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하천에 아이와 함께 나가보았습니다.

2005년 2월 15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발 딛고 들어가기엔 미심이 마음을 잡는, 딱 그만큼만 얼어있는 갑천입니다.
아이는 제법 무게 나가는 돌들을 연신 얼음위에 내동댕이칩니다.
더러는 돌멩이만 댕그르르 미끄러져 굴러가고
더러는 우지끈 깨지면서 연쇄적으로 다양한 조각과 선들을 그려냅니다.
얼음구멍을 가운데 놓고 방사형으로 선이 퍼져나가기도 하고,
그 돌멩이의 여파로 다른 구멍들 속에서 연쇄적으로 솟구치는 물이
왕관모양처럼 모습을 뽈룩 드러냈다가 잦아듭니다.
아이가 얼음도화지에 그려내는 선이 더욱더 선명하고 크게 부서질수록
본능적인 탄성과 함께 기쁨의 감흥을 내뿝습니다.
어떤 유익한 놀잇감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발산작업입니다.
여린 살얼음을 주워듭니다.
무수한 형태의 별들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우주가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살얼음조각을 통해서 해를 봅니다.
수없이 많은 색깔과 빛줄기가 살얼음도화지에 투영됩니다.
세상에는 이런 빛과 이런 색깔과 이런 광채가 있구나…….
아이가 지각하는 색채의 한계는 더 넓어지는 순간입니다.
저 만치 나무를 찍어 패는 낯선 소리가 귀에 들옵니다.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 쪼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퉁퉁퉁 청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맞추어 나뭇조각들이 연신 사방으로 흩뿌려집니다.
자연 속에 내가 이미 하나가 되어있을 때엔 조용히 기다리고 숨죽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귓가에 두 손을 모아 정적을 모으니
딱따구리 소리와 졸졸졸 여울소리의 주고받는 어울림입니다.
어느새 일정한 리듬이 되어 내 안에 노래로 다가옵니다.
자연의 소리는 먼 훗날까지 잊은 수 없는 아름다운 명곡으로 남을 것입니다.
딱따구리가 떠나간 나무로 다가갑니다.
죽은 나무 온 사방에 어떤 것은 깊고 좁게, 어떤 것은 얕고 넓게 구멍을 파놓았습니다.
수피에 만들어놓은 딱따구리의 흔적은
질서도 없고, 원칙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멋스러운 작품입니다.
매끄러운 대패질이나 정교하게 파놓은 드릴구멍은 너무나도 인공적입니다.
딱따구리가 지금 막 만들어놓은 숨결이 느껴지는 천연의 조각이기에
더 아름답고 값진 예술작품입니다.
내 아이가 더 크면 더 이상 감동받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때만이
내 아이를 둘러싼 가까운 자연물과
자연이 빚어내는 인공스럽지않은 형상이나 소리, 움직임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동하며 뇌리에 남아 안정된 심신의 발달에 기여를 합니다.
하늘을 이고 바람을 벗 삼아 짧은 오후 몇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는 속박된 틀 속의 억눌림을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자연이 빚어내는 경이로운 예술작품들 속에서
더 깊은 색과 선과 모양과 리듬과 형상을 배워봅니다.
우리아이게게 자연이 또 다른 어떤 교훈을 줄 지…….
이 겨울이 다가기 전에 또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