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산성

2005년 5월 3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월평산성을 안내인 없이 가기에 앞서 대전지역의 산성과 월평산성에 대하여 짧게나마 정리하오니 한번 훑어보시기 바랍니다.
삼국시대에 백제의 변방인 우술군에 속해있던 대전지방은 백제가 도읍지를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긴 이후부터 관방의 요충지로서, 당시 신라와의 국경을 접하는 국경선상에 위치하게 되었다.
대전분지에 축조된 40여개의 산성과 보루로 보아 대전은 성곽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계족산-식장산계
계족산-식장산계의 산성은 대전 동부 산악일대에 깊은 계곡을 낀 높은 산령에 일렬로 분포되어 신라의 전초기지인 고리산(현재의 옥천)과 대치하고 있다.
이 산령에는 계족산성을 비롯하여 성치,노고,마산도, 이현동, 장동, 질현성 등 15개의 산성이 분포되어있고, 공주로부터 불과 38km의 근거리에 위치해있다보니 이 지역이 적군에 넘어가면 백제의 명맥에 매우 위태롭다보니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계족산-식장산계는 신탄진에서 옥천에 이르는 금강을 방어함과 동시에 신라의 전초기지인 보은의 삼년산성에서 옥천-대전-공주이 이르는 신라의 침입로를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 주변에는 옛 교통로의 주요거점인 미륵원과 같은 역원이 있었으며 지금까지 경상도에서 이곳을 지나 서울로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것이었다.
또한 경상도방면의 긴급소식을 계족산성 정상부의 봉수시설을 거쳐 청주와 충주로 이어지게 해 서울로 전달했던 역할도 했었다 한다.
2.갑천수계
대전의 중심을 관총하는 하천이면서 그 중심인 평야지대에 위치한 산성이라는 게 특이할 만 하다. 이 산성들은 백제-신라의 국경선상에서 웅진이나 사비로 진출하는 공격로에 4중5중으로 배치되어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는 배치상태를 보여준다.
3.조사 발굴된 산성
대전관내 40여소의 산성 가운데 정비목적으로 시행된 보문산성, 계족산성, 월평동산성 세곳과 구제발굴로 이루어진 월평동유적등 4건에 불과하다.
4.월평산성
대전광역시기념물 제7호.
성벽은 거의 붕괴되 원형을 잃었으나 윤곽은 뚜렷이 남아있음.
최고처인 소봉을 남서벽의 일부로 삼고, 이를 기점으로 하여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
성벽의 축조상태를 보면 자연석괴로 외면을 맞추어 축조.
북문지는 문폭이 3m로 이 성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성벽이 약간 어긋나 있어 통행하려면 S자형으로 굽어 들어가야 하고 북문지에는 매우 평탄한 곳이 있으며 그 중앙에 우물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이 부근은 매우 습한 것으로 보아 성내의 빗물을 처리할 집수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됨.
또 건물지로 추측되는 평평한 곳에서 백제시대의 기와나 토기편들을 볼 수 있다.
1990년 이 산성의 동남쪽 외곽 능선에 정수장신설 계획을 위해 시굴조사한 바가 있으며 백제시대 집자리 및 이유를 알 수 없는 구덩이가 수없이 발견되었고, 기와편과 토기편이 많이 발견되었다.
5.대전지역 산성의 규모
계족산성(1037m) > 질현성(800m) >적오산성(730m) > 월평동산성(710m) > …..흑석동(540m) >…보문산성(280m)>….
———-대전문화 13호에서 발췌정리————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