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왈(曰)
춘추전국시대, 민중이 배가 고파 자기 아이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잔혹한 시대였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것은 배고픈 민중을 배부르게 할 부자나 재벌이 아니었다. 혼돈의 시기, 그 시대를 향해 진실과 옳은 것을 부르짖던 이들이 많았다. 오히려 모른 체 하는 정부관리들과 특권계층에게 가난한 민중을 살펴보고 너희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외침이 곳곳에 넘쳐났다.
지난 3월 30일, 묵점 기세춘 선생을 통해 만난 묵자는 그 시기에, 아주 혁명적인 이야기를 외쳤던 독보적인 인물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겸애설’의 주창자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던 사람으로 막연하게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단순히 사랑을 외쳤던 이는 아니었다.
천하 대소 국가는 모두 하느님의 고을이며, 今天下無大小國 皆天之邑也
사람은 어른 아이 귀와 천을 불문하고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다. 人無幼長貴賤 皆天之臣也.
그러므로 하느님은 너희에게 서로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고, 是以知天必欲人之相愛相利
서로를 미워하고 해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而不欲人之相惡相賊也.
(墨子/法儀)
그의 사랑은 남녀노소의 평등과 국가 간의 평등을 기초로 한 평화였다. 태평천국운동에서 홍수전이 외친 남녀평등이 혁명적이었던 것처럼 묵자의 사랑은 평등과 평화의 개념을 포함한 혁명적 사랑이었다.
그는 반전주의자이기도 했다. 전쟁은 자기 아버지가 전쟁에서 죽으면 아들이 상을 받는 식인종의 문화로, 백성들이 전쟁에 쓸 무기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재화의 초과소비로 보고 전쟁을 하지 말 것을 외쳤다.
그는 소비에 대해서도 백성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 것(지배계급의 우월성과 과시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낭비에 불과하고 물건이 그 목적대로 쓰여지는 것 이상으로 생산되는 것은 과잉생산이고, 초과소비임을 지적했다. 후한 장례나 상례 등으로 노동시간을 과하게 빼앗는 것도 그는 노동력의 과잉착취라고 말한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그의 말은 한정된 자원을 마치 영원할 것처럼 소비하고 필요이상의 소비로 뚱뚱해지고, 쓰레기로 넘쳐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소비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에 대해서도 묵자는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한다.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말이다.
글/ 시민참여팀 박은영 팀장
※이 날 강의는 회원과 관심 있는 시민 약 8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3월 30일 저녁 7시 대전시청 3층 세미나 실에서 열렸습니다. 묵자의 교훈을 주제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참가하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진행될 노자 강독도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묵자강좌가 기사에 실렸어요!
묵자 사상에 대한 대전 시민 관심 고조
기세춘 선생, “묵자는 진보주의의 시조다”
2009년 03월 31일 (화) 10:45:07
대전뉴스 김문창 기자 moonlh@hanmail.net
대전충남녹색연합(상임대표 김규복)은 30일 오후 7시 대전시청 강당에서 ‘묵자, 세상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묵점 기세춘 선생을 초청해 대중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동양 고전 강의로는 대전에서 첫 번 열리는 대중강의로, 80여명의 대전시민들이 참석해 묵자사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묵점 기세춘 선생은 “고전에 대한 책 집필하는데 주력하려고 했으나, 작년 광우병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서, 그때 참석한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며, “아주머니들에게 보답할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작년에 녹색연합에서 묵자강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의를 담당한 묵점 기세춘 선생은 2천년동안 금서였던 ‘묵자’(92년)를 국내최초로 완역했으며, 올해 ‘묵자’의 해설서를 포함한 묵자 결정판(바이북스)을 출판하는 등 묵자 사상의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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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점 기세춘 선생은 “묵자는 인민들과 더불어 사회운동을 한 노동자였으므로 세상에 회의와 염증을 느껴 속세의 문화와 제도를 거부한 노자․ 장자와도 다르다”며, “묵자는 반전평화운동과 절용문화운동을 전개한 사회운동가이자 혁명가였으며, 인류 최초로 우주(宇宙)와 공간과 시간론을 말한 철학자요, 동시에 정교한 가격이론을 말한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이어 묵점 선생은 “무엇보다 그는 신분 계급과 노예제가 엄존하던 고대 사회에서 천하 만민에게 두루 평등한 사랑을 외친 평등주의자요, 박애주의자였다. 이처럼 묵자는 독창적이고, 선구적인 진보사상가였으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덧붙엿다.
또한 묵점 선생은 “묵자는 춘추전국시대 공자와 더불어 공묵이라 물릴 만큼 제자백가에서도 드날리던 사상가로서 묵자를 따르던 묵가들이 천하에 가득했는데,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추었다”며, “이는 한나라 무제 때인 BC 136년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백가를 폐출하고,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권력의 탄압 때문이라는 학설은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 이후 “묵자(墨子)는 유가와 법가들의 책에서 단편적으로 거론될 뿐 자취를 감추었다가 17세기 초 도가들의 경전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18세기가 되어서야 최초의 주해서가 나온다”고 밝혔다.
따라서 “『묵자』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도 20세기 중엽의 일로, 인류사에 이처럼 2천년이 넘도록 금서였던 책은 아마 『묵자』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를 말하려면 묵자를 알아야
묵점 선생은 “묵자는 노동운동의 시조로 그는 인류 최초로 인간만이 노동을 하는 동물임을 발견한 사상가”라고 말한다.
그는 ‘짐승과 새들은 수놈이 밭 갈고 씨 뿌리지 않고 암놈이 실 잣고 길쌈을 하지 않아도 먹고 입을 것을 모두 하늘이 이미 마련해 주었지만, 오직 사람만은 다른 짐승들과는 달라 노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으며,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천명했다.
또 묵자는 “신분차별과 사유재산제를 반대하고 인민 모두를 평등하고 두루 살리는 공산공생(共産共生) 공동체인 이른바 안생생(安生生) 대동사회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강의를 마친 후 참석자 10여명과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도 참석자들은 묵자에 대한 질문이 그치지 않고 이어져, 대중강연에서 못다 한 얘기를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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