된다.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은 사람, 그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불과 140페이지에 불과하고 ! “訃 8500원밖에 안한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4731.html ‘세계는 주목하지 않았다-김연아/WBC 신드롬’ ������한겨레21������ 2009.4.13.
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904130125&main=1 ‘퇴임 후 존경받는 대통령 되기,’ ������동아일보������ 2009.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