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의 독서일기라는 글을 주제로 연재해 주실 권혁범 회원님은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2009년 2월 부터 홈페이지에 회색인의 독서일기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계신데요, 초록이메일을 통해 주마다 회원님께도 발송할 예정입니다. 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회색인의 독서일기 3
글/권혁범 회원
독서일기 3입니다. 독자들의 호응이 놀랍습니다. 이 일기를 받아보시고 싶은 사람을 추천하고 싶으면 제게 이메일주소를 알려주세요. 지나간 호는 제 홈페이지의 두 번째 면 http://dragon.dju.ac.kr/~kwonhb/bookweek.htm 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좋은 책이 있으면 제게 알려주세요.
11. 다큐 영화 <워낭소리>(2008년 개봉).
너무도 유명해진 영화다. ‘2메가 바이트’께서 보셨다고 하기에 안 보려 했다. 더구나 영화평론가인 조카, 영화감독인 또 한명의 조카, 그리고 내가 신뢰하고 취향이 비슷한 학자인 동생까지 비판적 태도를 보이기에 안 보려 했다. 하지만 의외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농민부부와 마흔 살 먹은 늙은 소의 동거에 관한 영화다. 소의 눈망울을 자세히 본적이 있는가? 슬프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한 눈, 이중섭의 소를 연상시킨다. 그 눈에 할아버지 눈이 닮아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늙은 소를 할아버지는 백만 원이라는 헐값에 팔 것인가? 인간 종과는 다른 생명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문제점이라고 하면 다큐라고 하기에는 대중영화적 기승전결이 지나치게 뚜렷하고 그만큼 작위적이다. 언제 소개하겠지만 한국의 무당을 다룬 ! 芼 <영매>에 비하면 영상문법이 진부한 게 단점이다. 특히 내 동생이 지적했듯 농민의 우여곡절과 고통은 생략되고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하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할아버지와 소가 스쳐가는 장면은 시위대를 ‘착한 소’와 대조되는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투리는 거의 외국어 수준이다.
12. 만화: 아트 슈피겔만 Art Spiegelman, 권희선/권희종 번역. <쥐 Maus-a Survivors Tale>I, II (아름드리미디어, 1994).
오래전 정치학 개론 수업에서 이 책을 교재로 추천했다. 한 나이든 학생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표지에 붉은 색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 책을 구입해서 보니 “아, 이게 운동권 책이구나. 대학교에서는 좌파 의식화를 이렇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만화를 읽고 보니 대학생인 자신의 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심경변화를 토로했다. 유대인을 ‘쥐’로 표상해서 인류사의 최대 수치중의 하나인 홀로코스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이 탁월한 이유는 유대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고 단순히 과거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생존자인 아버지가 아직도 어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점이다. 매사에 소심하고 집착하는 아버지와 아들인 저자가 갈등하는 모습, 아! 湧 아버지를 구박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어떤 효심 강한 학생은 “이런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느꼈다고 얘기했다. 정치만화이기 때문에 적어도 중3학년이 되어야 이해할 수 있고 대학생부터 중년까지도 이 작품에서 얻을 게 많을 것 같다.
13. 노다 마사아키. 서혜영 옮김 <전쟁과 인간> (길, 2000).
오랫동안 ,거의 9년이 넘게 ‘국제정치학’ 과목에서 교재로 쓴 책이다. 부제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이 말해주듯 이 책은 일제 시대 일본군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중국인들을 살해하고, 성폭행하고, 실험용으로 썼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전쟁 후 중국에서 감옥 생활한 이들 중 일부가 ‘탄빠이(회개)’를 통해서 자신들이 범한 범죄가 왜, 어떻게 해서 이뤄졌는지를 반성적으로 바라본다. 중국인들을 ‘비인간화’하는 태도, 집단의식 속에서 실종된 개인,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등이 그 이유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과 ‘무벌죄’ 사상이 현대의 일본사회에서도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저자는 ‘타자의 슬픔을 껴안을 수 있는 문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궁금한 독자라면 !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대학교 일학년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조선인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쉽다. 특이한 것은 저자가 의사이면서도 사회과학부 교수라는 점이다.
