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나무 이야기

2005년 10월 28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나무이름은 붉은 단풍이 드는 나무란 뜻으로 붉나무가 되었다. 단풍이라면 단풍나무만 연상하지만 곱게 물든 붉나무의 단풍을 한번만 보면 왜 이름을 붉나무라고 하였는지를 알 수 있을 만큼 그 진한 붉음이 우리를 감탄케 하는 나무이다.
개화 이전의 우리네 서민들의 풍물을 그린 글에는 소금장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 만큼 소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생필품이었으며, 특히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다가 나타나는 소금장수한테서 잊지 않고 소금을 확보해 두어야만 하였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봉상왕의 조카 을불(乙弗)은 왕의 미움을 받아 소금장수로 떠돌아다니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왕을 몰아내고 15대 미천왕(300~336)이 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 소금장수이야기이고 가장 출세한 소금장수이다. 그 만큼 옛날 소금장수는 없어서는 안될 ‘귀하신 몸’이었으며, 특히 더벅머리 총각 소금장수는 시골처녀들을 가슴 설레게 하였다 한다.
그런데 가진 소금은 바닥나고 소금장수도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였을까? 바닷물을 정제한 소금을 구할 수 없을 때 대용으로 염분을 구하려는 우리 선조들의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다. 특정의 벌레에서 염분을 얻는 충염(蟲鹽), 신나물을 뜯어 독 속에 재어두어서 얻는 초염(草鹽), 쇠똥이나 말똥을 주워 다가 이를 태워서 얻는 분염(糞鹽) 등 이름만 들어도 소금을 얻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붉나무 열매에서 소금을 얻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효율적이었다. 붉나무 열매는 가운데에 단단한 씨가 있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과육에 해당하는 부분이 가을이 깊어 갈수록 소금을 발라놓은 것처럼 하얗게 된다.
여기에는 제법 짠맛이 날 정도로 소금기가 들어 있는데 긁어모아두면 훌륭한 소금대용품이 된다. 한자로 염부목 혹은 목염이라 하는 것은 붉나무의 열매가 소금으로 쓰인 것을 나타낸다. 또 붉나무에는 오배자(五倍子)라는 벌레 혹이 달리는 데 타닌을 50~70%나 함유하고 있으며, 가죽 가공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자원인 동시에 약제였다. 붉나무에 기생하는 오배자 진딧물이 알을 낳기 위하여 잎에 상처를 내면 그 부근의 세포가 이상분열을 하여 혹 같은 주머니가 생기고 오배자 진딧물의 유충은 그 속에서 자라게 되는데 이 주머니를 오배자라 한다.
동의보감에 보면 오배자 속의 벌레를 긁어 버리고 끓은 물에 씻어서 사용하는데, 피부가 헐거나 버짐이 생겨 가렵고 고름 또는 진물이 흐르는 것을 낫게 하며 어린이의 얼굴에 생긴 종기, 어른의 입안이 헌 것 등을 치료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에는 토산물로서 붉나무 벌레 혹을 생산하는 지역이 원주, 평창, 양양, 정선, 강릉이라 하여 약제로 널리 쓰였음을 짐작케 한다. 오늘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한낱 평범한 붉나무도 한때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영광의 세월을 말없이 되뇌어 보고 속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자락의 양지 바른쪽이면 우리나라 어디에나 잘 자란다. 잎이 떨어지는 넓은잎나무로서 크게 자랐을 때는 지름이 10여cm에 이르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 달리는 데 하나의 잎자루에 7~13개의 작은 잎이 서로 마주 보면서 붙어있다. 잎자루의 좌우에는 좁다란 날개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흔히 혼동하는 옻나무나 개옻나무는 잎자루에 이런 날개가 없으므로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금세 구분할 수 있다. 작은 잎은 타원형이며 끝이 차츰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 다른 나무이고 가지의 꼭대기에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달리고 8월에서 9월에 걸쳐 연한노랑 빛의 꽃이 핀다. 꽃이 지면 속에 단단한 종자가 들어있는 열매가 지천으로 달리는 데 황갈색의 잔털로 덮여 있다. 익으면 맛이 시고 짠맛이 도는 흰빛 육질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