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이 구봉산을 만나 동쪽으로 돌아 만나는 마을이 괴곡동이다.괴곡동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느티나무골이다. 괴곡동의 가장 대표적인 마을은 고릿골(고리골)로 가장 큰 마을이며 마을의 지형이 버들고리 (柳器) 같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으로 현재 80여 가구가 살고있는 전형적인 농촌형을 유지하고 있다.고리골은 파평 윤씨의 세거지로 마을 앞에는 호남선 철도 건널목이 있는데 최근 과선교 공사로 건널목이 없어질 처지에 있으며 이 마을 입구에는 市 나무로 지정된 6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를 지내어 한 해의 풍년을 빌고 있으며 또 이곳에는 마을나무로 지정 된 130년 수령의 고리골 버드나무와 보호목으로 지정 되어 있는 150년 수령의 왕 버드나무가 있다.고리골 동쪽으로 갑천변에 있는 마을은 말 그대로 강변마을이며 고리골과 새뜸의 중간에 있어 중촌이라고도 한다. 새뜸(新村)은 새로 생긴 마을 이란 뜻이다. 고리골의 북쪽에는 북뜸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고 주변에 모래가 많아서 붙여진 모새골 이라는 마을도 있다. 고릿골 아래에는 두 개의 보(洑)가 있다. 이 중 윗쪽의 보를 상보(上洑)라 하고 상보 안쪽에 있는 마을을 상보안 혹은 상보리라 한다. 현재 20여호 남짓 살고 있으며 이 상보안에는 물이 깨끗하여 소문난 상보안 유원지가 있다. 고릿골의 동쪽으로 갑천을 건너면 선골이 있는데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하나 있다. 이 고개를 선골 고개라고 부르는데 이곳 선골 뒷산에 있는 “장수바위”는 세개의 바위가 받침대 처럼 놓여 있고 그 위에 큰 바위가 올려져 있어 옛날에 한 장수가 이곳에 큰 돌을 올려 놓았다 한다. 그리고 선골 뒷산 중턱에 있는 집 채 만한 큰 바위를 “텅텅바위”혹은 “흔들바위”라 하는데 돌로 이 바위를 치면 “텅텅” 소리가 나고 흔들면 움직인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또 선골 뒷쪽에 서 있는 두 길 남짓한 돌을 우병사(禹兵使)의 지팡이 돌 이라고 한다. 이 돌은 인조 2년 (1624년) 이괄의 난 때 임금의 공주 파천에 공이 큰 우상중 병사가 지팡이 처럼 짚고 다니던 돌 이라고 한다. 병사는 조선시대 각 지방의 군대를 통솔하고 담당하던 종2품의 벼슬로 병마절도사의 준말이다. 선골에는 조선 선조때의 충신 김여온의 묘도 있다. 임진왜란때 조헌, 양응춘 등과 의병 선봉장으로 왜군을 물리치고 금산으로 진격 하였다가 그곳에서 전사를 하였는데 자손들이 시신을 찾아 선골에 장례 하였다. 그리고 선골에는 조선 인조때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낸 윤흡의 신도비와 열부 충주 박씨 의 비각도 있다. 이밖에도 괴곡동에는 15만평의 대전 광역시 공설 묘지가 있고 호남선 철도가 지나가는 괴곡 터널이 있다. 이제 갑천은 유서 깊은 괴곡동을 지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서 차분하게 대전의 중심부로 향해 나간다.
사진;백승미. 2004/9/2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