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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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 플로어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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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와 노자를 득하려면 밥묵고, 잘 묵고 잘 놀자
[소설-만화-드라마] 읽기, 주인공과 일체화되어 빠져나오질 못한다. 소녀취향일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드라마 보기를 꺼리고 멀리한다.고 한다. 이 역시 범접해보지 못한 세계이다.
행복해야된다고 하면서, 행복하기위한 제도-여건-노력을 하지 않는다. 행복환원론이거나 끊임없이 나-너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함몰시키는 경우가 많다. 노장을 공부한다거나 읽기에 이런 함정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나로 축소시키는 행태가 적절한 독법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설핏드는 느낌이다. 당위와 의무가 아니라는데 먼저 환호를 보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행위와 습속으로 확인되어야 할 점이 많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소설도 읽지 않고 원전도 읽지 않고 요약본만 읽었다. 70년대 대학생들은 소설도 철학책도 많이 읽었다. 일견 시간의 흐름에서 지금이 예견될 수 있다 없다. 소설과 철학은 사고를 서걱거리게 하지 않는다. 물흐르듯 유연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서걱거린다
만화 묵공과 영화 묵공, 삼국지,이문열 – 묵에 공을 붙일 수 없다. 삼국지도 황건족이나 묵가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183 거론되니 기억해야할 숫자. 루시드 폴의 노래에 대한 야그.
합종연횡한다는 것. 묵자1기가 같는 의미
빠진다는 것. 그것도 푸욱~. 일터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뺏긴다는 것. 회원사업에 푸욱 빠져있는 것인지, 푸욱 빠지게 지원하고 있는 것인지? 수련회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인지?
딴생각을 할 수 있어야, 여유가 없는 것이 죄악, 속도가 다르다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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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입문으로 가는 길 바꾸거나 보태야 할 잡학다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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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문제에 걸린다. 당연하다고 쓰는 말들이 그 시대 상황이나 말의 진화나 씨앗단계의 연유를 확인하지 않는데서 비롯한다고 한다. 사람 인(人)도 그러하다고 한다. 사람이외는 짐승이다. 지금 사람과 다른 개념이다. 인은 지배자이고 민(民)은 피지배계급이다. 민에는 4민이 있는데 이것이 사농공상이다. 사민, 농민, 공민, 상민이다. 사민의 우두머리가 공자였고, 공민의 수장이 묵자였다. 공민의 위력은 평화때보다 전쟁때 더 영향을 끼친다. 공자는 14년동안 주유편력을 하지만 여전히 왕도정치를 지향해 어느 나라에서도 모시지 않는다. 반면 묵자는 어느 나라에서도 오라고 했으나 그렇게 하는 것이 평화에 해가 된다고 하여 가지 않았다. 공자는 보수 묵자는 진보였다
백성(百姓)에 대한 오해도 마찬가지다. 성을 갖는다는 것은 농토를 갖는 것이고 땅이름으로 성을 만든다. 백성이라는 것도 백관…일본으로 건너가 농민으로 되고 그 말이 다시 되돌아와 쓰이게 된 것이다. 일제가 호적정리하기 전, 우리 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 1/3이나 되었다고 한다.
목수라는 직업역시 그냥 지금 생각하는 목수가 아니라 공민(工民)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동방박사도 묵가로 여겨지며, 예수도 목수라는 것도 이런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묵자는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6세기에 만들어진 천자문의 천지현황 다음 우주홍황이 묵자의 말이다. 우주는 넓고 시간은 헛되다. 거칠황이 아니라 황당하다. 헛되다가 맞다고 한다. 우(宇)는 공간을 나타내는 개념이고 주(宙)는 시간을 나타낸다. 서양의 플라톤이 코스모스 우주라는 개념을 처음만들었는데, 이는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별이라는 말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묵수(墨守)라는 말 역시 성을 잘지킨다라는 뜻인데 묵자들은 전쟁반대와 평화를 지키기위해 한쪽에 가서는 설득을 하고 방어편에 가서 성을 지키는 행위를 한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중국의 공간개념 – 만리장성을 쌓은 것, 경계가 그 안이다. 황하이남 과 만리장성안이 그 공간개념이다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백이숙제가 묵태씨인데 고죽국 사람이고 이 나라가 고구려의 전신이다. 묵자는 여기 사람이다.