14. 계간지 <황해문화> 57호. 2007년 겨울호 ‘재일조선인’ 특집. 2-196면.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의 대표적인 학자 가찌무라 선생은 ‘재일조선인’은 일본에게 ‘축복’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질적 타자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야 말로 좀 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이니찌 조센징 (재일조선인)’은 남한에서도 북조선에서도 이질적인 타자다. 필요할 때만 ‘우리 재일동포’가 되고 평상시에는 반쪽 ‘쪽바리‘로 인식된다. 그들의 특수한 정체성과 보편성을 코리아 및 일본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체계 없이 한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세계가 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자이니찌와 ’이주노동자‘는 ’축복‘이다. 주로 재일동포인 여러 지식인들이 모국어, 영화, 젠더라는 주제를 놓고 한국사회의 인식과 일본의 억압적인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룬다. 어렵지는 않지만 생소한 접근이 꽤 있어서! 집중력을 요한다.
15. 조주은, <현대 가족 이야기> (이가서 퍼슨웹, 2004).
역시 몇 년 동안 <성과 문화의 정치학> 교재중의 하나로 쓰고 있는 책이다. 한국사회에서 성과 민족/국가 등은 중요한 범주로 다뤄지는 반면 계급은 그렇지 못하다. 다행히도 이 책은 성과 계급이 교차하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대학생들이 졸업하면 대부분 회사 노동자가 되는 데도 학부 과정에서 계급과 노동에 대한 문제를 거의 배우지 못한다.
이 저서는 현대자동차 남성노동자와 그들 아내들의 성별 분업구도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세세한 현장인터뷰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역작이다. 억압적이고 순탄치 못한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단순반복적인 보조적인 노동으로부터 탈출구로 ‘현대’ 노동자와의 결혼을 선택한 여성들, 강도 높은 노동을 재충전해줄 수 있는 가정 마련의 도구로서 결혼을 선택한 남성들은 어떤 삶을 누리게 되는가? 회사는 공장 견학 및 교양강좌 등을 통해 가족 이데올로기를 심어주고 전파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회사에 그렇게 저항적인 남성노동자들도 ‘스위트 홈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동조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회사 교육을 받은 아내들이 그 다음날 차려주는 ‘밥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회사충성심 강화를 위한 아내 교육은 진보적인! 남성노동운동의 부계질서강화 의지와 공모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현대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재벌기업 ‘현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학 일학년 정도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6. 제프리 밀러, 김명주 옮김. <연애-생존기계가 아닌 연애기계로서의 인간 The Mating Mind> (동녘, 2004).
사람은 동물이고 포유류다. 또한 600여 종류의 영장류 중 하나의 종이다.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점을 간과한다. 밀러는 다윈의 두 법칙 즉 ‘자연선택’과 ‘성 선택 sexual choice’ 중 후자가 소홀히 다뤄졌다고 보고 그것의 복원을 통해 인간 이해,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를 심화한다. 즉 꼬리새 공작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더 나은 상태의 짝을 고르려는 본능에 의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컷은 더 까다로운 암컷을 유혹하고자 지능, 건강, 근육 등을 발전시켜왔다. 이런 의미에서 ’성적 과시‘는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남자들이 스포츠에 몰두한다거나 앉을 때 두 다리를 벌리는 것도 이런 ’과시‘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성적 차이를 부정하는 페미니즘이나 몸의 정치학을 얘기하는 미셸 푸코 같은 포스트 ! 모더니스트에 대해 비판적이다. 나는 밀러의 주장이 생물학적 결정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남성이 대체로 다리를 벌리는 것은 그들이 ’남성적‘으로 교육되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화 및 습관의 문제지 생물학적 문제는 아니다. 번역이 불친절하고 또한 내가 진화심리학에 무지하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힘이 들었다. 1,2장을 읽고 7,9,11장을 먼저 읽으면 좋겠다. 뒤로 갈수록 번역과 내용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학 졸업반 정도는 되어야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제목은 원 제목과 별로 관련성이 없다. ’짝짓기의 본능‘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이 책이 ’연애‘하는 데도 일정한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사랑의 90%는 동물적 본능이니까 말이다.
17. 김종철 편, <녹색평론선집 2> (녹색평론사, 2008).
격월간 <녹색평론>에 실렸던 글을 선별해서 묶었다. <녹색평론선집 1>의 개정판이 나왔고 <녹색평론선집 3>도 최근에 발간되었다. 편자의 입장처럼 여기에 묶은 글들은 대체로 개량주의적인 환경기술주의 및 환경관리주리를 비판하고 근본적 삶의 양식 및 자본주의적 산업문명의 변혁을 추구한다. deep ecology의 문제의식에 가깝다. 발전주의의 신화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며 <환경학개론> 수준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이 책이 어렵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참고 읽으면 삶, 생명, 현실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기로 소문난 김우창과 볼프강 작스, 오토 울리히의 글이 돋보인다. 어? 내 글도 들어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