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구 두 번째 수업..
기다리는 동안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오늘 놓치면 안되는 내용들을 재빨리 머릿속으로 되짚어본다.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 속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살핀다.
갑자기 아래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쑥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철현이다.
그 해맑은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녀석들 기대에 부응해야 할텐데… 잘 할 수 있을까?’
오늘은 혜승이랑 남훈이가 결석이다.
모둠에서 여학생은 둘 뿐인데, 혜승이가 빠져서 오늘은 다빈이 뿐이다.
은근 맘에 걸린다… 그래도 학생 수가 적으니 금새 모였다.
지체하지 않고 제일 먼저 출발한다.
주된 활동장소인 자갈밭으로 가는 길에 벼르고 있던 멧밭쥐 둥지를 설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쥐는 크기가 어느 정도일까?”
즉흥적인 질문이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지저분해보이는 부들밭이 멧밭쥐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함부로 훼손하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상했던대로 꽤 흥미로워 하는 눈치다.
열심히 받아 적는 아이들도 있다.
이젠 오늘의 주된 활동인 봄 식물 관찰로 관심을 이끌 차례..
물길따라 노랗게 꽃을 피운 버드나무들에 시선을 옮겨 본다.
굳이 말이 필요없었다.
지난 수업 때와 달리 세상이 얼마나 환해졌는지, 봄의 빛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걸으면서 우리 모두 눈으로, 코로, 귀로 충분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자갈밭에서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자전거 안마’로 몸풀기!
진행할수록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안마가 필요없나보다.
막판의 간지럼 태우기로 분위기를 바꾸려했지만 역부족..
“선생님, 우리 달리기해요. 저 뜀박질 잘 하는데..”
다행히 자갈밭은 평평하고 거리도 15m남짓.. 잠깐이지만 뛸 수 있는 공간이다.
살짝 당황했지만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래, 모두 한 줄로 서서 하나, 둘, 셋 하면 저기까지 달리는거야.”
유일하게 3학년이면서 여학생인 다빈이가 빠지겠다고 한다.
모둠 활동은 함께 해야 한다고 설득해보지만 소용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다 같이 하면 좋겠지만 억지로 시킬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수빈이가 심판을 자처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면서도 모둠에서의 적절한 역할을 찾아내는 것이 참으로 기특하다.
서둘러 두 번째 카드를 꺼낸다.
고민 끝에 준비한 ‘야생화 찾기’ 게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신이 안선다.
“선생님, 그건 생태계 파괴 아니에요?”
8종의 야생화 사진을 보고 같은 종류의 풀을 찾으면 잎을 따서 접시에 담아오라는 말에
누군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걱정이 된다.
잡초도 생명인데 소중히 생각해야 할텐데..
자연학교의 목표 중 하나는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다.
직접 오감으로 느끼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뭇 생명들의 소중함을 체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연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면,
파괴의 ‘선’을 넘지 않고 적절히 이용하고 순응하는 방법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참으로 고민스런 숙제다.
분명한 것은 학습자들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것..
오늘도 그 실마리를 아이들에게서 얻었다.
과연 흔한 잡초들에 관심을 가질까?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너무 진지하다.
열심히 사진을 보고, 묻고, 확인하고.. 시선은 땅을 향한 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충분히 구석구석을 살핀 후 찾기를 멈추고 한 자리에 모인다.
두 접시에는 다양한 잡초들의 꽃과 잎들, 어떤 것들은 뿌리채로 담겨 있다.
하지만 두 접시 모두 헤프지 않고 소박한 차림이다.
종류별로 손바닥에 나란히 놓고 비교하니 특징을 이해하기도 쉽다.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아 보고, 이름과 연관지어 생김새도 살피고..
모두 훌륭하게 과제를 수행했다.
만족스럽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마웠다.
이제는 ‘나만의 화분’을 만들 시간..
그저 좋은 흙을 담아줄 생각만 했던 고지식한 선생을 아이들은 가만 놔두질 않는다.
“선생님, 저 이거 심어주세요.”
아까 야생화 찾기 게임에서 뿌리채 뽑혔던 풀들을 가져와서 심어달라고 한다.
우째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해냈을까..
시간이 없어서 정성껏 심어주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행여 풀들이 쓰러질까
흙을 다지고 또 다지고 두 손으로 조심스레 화분을 들었다.
