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해설사소감문(9월 3일)

2004년 12월 9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도심의 때가 묻기 전의 갑천을 몇군데 돌아보고.>
농군의 땀이 충실하게 배여 알차게 들어앉은 낟알,
먼 첫서리 까지 더 오래 견디며 늙어가야만 하는 황금의 호박,
저무는 여름해가 주는 여분의 빛으로도 감사하며 마을길을 덮은 태양초,
계절은 이미 산야를 점령하고,
도시로 흐르는 젖줄에 실려
도심 속으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인류문명의 근원이 강과함께 였듯이
한밭의 태생과 성장의 근원이 갑천이었거늘
어제까지 우리의 하천은 그저
홍명상가 밑에 걸려진 쓰레기와 오물의 대전천,
가수원서 미역 감던 추억만 그리는 유등천이 전부.
그나마도 조금 눈을 떠
뻥 뚫려 사통팔달의 하상도로로,
도심의 숨통 틔워주는 시민공원으로,
하수를 방류하지 않는 성숙된 도시하천으로
갑천이 다시 태어나고 있음에
잠시나마 안도의 한 숨.
그러나
진정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대하니
눈 뜬 장님 이제 볼 줄을 알게 될 줄이야.
무관심 속에 버려졌던 고인돌들, 산성들, 선돌들.
아득한 고래로부터 터를 이루고 살 수 있도록
젖줄이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준 무한의 공들과
과거에도 죽 그래왔건만, 새삼스레 사람들이 알아주는
새와 풀과 물고기 같은 자신이 품은 소중한 식구들.
무정하기만 한 우리에게
갑천은 아무 말 없이 그냥 흘러가고 있었다.
가야 할 고향도 등지고 주저앉힌 갑천이 밉지도 않은 철새들,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자리에서 피고지고 또 피기를 수년째 한 연꽃,
하천의 생태를 산교육으로 보여주는 노루벌에
이제야 눈을 떠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든지 말든지,
갑천은 그냥 그렇게 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의 숨통은
우리의 사랑과 노력과 관심 여하에 따라
더 많은 식구를 키워내고,
불러 모으고,
자생시킴으로 해서
우리에게 더 큰 경이를 줄 것이고,
반성과 낮춤의 도를 알게 할 것이다.
아파트 창가에 앉아
사시사철 날아오는 철새를 친구삼는 그 날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해설사가 되기 전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