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경기도 파주 물푸레나무

2005년 11월 5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하나밖에 없는 경기도 파주의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는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파란 물이 우러난다.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 리말 이름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계곡을 끼고 자라는 탓에 너무나 흔히 만나는 나무다. 자람 터 고르기가 까다롭지 않고 쑥쑥 잘 자라주며, 나무는 단단하고 질겨서 도리깨를 비롯한 농기구를 만드는데 빠지지 않 은 나무다. 그러나 역사 속의 물푸레나무는 백성들에게 가장 아픔을 많이 준 나무다. 곤장의 재료로 이 나 무를 썼다는 기록이 벌써 고려사에서부터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음씨 좋은 임금님은 물푸레나무 곤장이 너 무 아플 터이니 버드나무 곤장으로 바꾸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죄인들이 도대체 자백을 하지 않으 니 물푸레나무 곤장으로 바꿔야 된다는 상소가 올라오면 다시 물푸레나무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동의보감에는 물푸레나무 껍질을 진피(秦皮)라 하여 눈병 약으로 쓴다고도 적혀있다. ‘두 눈에 핏발이 서 고 부으면서 아픈 것과 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을 낫게 한다. 우려내어 눈을 씻으면 정기를 보하고 눈을 밝게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돈 안 드는 귀중한 약나무였다. 곤장으로는 병 주 고 껍질로는 약 주는 나무, 애증(愛憎)이 교차한 물푸레나무였는지 모른다.이렇게 옛날에도 흔하였고 지금 도 우리 주변에 널리 자라는 나무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푸레나무로는 휴전선 바로 턱 밑에 자라는 이 나무 하나 밖에 없다.
민족 분단의 바로 현장에 자라는 터라 찾아가기가 만만찮다. 경기도 파주와 가까운 법원읍에서 310번 지방 도를 타고 10km쯤 북으로 올라가면 350번 지방도와 마주치는 웅담리가 있다. 북으로 적성 방향으로 2.5km 정도의 거리에 오른편으로 무건교라는 작은 다리를 찾아야 한다. 군용차와 푸른 제복 이외에는 민간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군인이야 붙잡고 물어보아도 멀리서 훈련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니 입만 아프다. 가뭄 에 콩 나듯이 지나가는 민간인을 어떻게든 찾아서 무건교를 확인하여야 한다. 다리에서 우회전하면 비포 장 군 작전도로다. 약 2km지점에 옛 지명 ‘수작골’이라는 오른쪽 언덕에 나무가 자란다. 탱크와 육중한 군 용트럭의 전용도로이니 길은 엉망진창이다. 조심스럽게 들어가지 않으면 자동차 망가지기 딱 알맞다. 이 일대는 포병 사격장으로서 운 나쁘게 사격 연습하는 날 찾아갔다면 다리 입구에서 퇴짜를 맞는 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의 옛날에는 아늑한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잎이 무성한 물푸레나무이니 여름날 농민들 의 쉼터로 세월을 이어온 나무다. 나무를 만난 첫 느낌은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는 엄청난 덩 치에 압도당할 만큼의 우람한 고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높이 15m, 가슴높이의 둘레 3.3m, 가지 뻗음은 동서 14.1m, 남북 14.3m로서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1982년 지정당시 문화재청에 서 추정한 나이는 150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금은 170살이 조금 넘는 셈이다. 산림청에서 조사한 보호 수 자료를 보아도 이 보다 더 굵고 오래된 물푸레나무가 여럿 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가 명 확하지 않다. 군사독재 시절인 당시, 50여건을 한꺼번에 졸속으로 지정할 때 충분한 검토도 없이 지정한 것 으로 짐작된다. 여기는 사람들이 살지 않은 땅, 군인들의 훈련이 없는 날은 태고의 정적을 고스란히 간직하 고 있다. 운이 좋으면 고라니와 매를 만날 수 있는 별천지다.
한 가지 주의사항!, 나올 때는 반드시 들어간 길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 좋다. 지도를 보고 반대편으로 갔다 가는 탱크나 다니는 대한민국 제일의 험난한 길을 만난다. 무건교에서 나무까지 가는 길은 반대편 길과 비 교하면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