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산(衛王山)의 의미 그리고 전설의 그림자
원정동과 유성구 방동의 경계에 우람하고 경외스럽게 솟아 있는 산을 사람들은 위왕산(衛王山)이라 부르고 속칭 우렁산이라고도 한다.
이 위왕산은 신도안의 수구막이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는 산으로 신도안에 자리하고 있는 임금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왕산(衛王山) 혹은 위왕산(爲王山)으로 부른다고 한다. 신도안 부근의 모든 산들이 신도안을 향해 굽히고 있는 모습인데 비해 이 산만은 신도안을 등지고 있는데 그것은 수구막이를 호위하는 대장이 말을 탄 자세로 외곽을 경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그런 이치로 하여 이 산이 있음으로서 신도안은 도읍터의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는는 것이라 한다. 또한 원정동에서는 우렁산, 중뫼(中山)라고도 부르고, 위왕산(衛王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모든 산이 계룡산을 향했는데 유독 위왕산만은 정반대 방향으로 토라져서 기묘한 바위산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산을 우렁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일제가 호남선을 부설할 때 이 산의 바위를 깨니 산이 우렁우렁하고 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뫼마을에서 두계로 이어지는 철근 콘크리트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를 위왕산다리라고 하며, 호남선 대전기점 22.186㎞까지 118m의 철교가 위왕산 아래 두계천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데 이를 위왕산철교라 한다. 1911년 9월 12일 호남선의 개통 직전에 놓여진 철교이다.
원정동의 중뫼에서 논산군 두마면 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가 하나 있는데 이를 명마고개라고 한다. 임진왜란때 이여송이 조선에 인물이 너무 많이 나는 것은 우려해 이 고갯날을 끊었는데, 그때 이곳에서 명마가 나와 죽었기 때문에 이곳을 명마(名馬)고개라 부르게 되었고, 그때 그 죽은 말을 고개 근처에 묻어주어서 그곳을 지금도 말무덤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명마고개 부근을 왜정때 호남선 철도를 놓기 위하여 또 한 차례 산 주룡을 잘랐는데, 이때에 자른 곳에서 피가 흘렀으며, 근래 복선화 공사를 하기 위해 바위를 더 깨내기 전까지도 혈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본디 이 마을은 790여호의 큰 마을이었던 것이 왜정때 산맥을 자른 뒤부터 점점 세력이 약해져 지금과 같은 10여호에 불과한 작은 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원정동에는 전설이 서린 이름난 바위들과 골짜기들이 많은데, 바위로는 가마바위, 부처바위, 삼년바위, 황새바위, 책바위 등이 있고, 골짜기로는 서당골, 백토골, 절골, 놋적골 등이 있다.
가마바위는 중뫼와 원원정 중간쯤 개울 북쪽 산 중턱에 있는데, 이 가마바위는 그 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부처바위는 가마바위 못미쳐 마을 뒤에 병풍처럼 넙적하게 서 있는 바위를 말하는데 그것이 이 바위가 부처처럼 생겼대서 붙여진 이름이며, 전에는 이 바위에 치성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삼년바위는 원정동 무도리 마을에서 물 건너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쪽 큰 앞산 발치께로 개울에 닿아 있는 큰 바위이다. 이 바위의 본디 이름은 <아루배>였던 것이 근래 이 바위밑에서 여름에 헤엄치며 놀던 젊은이들이 3년마다 꼭 한 명씩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데에서 옛 이름보다도 지금은 새로운 이름인 삼년바위로 더 익히 부르고 있다 한다.
황새바위는 뒷골 어귀에 있는 바위인데 그 모습이 황새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 바위가 있음으로 해서 위왕산, 속칭 우렁산이 꼼짝 못한다고 한다.책바위는 세편이 어귀에 있는 바위인데 책을 많이 쌓아 놓은 형체를 이루고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마침 서당골 건너에 있어서 이채롭다.
서당골은 옛날 서당이 있던 골짜기라 붙여진 이름인데 황새바위 밑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한 가구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빈골짜기로 용촌으로 편입되었다.
백토골은 상발 맞은편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골짜기인데, 백토가 나오는 골짜기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천연의 산골짝 같지만 실제는 이곳에서 옛날 사기를 굽느라 흙을 많이 파내 골짝처럼 움푹한 모습이 됐다고 한다. 이곳 흙은 희유스름한 빛을 띠고 있어 보통 흙과는 특이하게 다르다 하며, 마을 뒷쪽에서 사기를 굽던 흔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절골은 원정동 상발마을 남서쪽 산골짜기이다. 옛날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절은 옛날 빈대가 끓어서 망했다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절터 기왓조각을 파보면 빈대가 나온다 한다.
놋적골은 원원정 뒷골짜기를 말하는데 옛날 이곳에서 놋쇠를 구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이 원정동에는 명당이 많아서 조선조 유학의 대가 동춘당 송준길과 그 아들 송광식의 묘와 독립운동가 김용원의 묘가 있으며 또한 이곳에는 완산이씨 열녀정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