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매섭게 춥다. 한동안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이상현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이 내심 불안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답사 다니느라 걸린 감기몸살에 맥 못 추니, 다시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마음이 이리 간사해 서리….
지금 이 시간에도 해설사 선생님들은 구간별로 팀을 이루어 하천에 찾아온 새들 새느라 카운터기의 버튼눌르기에 엄지손가락이 많이 아플 것 같다. 오후에 있을 으능정이 거리에서의 “계룡산 관통도로 백지화 캠페인”도 있다 하는데 참석 못함이 너무 죄송하다.
얼마 전 폐형광등 수거 캠페인때 전단지를 돌렸는데 어색하기도 하고 받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무안해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평소 나의 모습이기도 하니 자업자득이었고, 상대방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녹색연합은 생태교육뿐 아니라 인간교육도 시켜주나 보다.
답사다닐때 보면 논두렁의 고인 물들은 얼었던데, 냉랭한 갑천에 발 담근 철새들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베리아에서도 잘 버텨냈으니, 이정도 추위에는 끄떡없겠지. 천적이나 악천후와의 싸움을 견뎌내고 삶을 위한 비행으로 갑천까지 날아온 위대한 여행자를 보고 있노라면,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소중하고 가슴이 아리다.
새에 관심을 갖게 되니, 예전에 보았던 “위대한 비상”이 생각났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 기회가 또 있을 리 만무여서 얼마 전 1000원 주고 4박 5일 동안 빌렸다. 참 싸기도 하지. 리포트 쓰려고나 빌려갈까 찾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2002년 정숙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대덕문화센터까지 가서 그 영화를 보았었다.
1시간 30분 동안 대사도 없이 자막만 가끔씩 나올 뿐인 영화를 보면서, 감동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따분하기도 했었다.
정말로 큰 감동을 받은 정숙과 감동 받은 척한 나는 그곳에서 준 대형 브로마이드를 갖고 와서 나는 큰아이 방에, 그녀는 현관문에 떡 붙여놓았다.
지금도 아이방문 안쪽에 붙은 화보에는 “ 40,000km, 그것은 생존이며 위대한 도전이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데 읽을수록 감동적인 문구다. 엄청 큰 보름달을 배경으로 십여 마리의 고니가 길고 우아한 목을 쭈욱 빼고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유유히 날아간다.
수년 동안 들락거리면서 스쳤던 새들! 걸려 있다는 자각도 못한 체 방문에 붙은 새들이 어느 날부터 자꾸 눈에 띈다. 새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한다. 고니!
갑천 하류에 출현한 가장 높이 나는 철새중의 하나인 고니를 처음 보았던 안 여종 선생님은 항상 그 대목에선 흥분을 감추지 못하신다. 눈앞에 그 커다랗고 하얀 새가 날아간다면, 물봉선의 씨앗주머니를 스쳤을 때의, 그 전율감이 다시 한번 느껴질 것 같다.(창피한 일이지만 난 그때 너무 놀랐다.)
화면에 등장한 수천마리의 새들이 연출해 내는 기막힌 장면들도 너무 멋있었지만 갑천에서 본 청둥오리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내가 직접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체험학습의 진가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내 눈으로 본 적 없는 새들은 청둥오리보다 훨씬 멋져도 내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초록머리, 흰목걸이, 구루쁘 말은 뒷꽁지의 청둥오리가 여운을 남긴다. 전민동 탑립돌보에 가면 너무 많아 식상해져서 새로운 녀석들 찿느라 바빴는데, 구관이 명관이다.
미안하다 청둥오리야! 앞으로 너 무시하지 않을게…….
나의 시들어 가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태탐구에 정신 못 차리게 만든 갑천의 철새들! 이름도 생소했던 고방오리, 흰 죽지, 쇠오리, 논병아리, 홍머리, 청머리, 물닭, 비오리, 넙적부리…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모습들! 그것이 고것 같고 고것이 그것 같은 종이 다른 오리들의 암놈들이 아직도 나를 헷갈리게 하지만 수놈들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중앙과학관 백운기 박사님과 탑립돌보에 처음 나갔을 때, 흰뺨검둥오리도 구별을 못해서 헤맸고, 스코프 고장날까봐 남들이 다 조립해 놓은 스코프에 눈만 빼꼼히 보다가 새가 사라지면 손잡이 움직이는 것도 어색해서 그만 돌아섰었다.
넉 달 사이에 자유자재로 스코프를 움직일 수 있게됬고, 갑천에 여행 온 웬만한 녀석들 얼굴보면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됐으니, 그 희열과 뿌듯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
벙거지 모자에 거무틔틔한 옷에 마른 풀이 붙어 망태기 할머니가 된 듯해도 스코프 속에 담긴 녀석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재미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번 실천해보심이 어떨는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강선생 따라 녹색연합에 와서 갑천 생태문화해설사 교육을 받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결과 생태환경차이에서 비롯된 사회체제나 관습이 세상사와 인간을 보는 관점의 차이를 가져오고 사고방식까지도 지배한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생태환경이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뒤늦게나마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
새로운 인연들과의 차곡차곡 쌓아가는 추억들과 서로를 알아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다.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의 친분을 넘어서 그 눈웃음을 보고도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인연이고 싶다. 한해가 저물어 간다. 내일은 성탄절이고 며칠 지나면 제야의 종소리가 밤하늘에 퍼지겠지…….
2005년의 태양은 다시 솟아오르고, 자연의 피조물인 우리는 그에 순응하면서 또 다른 날을 살아갈 것이다. 2004년 후반기를 같이 공유했던 선생님들.
Merry christmas!!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