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마니

2005년 10월 2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엊그제 문득 경비실 앞을 지나다
시골 어디선가 주인을 찾아 온 쌀가마니를 발견했다.
오는 동안 많이도 고생했겠구나 싶게
덕지덕지 누런 포장은 헤지고 더러웠고
수신지를 밝히는 글씨 또한 참으로 엉성하여
그 보낸분의 정과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한 가마니였다.
세상에 흔한게 쌀집이고,
마음먹고 구하자면 그렇게 사소한게 쌀이건만
부모는 그 쌀 한가니가 뭐라고
꽤 됨직한 무게 값을 치루고서까지
자식 앞으로 보내시고야 말았을까.
애꿎은 빗물 피하랴 경비실 좁은 지붕 벽에
불쌍하게 기대 서있는 가마니를 보고있노라니
아들아 빨리 나와라! 라며 외치는 엄마의 애타는 잔상이
번져서 사라지는 매직 글자체에 실려
기운 잃어 넋 나간 듯
날 목메이게 만들었다.
그날은
쌀가마니가 나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가을비를 더 싱그럽게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날이었다.
아!
그러나 어제!
난 여태껏 불쌍하게 구겨져있는 경비실 앞 쌀가마니를 보고
복받치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아들이,
도대체 어떤 딸이
부모의 성의를 저렇게 몰라줄 수 있을까.
마치 자식 집을 찾아 먼길 온 시골부모가
찾다 찾다 힘에 부쳐 길바닥 언저리에 기운 잃고 앉아있는 몰골과도 같아서
나를 정말로 서럽고 화나게 했다.
그젯밤 어머니의 쌀가마니는
경비실 앞 축축한 시멘트 바닥에서 하루를 묶었었고,
그 다음날 저녁이 다 져물어가도록
고향 어머니의 쌀가마니는
목 메이도록, 눈이 빠지도록
이 도시의 자식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해가 솟구쳐 올랐다가 해거름으로 돌아설 때까지
그렇게 석양빛녁에 초최히 드러누워있는 불쌍한 어머니.
제 부모의 성의를 팽개친 그 어떤 자식은,
제 어미 아비의 종아리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보다도 못한,
제 어미 아비의 손톱 밑에 낀 풀 때보다도 못한,
제 어미 아비의 검정 목장화 밑바닥의 흙떡 보다도 못한
몹쓸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봄녁에 소 끌고 나아가 굳은 흙 갈아엎으시며 흥얼거리시던 아버지의 웃음을 무시하고,
광주리 뜨끈한 밥 퍼담아 허기진 일손들 배불릴 맘으로 논둑길 종종걸음 재촉하시던 어머니의 신바람을 무시하고,
여름내 간밤 큰바람 큰비에 넘어진 자식들 억새비 맞아가며 일으켜 세우시던 아버지의 눈물을 무시하고,
벼멸구 잡자고 함께 들이마시면서 황폐해져가는 아버지의 건강하던 살덩어리들을 무시하고,
팔 빠져라 새떼들과 싸움하느라 금빛의 가을을 그냥 지나쳐버리시던 아버지의 나날들과
어느덧 한숨 돌리고 보니 서늘한 바람 이는 황량한 들판에 서있는
부모님의 시간 시간들을 모두 무시하고 만
그 아들 그 딸놈들이여.
그대들의 부모님은
또 자식 손자들의 뜨끈하고 기름진 밥 한 숟가락을 위하여
행복하게 웃음 짓는 저녁식탁의 그림을 그리면서
오늘도 내일 새벽의 해 이른 걸음을 위하여
속모르시는 초저녁잠을 또 청하실 것이다.
피와 땀을 아는 자만이
부모님의 거친 손이 빗은
기름진 맛을 느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