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남쪽끝을 돌아보고…

2005년 2월 23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봄방학이고 겨울을 마감하는 바쁜 마무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단촐한 5분이었습니다.
남문에서 안선생님께서 이희자, 최지형, 저를 싣고 9시20분 출발. 가수원에서 정간사님과 석기문, 한완숙선생님과 합류.
방동저수지에서 우회전, 금곡천을 끼고 들어가 성북동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백운봉과 금수봉과 빈계산의 위치와 크기를 눈으로 확인하고,
금곡천이 백운봉과 금수봉사이 골짜기에서 내려온다고 합니다.
성잣 뒤북의 성북동(잣뒤마을)의 돌탑앞으로 갑니다.
대보름을 준비한 돌탑이 어김없이 금줄이 드리워지고, 황톳가루도 점점이 뿌려지고, 돌탑위 머릿돌에는 모자도 쒸워져 있습니다.
산제는 새뜸마을에서 지내고, 탑제는 이곳 잣뒤마을에서 지낸답니다.
어떤 경우는 돌탑 속에 호미나 괭이 등 농기구들을 넣어서 탑을 쌓기도 했다고 하고, 황토 대신 오곡이나 고춧가루 등을 뿌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돌탑의 뒷배경으로 교회십자가가 눈에 무척 거슬리게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돌탑과 나란히 8구루 이상은 됨직한 오랜 느티나무들이 길을 따라 도열해 있습니다.
신도안에서 진잠으로 가기위한 옛길이었는데, 길을 따라가면 성북동 산성밑으로 해서가는 아주 큰길이었다고 합니다.
동네사람 말로는 진잠 우시장에 가려고 소떼가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이 어릴 적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마을과 길을 경계시켜주면서 마을을 감싸는 듯한 느티나무는 수구막이의 형태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마을의 수호신처럼 나뭇가지가 꺽어져 떨어져도 가져다 땔감으로 할 수 없었고, 자동차가 툭 치고 지나갔다가 운전수는 즉사했다고 할 만큼 신목이라고 합니다.
성북동 산림욕장으로 갑니다.
날이 풀려선지 양지에선 제법 따사로움이 몸에 느껴집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씩 하며 산림욕장 안내도를 살핍니다.
왼쪽의 관음봉을 대전의 시계로 하여 가운데 백운봉, 오늘쪽이 금수봉(꼭대기 정자)이라 그려져있습니다.
잎이 돋아나고 개울물 시원할 때 이곳에 오면 그 감이 또 새로울 것이라 생각이 되고 꼭 오고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북동 봉덕사로 향합니다.
석조보살입상이 있고, 오른쪽 대웅전이 있을 법한 자리에는 일본식 슬레이트지붕의 건물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제조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보살입상은 원래 이곳에 없었는데, 이 절의 비구니 전 전 지주의 현몽에서 본대로 가보니 석조보살이 누워있었다 하였고, 이곳으로 모시고 왔다고 합니다.
얼굴 부분이 많이 문등그러져서 눈 밑으로 성형수술을 시도해 코를 살리고 입술을 살려서 옆으로 보면 이순자 턱처럼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왼손은 목련 봉오리처럼 오무리고 있고, 오른손은 춤추듯 살포시 내려 뻗었습니다.
이 입상을 받치고 있는 발또한 현몽에서 발을 찾아달라는 게시를 받고 밭에 꼿혀있던 것을 가지고 와 이곳에 받쳐놓았다고 합니다.
밭주인이 이 사각형의 돌을 뽑아가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괭이로 어쩌다 돌을 툭 치기라도 하면 그날은 실제로 제 발이 무척이나 아팠다고 합니다.
절 마당에는 5층석탑이 있습니다.
이 또한 진잠초등학교에서 뒹굴던 것을 가지고 와 없는 것을 만들어 짜맞춘 탑인데 나중 대웅전을 세울 것을 생각해서인지 탑의 방향이 교묘하게 틀어져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절은 과거에는 사람 몸 하나만 들어갈 정도의 바위틈으로 입장이 가능했던 석문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들어갈 만큼 길을 넓히고 바위절벽 한쪽을 깍아 넓어지긴 했지만, 지게지고 골짜기 물을 따라 계단으로 올라가던 진잠3명승의 하나일 정도로 그 경치가 좋았다고 합니다.
잣뒤마을 옆을 지나가는데, 동네에서 풍물패가 느티나무 옆을 지나 탑까지 와서 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을의 전통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일제이 차에서 내려 다가갔습니다.