사실..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 밖으로 컸다.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보살필 것이고,
화분은 수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오늘은 꼭 옹달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을 재촉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봄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2시간은 너무 짧다.
그런 선생의 바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은 자꾸 옆에서 싱거운 퀴즈를 낸다.
“선생님, 식혜와 나무를 이어서 말해봐요.”
“식혜나무”
너무 성의없었나?
“나무식혜.. 아~ 나 무식해~~!”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관심을 돌리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얘들아, 우리가 지금 만나러 가는 옆새우는 왜 이름이 옆새우일까?”
옹달샘의 낙엽을 들추니 옆새우들이 재빠르게 도망간다.
짝짓기 중인 놈들도 있다.
신기한 아이들은 너도 나도 고개를 박고 관찰한다.
옹달샘 아래에는 산란한지 얼마 안되는 산개구리 알덩어리도 있다.
맑은 물이라 알들도 탱탱하고 윤기가 흐른다.
시간이 있으면 길마지기꽃도 설명하고 싶었지만 무리일 것 같다.
아쉽지만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옆새우의 생태를 간단히 설명하고 자리를 정리한다.
산과 들과 하천이 어우러진 월평공원은 작지만 참으로 풍요로운 공간인 것 같다.
미나리밭을 지나 도롱뇽 웅덩이로 가는 언덕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간식을 꺼내서 나눠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 식어버린 눅눅한 쑥부침개를 쑥스럽지만 꺼내 놓는다.
생각보다 관심을 가지고 시식하는 아이들..
“저 이거 할머니가 해주셔서 많이 먹어봤어요.”
“하나 더 주세요.”
들판에서 자라는 풀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의도했던 내용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듯하다.
간식은 먹는 둥 마는 둥 마음 급한 선생은 곧이어 마지막 카드인 OX퀴즈를 끄집어낸다.
상품이 걸려있다고 하니 솔깃한 눈치.
모두들 집중해서 문제를 푼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동그랗게 모은 모습이 왜이리 이쁜지..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반짝거린다.
“로제트란 말은 로케트를 닮았다는 뜻이다. 맞으면 O, 틀리면 X”
고맙게도 아이들이 킥킥거린다.
지어낸 우스개소리에 반응을 얻은 선생은 한껏 우쭐해진다.
역시 1년의 차이는 무시못하나보다.. 상품은 다빈이의 몫이다.
솔직히 상품을 주는 것이 어떤 교육적인 효과가 있는지 아직 확신이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물건’에 눈이 멀어서 생각과 달리 행동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칭찬하는 내용을 잘 선별한다면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며,
모두 한번쯤은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위로를 한다.
마지막 행선지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꺼비 웅덩이..
계획대로 가는 길에 쓰레기를 줍게 했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자잘한 쓰레기들이 곳곳에 많이 버려져 있다.
맨 손으로 줍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비교적 깨끗한 쓰레기만 주우라고 안내하고 바쁘게 둠벙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관찰하기 좋은 작은 웅덩이에 가보니
최수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빨간 그릇이 놓여져 있다.
아쉽게도 도롱뇽은 이미 달아난 상태.. 시간이 있다면 도롱뇽도 다시 찾아보고
웅덩이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올챙이 관찰만 시도하기로 한다.
새까맣게 모여있는 올챙이들을 보더니 흥분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관찰통으로 물을 뜨니 올챙이 몇 마리와 또아리물달팽이가 잡혔다.
좀더 성숙한 올챙이들도 잡아서 함께 관찰하면 좋으련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겠지.. 올챙이들을 놓아주고 출발장소로 이동한다.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은 긴병꽃풀과 큰개불알꽃을 채집해 와서 무엇인지 물어본다.
시선이 땅으로 옮겨진 것이다!
함께 도감을 찾고 꽃이름의 유래를 읽으면서 생김새를 관찰해본다.
어린 아이들인데도 모두 태도들이 진지하고 열심이다.
마지막으로 소감을 물어볼 차례.
오늘 본 자연친구들 중에서 누가 가장 인상에 남는지, 왜 그런지 물어본다.
역시나 올챙이가 가장 인기있었지만 버드나무, 쑥, 소금쟁이를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다.
뿌듯하다…
만나면 만날수록 멋지고 정이 가는 친구들이다.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성에 안찰 듯 활기가 넘치고 열정이 살아 있다.
무사히 수업을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쉬움도 커진다.
앞으로 함께 할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에 또 다시 설레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