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효형출판)에서 발췌했습니다.
게시판에 오른 갈매기 모습을 보면서, 우연히 읽게 된 내용을 알려드리고 싶어 컴앞에 앉긴 했는데, 저작권법에 걸리면 여러분이 거들어주시와요~~.
새들 중에서도 갈매기만큼이나 암수가 공평하게 자식 양육에 동참하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조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갈매기 부부는 거의 완벽하게 열두 시간씩 둥지에 앉아 서로 알을 품는다.
그리고 나머지 열두 시간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바깥일을 본다. 바깥양반이나 집사람의 개념이 젼혀 없는 사회다.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갈매기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앞선 동물들이다. 갈매기 부부의 금슬은 실로 탄복할 만하다. 갈매기 부부는 비번식기인 겨울에는 서로 헤어져 살지만 해마다 번식기가 되면 어김 없이 같은 장소로 날아와 지난 여름 함께 신방을 꾸몄던 짝을 찾는다. 물론 지난 해의 결혼생활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자식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경우에는 미련 없이 서로 갈라서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자식들을 기른 부부는 애써 서로를 찾는다. 겨우내 또는 먼 바다로의 긴 여정에 둘 중 누구에게라도 불행이 닥쳐 돌아올 수 없게 되었을 때 며칠씩 짝을 찾아 우는 소리는 우리 인간의 귀에도 마치 사랑하는 임을 그리며 통곡하는 절규처럼 들린다.
이렇게 부부가 함꼐 자식 양육에 힘을 모으는 새들의 수컷은 대개 암컷이나 별로 다를 바 없는 깃털들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갈매기의 암수를 구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원앙의 수컷은 그렇게도 화려한 옷을 차려 입었는가? 최근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수원앙은 뜻밖에도 결코 믿을 만한 남편이 못 된다. 아내가 버젓이 있는데도 늘 호시탐탐 다른 여자들을 넘보는 상당히 뻔뻔스런 남편이다. 자기 아내는 다른 사내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지키면서 기회만 있으면 반강제적으로 남의 여자를 겁탈하기 일쑤다.
실제로 한 둥지에서 태어난 새끼들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상당수가 아비가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남의 아내를 넘볼수 있으면 남도 그럴 수 있다는 엄연한 삶의 진리는 새 둥지 속에서도 이렇듯 나타난다. 평생 한 지아비만을 섬기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아름다운 꿈을 꾸는 새 신부에게 원앙은 그다지 어울리는 선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옛날 우리 할아버지들께서 겉으로는 충실한 남편인 양 행동하면서 일단 혼례를 올린 뒤엔 늘 다른 여인들을 넘보는 수원앙의 속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사뭇 짓궂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