다시 동네 한바퀴를 돈 다음 12시경에 탑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서울서 이 행사를 매년 참석하기 위해 내려온다는 지역주민을 모시고 마을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곳에 산재한 도요터의 자욱과 토기 박편들의 이야기,
봉덕사 산막에 관한 이야기.
느티나무와 성북동 산성 쪽에 길을 내려다 지네가 나와서 못뚫은 이야기. 옛절에 빈대가 너무 많아서 절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등…
차를 몰아 세동으로 접어듭니다.
세동천은 두계천으로 흘러드는 소하천으로 친환경적 공법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하천이었습니다.
갈대가 천연으로 자라나고, 마을은 비닐하우스 등으로 모두 부농이 되었다고 하고요.
특히 이 산길은 봄에 나물 뜯으러 오면 참으로 좋을 것 같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고향의 봄 같은 동네길이었습니다.
이런 길을 안선생님과 함께 아니라면 누가 데려오겠는가 싶었지요.
안선생님도 사모님을 모시고 여기 데려와서 또한번 뻑! 가게 해드렸답니다. 헤헤
가다보니 왼쪽으로 한창인 계룡산 관통도로공사 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씁쓸.
이 길로 쭉 빠져나가니 신도안 논산방면에서 오는 길과 만납니다.
세동길…봄에 꼭 다시한번 와보고 싶은 길입니다.
이제 달려달려 방동 전에 지난번에 갔던 칼국수집에 가서 점심을 먹습니다.
김치가 죽여주게 맛있는 집. 역시 그집은 양도 푸지고 밥도 주고, 갑천청년이라고 먼저 전화를 주신 안선생님 덕분인 듯 합니다.
다시 봉곡동으로 들어갑니다.
봉곡동길은 우리가 한번 왔던 안세점 바깥세점 마을길이지요.
봉곡동 바깥세점 버스종점 옆에도 선돌이 있습니다. 어제 거리제를 지낸 흔적이 남아있고요.
안세점으로 들어가니 선돌과 마주한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선돌과 느티나무는 더 이상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것들 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시집오는 새색시에게 절대 함부로 하지말라 일러주던 마을의 신앙이었거늘, 시간이 지나감에 퇴색되어가고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만 있었습니다.
금곡천 끝났습니다.
흑석4거리로 나갔습니다.
이제 매노천을 따라 올라갑니다.
300미터 구간의 하천을 자연친화적인 공법을 도입해 만들었다는 어도와 호안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도는 너무 높았고, 수중도 또한 너무 어색했으며, 호안의 돌도 인공적인 석재를 갖다 쌓아놓았을 뿐, 역시 큰 물이 났을때 문제를 많이 들어낸 구간이라고 합니다.
잠시 용태울교까지 걸으면서 봄볕을 쪼여봅니다.
장태산쪽으로 갑니다.
이제 대전의 가장 남쪽 끝마을로 가는 것입니다.
장태산 아래 저수지엔 원앙이 있을 법도 하건만, 물만 파랗습니다.
장태산을 뒤로하고 끝도 없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대전의 시계라는 능선이 가로막고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납니다.
산막. 산이 가로막고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지요.
작은 마을엔 깍아지를 듯한 산으로 둘러쌓여져 있고, 물까치와 직박구리, 버들강아지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호젓하고 여유있게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산아래에 우리가 와 있음이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벌써 3시를 넘기려합니다.
다시 온 길을 따라가다가 지난번에 갔던 사진개마을쪽으로 꺾었습니다.
모래가 많고 나루가 있었던 마을이라 사진개마을이라 했지요.
도로 이곳저곳에 공사를 하고 있었고요.
사진개마을을 벗어날 즈음에 갑천너머로 괴곡동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이곳은 갑천너머 마을인 선골입니다.
윗정림동길을 오면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습니다.
아예 갑천으로 스코프를 갖고 나갔습니다.
흰뺨부터 물닭, 넓적부리, 논병아리, 청둥오리 등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정림동으로 빠져나와 정간사님, 한완숙,석기문선생님과 안녕을 고합니다.
아침 9시반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 1시간 빼고, 5시간 반동안 금곡천과 매노천을 돌았고, 대전의 최남단 마을을 돌아봤습니다.
적은 인원이지만 충실히 해설해주시고, 더 보여주시려고 애쓰신 안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3월에는 더 많은 선생님들이 본격적으로 나오셔서 재밌고 흥미로운 대전 탐방에 동참해주셨으면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정간사님과 오늘 참석해주신 저를 포함한 5분 선생님들께 경의를 보냅니다. 호호호
빠지거나 틀린 것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경관에 빠져서 듣기를 게을리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