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서 내리 여섯 시간을 버스로 달려 이사 온 첫날,
엄마는 부라다백화점 시식코너의 200원짜리 자장면을 시작으로 내 어릴 적 대전에서의 추억을 열어주셨다.
털가죽이 홀라당 뒤집어 벗겨진 토끼가죽이 줄에 매달려 있고, 닭이며 오리며 똥강아지가 주인을 기다리며 우리 밖을 빠끔히 내다보는 행상이 있던 풍경들.
온갖 쓰레기와 잡풀들을 다리에 걸친 채 악취와 오수에 발 담구면서도, 번듯한 듯 위용을 자랑하며 천연덕스럽게 서 있는 대전최초의 백화점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 것이 내 대전천 기억의 시작이었다.
어쩌다 1번 버스와 5번 버스를 타고 친구네 집에 갈라치면 건너게 되던 만년교와 수침교.
그 천변 언저리 어디서든 미역 감고 물 노는 풍경 허구했고, 은색의 모래둔덕이 드넓었던 그 다리를 건너갈 때면 번잡하고 시궁창 같던 대전천과는 사뭇 다른 갑천과 유등천의 풍경이 퍽 유별하다는 기억이 면면하기만 했다.
원동학교 대흥학교 패갈러 네편 내편 싸우던 내 코 흘릴 적 친구들이 하얀 칼라를 달아갈 즈음 좀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던 시절.
대전천과 유등천으로 흘러드는 마을 지천들의 끊임없는 하천복개공사는 긴 버스 통학 길을 가뜩이나 더디고 짜증스럽게 했었고, 가지 늘어져 휘청 멋들어진 능수버들이 사통팔달 잘 짜여질 넓은 길에 밀리어 밑동부터 잘리어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통학길 차창 밖으로 바라다 볼 때면 왠지 모를 서글픔과 착잡함에 우울하기만 했던 통학길.
내 사는 땅의 산과 들이 뭉그러지고, 물길도 덮여 없어지는 현상이 왜 그 어린 눈에도 또렷한 서글픔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의 내 눈과 마음은 변해가는 내 터전의 모습에 늘 범상치 않게 열려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되니,
지금 내가 하천을 위주로 한 생태공부를 한답시고 들판과 물가를 누비고 다니는 것도 뭐 새삼스런 일은 아닌 듯싶다.
그 맑고 깨끗했던 유등천과 생활 오염수의 마지막 통로로서의 기능만 유일한 것처럼 보였던 구 도심구간의 대전천이 공존하면서 보여주었던 암울한 향수…….
지금이라도 그 맑고 뽀얀 얼굴 찾아주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 회자되어 그 참 얼굴찾기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음이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대전이 보다 큰 도시 대전으로 변모해가면서 우리 한밭의 산과 들은 참 많이도 뭉그러졌다.
더 한걸음이라도 엉덩이 붙일 터전을 확보하고, 바퀴 굴려 편한 길을 가기위하여 모세혈관 같은 냇가와 지천들은 자취도 없이 소외의 뚜껑을 뒤집어 쓴 채 암흑의 저 편으로 사라져갔다.
너무나도 빠르게 비대해진 대전의 땅덩어리와 또 너무나도 빽빽하게 들어차버린 땅덩어리 속에서 우리는 숨 쉴 틈과 여유를 찾을 길 없었고, 그 생각 없는 대안의 하나를 하천에 안겨주어 떠맡게 했으니.
기본에 충실한 하천이라면 이수, 치수기능 말고도 수질자정이나 도시의 온도조절, 빌딩숲 도시의 바람길 역할, 생태계의 서식공간으로서의 환경적 기능과 함께 수려한 수변경관을 접하면서 인간의 정서를 함양하는 기능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대도시의 하천은 시민들의 위락과 레저의 공간제공이라는 역할을 더 부여받았고, 정비되어 깔끔한 美의 소임까지 담당해야하는 짐을 갖게 되었다.
대전의 3대 하천 가운데 유독 도심 중앙을 비껴가다 보니, 비교적 원시의 생태환경이 많이도 남아있던 갑천.
근래에 일구어진 서부도심 이동화로 갑천은 둔치를 통한 休와 美의 소임을 대전 하천 전역에 모델로 보여주는 초석을 일구었고, 연이어 주거 밀집지역에 연한 유등천도 같은 양상으로 그 면적은 넓어져갔으며, 이제 도심하천하면 광활하게 펼쳐진 초록의 잔디둔치와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들게 만든 콘크리트 호한, 그리고 도드라진 색깔에 흰줄도 선명한 우레탄 자전거도로로 대표되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우리의 하천을 새롭게 꾸며나가자는 원대한 3대하천 정비계획의 큰 틀이 수면위로 올라와 대전천을 시작으로 움직이고 있다.
풍부한 수량의 물 졸졸졸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 한가운데의 소하천을 꿈꾸면서 인공으로 물을 퍼 올려 수량을 확보하는 대전천의 펌핑공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깨끗한 물과 수려한 경관의 유등천이 주거 지역민들과 보다 친숙하고 접근 가능한 하천이 되기 위하여 권역별로 나뉜 주제별 하천의 모습은 계획되어져 시행하기 일보직전에 와 있다.
두하천 모두 생태하천의 모습을 닮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는 하지만, 그 몸부림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자연친화적인 모습인지……. 그 앞뒤 안 맞는 인공의 몸부림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이를 바라보는 힘없는 시민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의 그릇 안에 소담히 들어앉은 대전.
대전의 하천은 광역시치고는 유래 없는 보물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역사의 기초를 다져놓은 최기철박사님이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산내근처의 대전천이었다는 사실.
물 환경 먹이사슬의 최고정점에 위치하면서 수중생태계의 조절자 역할을 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이 살고 있는 곳도 바로 유등천이라는 사실.
그리고 육중하고 흰 몸의 천연기념물 201호 고니가 온 가족 이끌고 매년 날아오는 곳이 바로 갑천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무신경했음에도 그들은 우리와의 공존을 선택했음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며, 그들과의 공존의 터를 내준 어여쁜 우리의 3대하천에 그동안 너무도 무심했음에 미안해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갈 길은 이제 우리에게 달려있으니 좀 더 신중하고 자연친화적이며 인간적인 하천의 원모습 살리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이 하천의 본 모습을 잃지 않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며,
하천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음에 고마워하며 인간에게 유익한 기능으로 되갚음 해주는 자연스러운 길임을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대전의제21 봄호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