1. 천하무인 – 천하에 남은 없다 2. 군신맹통약야 – 군과 신하백성은 무릇 일반계약이다
3. 백성위주 4. 운명론은 폭군이 지어낸 것이다. 단 하나님은 평등하게 사랑한다만 확인된다. 하나를 더 덧붙인다면 초과소비금지와 인과 민에게 이익이 되는 기술을 이야기한다.
춘추전국시대엔 공묵이 쌍벽을 이루었는데, 묵자의 책 정본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한다. 다른 책들로서만 확인이 되는데 20세기에 와서야 정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홍대용의 경우가 유가를 버리고 묵가로 가고 싶었다고 하며 묵가가 지식인들 사이 논의되었다
보언
30대 후반의 까칠한 청년같으시다. 묵점선생은 동양사상 강좌 시리즈를 1700여쪽에 걸쳐 만들고 계시다고 합니다. 유가-묵가-도가-법가-성리학-실학에 이르기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네요. 묵가는 30종의 원전에서 341개의 예문을 인용하였다 합니다.(묵자 231, 관자 10, 장자 19, 순자 14, 여씨춘추 9, 맹자 9, 회남자 5, 한비자 5, 사기 5, 예기 5, 춘추좌전,노자에서 29개 예문 인용번역함)
간단한 소개글
080314 한겨레 – 한문학의 대가 연민 이가원, 문익환 목사, 통일운동가 김낙중씨, 신영복 교수, 그리고 신 교수가 “일제 때 선생을 검거했던 형사가 해방 뒤에도 다시 선생을 검거했다”고 탄식한 노촌 이구영, 박현채 등 쟁쟁한 ‘재야’들과 어울리며 한국현대사를 힘들게, 그러나 당당하게 헤쳐 온 ‘좌파’ 사상가 묵점 기세춘. 기대승의 후손으로 일제에 저항한 집안내력 때문인지 전쟁 때 어린 나이에 부역자로 몰렸고, 4·19 혁명에 가담했으며, 5·16 쿠데타에 좌절했던 ‘반골’ 기질. 1963년 동학혁명연구회를 만들어 후진국개발론, 통일문제를 파고들다 3선개헌을 획책하던 박정희 정권이 “과장하고 날조한” ‘통혁당사건’에 연루돼 신영복 교수 등과 함께 고초를 겪었다. 대전에서 작은 기계공장을 운영하며 사출기, 자동포장기 등을 손수 설계·제작해 연명하기도 했던 그는 “세상이 갑갑해서” 이 책 저 책 읽어가다가 동양고전에 몰입했고 “읽다 보니 왜곡이 너무 심해 더욱 울적하고 갑갑해져” 1990년께부터 출판할 생각도 없이 번역을 시작했고 상당수를 완료했다. 그래서 나온 첫 책이 〈묵자-천하에 남이란 없다〉(1992)였고, 감옥에 간 문익환 목사가 그걸 읽고 묵점과 편지를 주고받다가 94년에 함께 만든 책이 〈예수와 묵자〉였다. 같은 해 신영복 교수와 〈중국 역대 시가 선집〉 4권을 공역했고, 2002년엔 〈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 시리즈로 유가·묵가·도가·주역을 출간했다. 2005년 〈동양고전 산책〉 2권을 냈고, 2007년엔 〈장자〉를 완역하고 〈성리학 개론〉을 완성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뱀발
의도치 않았는데 시간도 나고 발길도 가곤해서, 녹색**분들을 뵐 수가 있을 것 같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강좌가 묵자가 아니라 노자 장자도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공연한 오해였던 것 같다. 묵자는 한 두달뒤에 책으로 완간된다고 한다. 신영복선생님의 강의를 보다 마음길이 가 묵자 몇권을 보려했는데 당최 종교서적 같아 어이가 없었다. 재출간 요청에 따라 도서도 출간된다고 하고, 묵자 강연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여러 경황으로 봐서 아무래도 미리미리 대박강연을 듣는 기분이다. 두달뒤, 2,3년뒤 이때를 놓쳤다고 통탄할 지역 사람들이 많치 않을까 싶다.(아직도 늦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서두)
강의는 열정적이고 부드럽고 우아하시다. 술자리도 좋아하셔서 뒤풀이는 30대후반 까칠한 청년처럼 패기가 있으시다. ㅎㅎ. 선입견들이 어김없이 무너졌고 뒤풀이도 서로 마음길들을 비추고 섞일 수 있어 나름 유쾌하다. 다만 피곤은 어찌할 길이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상쾌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위 글은 7월 23일 묵자강의에 참가하신 노현승 회원의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