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돌
선돌(立石)은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돌을 어떤 믿음의 대상물이나 특수목적을 가지고 세운 돌기둥을 말한다.
지방에 따라 할머니탑·할아버지탑·할미바위·장수지팡이·돌장승·쇠뿔미륵·수구막이·수살장군·미륵부처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선돌은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같은 평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낮은 구릉위나 비탈에 세워지기도 하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바로 인접되어있는 곳도 있다.
선돌의 외형적 형태가 남근과 닮았다고 해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라는 설과 한집단의 영역을 알리는 표지석이라는 설도 있다.
2.지석묘
고인돌(지석묘)은 석관묘,옹관묘와 함께 청동기시대의 묘제로서 전전세계에 분포해 있다.
유럽에 순수고인돌이 수천여기에 지나지않고, 동남아도 수백기에 지나지않는것으로 보아 3만여기가 함북을 제외한 전역에 고르게 분포한 한반도야말로 세계적으로 가장 조밀한 분포권을 보여주는 고인돌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3.지석묘의 명칭
상석: 지상에 노출한 한개의 큰 돌
지석: 상석을 받친 돌
석실: 상석밑의 매장실
4.지석묘의 형식
(1)북방식(탁자식):
상자모양의 석실을 지상이나 지하에 구축하고 그 위에 한개의 대형 널빤지 모양의 돌을 덮은 형식으로 탁자모양임.
(2)남방식:
부정형의 대형판석을 塊狀形(흙덩어리모양)지석으로 고이고 지하에 매장시설을 한 것으로 영호남지방에 많으며, 이북에선 발견된 예가 없다.
(3)무지석식:
탁자식이나 기반식에서와 같은 상석밑에 지석이 없다는데서 붙여진 것으로
외관은 넓적바위나 둥굴바위가 땅위에 놓여있는 형태로서 자세히 관찰하지않으면 인공의 흔적을 엿볼 수 없을 정도이다.
5.고인돌의 기원
(1)북방기원설:
청동기시대 묘제인 돌널무덤의 분포상은 산이나 구릉 정상부 또는 경사면에 위치한 경우가 많으며,
북방(요녕지방)의 돌널무덤에서 발전했다고 보고
돌무덤 뚜껑이 커지면서 개석식 고인돌이 되고
무덤이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북방식 고인돌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남방기원설의 고인돌이 떼를 이루고 있는 반면 돌널무덤은 떼를 이루고 있는 예가 거의 없다.
(2)남방기원설:
동남아로부터 바다를 건너 전해져왔다는 설로 평안도 황해도 전라도의 주로 해안이나 강변에 분포하고 있고 한 지역에 떼를 이루어 분포 하는 것이 특징으로 미루어 신석기 시대의 문화성격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학설이 있기도 하다.
(3)독자발생설(자생기원설):
고인돌이 우리나라에 가장 밀집되어 있고, 형식도 다양하며, 주변의 고인돌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세계적으로 많은 수의 군락이 형성되었고, 오랜기간 만들어졌으므로 어느곳의 고인돌보다도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북방문화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나오기도 하고, 농경문화의 유물등 남방문화 관련유물이 발견되기도 하므로 남북방의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고인돌문화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6.고인돌의 성혈
고인돌위에 새견진 구멍을 성혈이라고 하며 직경 5∼10cm의 정도에 깊이 3∼5cm 내외가 대부분이나 15∼20c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성혈의 모습은 마구잡이로 그려넣은 게 아니라 정형화 된 틀 아래 연관된 모양의 북두칠성의 모습과 같기도 하고, 성혈의 갯수도 다양하여 지름의 크기와 위치간의 관계를 고려할 때 하늘의 별자리들을 그려넣은 경우도 있다.
민간에서는 성혈이 파여져 있는 바위를 ‘알바위’, ‘알터’, ‘알구멍’, ‘바위구멍’이라고도 하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청동기시대에는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 시기였고, 강력한 권력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펴나가던 시기였다.
고대사회에서는 농경을 위해서는 하늘을 살피고, 천문을 관측하는 일이 중요했으므로 이 천문학과 성혈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