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만한 책]
래퍼를 꿈꾸던 소년, 총을 든 병사가 되다
글/박현주 회원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북스코프 출판
1993년 시에라리온. 열두 살 소년 이스마엘은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노래가사가 적힌 공책을 배낭에 넣고 춤추기에 적당한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열심히 랩을 연습하며 걷는다.
그러나 장기자랑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스마엘은 광산지역인 고향 마을이 반군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반군의 학살과 약탈로 고향은 온통 아비규환이라는 소식이었다. 이스마엘 일행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반군이 급속하게 세력을 넓혀오는 탓에 가야할 곳도 몰랐다. 이때부터 이스마엘은 안전지대를 찾아 헤매는 괴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반군을 피해 달아나면서 반군이 훑고 지나간 마을의 학살현장을 목도하기도 하고, 죽음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어디를 가나 즐비한 시체와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팔다리를 함부로 잘린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이스마엘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와 전쟁의 광기는 어린 소년의 정신을 공황상태에 빠트린다.
‘이맘’(마을의 연장자, 지도자)을 중심으로 농사를 지으며 순박하게 살아온 시에라리온의 시골마을들은 피로 물들어 갔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소박하게 유지되었던 마을공동체는 마약에 취한 병사들이 잔인하게 휘두르는 총칼에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사람들은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이스마엘은 숲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고향사람을 만나고, 가족이 바로 근처 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스마엘은 기쁨과 흥분으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안고 가족이 있는 마을로 내달리는데, 반군의 포격으로 마을은 불바다가 된다. 이스마엘은 바로 눈앞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만다.
그 후 이스마엘은 정부군의 소년병이 되어 총을 들고 전쟁터를 전전한다. 그는 넘치도록 보급되는 코카인을 날마다 흡입하고 전투에 나간다. 환각상태에서 나오는 용감무쌍한 행동으로 전공을 세워 ‘소년중위’로 치켜세워진다. 그리고 차츰 어린 시절의 꿈과 기억을 잊어간다. 오직 죽고 죽이는 싸움터에 영혼과 육체를 내맡긴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나는 누구에서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고, 내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스마엘은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소년병에서 벗어나 재활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쿠테타가 반복되면서 시에라리온의 정국은 혼란으로 치닫고, 급기야 내전을 일으킨 반군이 정권을 장악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는다. 이 책의 제목은 ‘집으로 가는 길’이지만, 이스마엘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현재 이스마엘은 미국에 살면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내전을 치르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분쟁지역에서 소년병 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30만 명에 달한다. 어린 소년, 소녀를 전쟁에 개입시키면 어느 편이 승리하든 그 나라엔 미래가 없다. 그것이 시에라리온의 커다란 절망이기도 하다. 얼마나 깊은 후유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수십만에 달하는 소년병, 소녀병들이 치유될 수 없는 죄책감과 상처를 짊어진 채 일생을 살아가고, 그 집단적 트라우마는 다음 세대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시에라리온의 별. 1972년에 발견된 어른 주먹 크기만하다는 다이아몬드. 제2의 ‘시에라리온의 별’을 찾기 위해 오늘도 다이아몬드 광산은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진짜 시에라리온의 별은 광산의 진흙창 속이 아니라, 시에라리온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에 있는 게 아닐까?
다이아몬드 광산을 두고 벌어진 정부군과 반군간의 긴 싸움. 보석을 팔아 챙긴 막대한 돈으로 무기와 마약을 들여와 자국의 국민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던 나라.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어린 소년들에게 총질을 시켰던 탐욕스러운 군벌들은 전쟁이 끝난 후 그 소년들을 광산 노동자로 부리고 있다. 이것이 과연 시에라리온만의 문제일까. 이를 모른 체하는 외국 자본과 손가락의 호사를 꿈꾸는 세계의 다이아몬드 소비자들이 모두 한패가 되어 시에라리온의 비극을 부추기는 게 아닐까?
여러 종족이 작은 마을 단위로 모여 농사지으며 살았던 시에라리온의 전통사회는 자본의 단맛을 본 탐욕스러운 자들이 휘두른 폭력 앞에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리고 말았다. 식민지 독립 후 시에라리온 국민들이 민주주의라는 서양에서 들어온 정치제체를 받아들이고 운영하는데 다소 미숙할지 모른다. 그러나 뿌리 깊은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그 공동체의 힘으로 소년병 아이들을 받아주고 치유해준다면, 아이들 눈 속에서 시에라리온의 별은 다시 빛날 것이다.
※위 글은 5월호 소식지에 실린 박현주회원의 책 추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