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마지막날

2004년 12월 6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두눈을 어떻게 떠야할까…어제 약속한 새벽 법고치는 소리를 들으러 방문을 나섭니다.
누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꼭 봐야 할 것도 아니것만.
남들은 이 시간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달콤한 꿈나라를 헤매이건만,
왜 우리는 이 어렵고도 힘든 수행을 하는 걸까요…
좋아서 하는 일이니 참 아이러니 입니다.
대문을 나서기 전, 마당쇠를 깨웁니다.
대문 옆 문간방에서 자는 사람들 두명이 있는데, 보통은 마당쇠들이 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님들이었고요.
이제 문간방에서 나온 사람들과 함께 새벽길을 나섭니다.
아차! 새벽 법고는 4시에 친다네요. 대흥사 문지기가 돌려보냅니다.
또 다시 들어와 이불속에 몸을 파묻고는 잠깐 눈을 붙이듯 말 듯 다시 일어나는 일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지만,
힘차게 이불을 박차고 대흥사로 나섭니다.
적막속에 방안 가득 들려오던 이 물소리가 바로 저 계속소리였구나, 그 바람소리였구나…
이 숲의 소리들과 벗삼아 조용하고 어두운 산사에 한무리가 들어갑니다.
새벽법고를 울리는 소리 이제 시작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들을라치니, 그 치는 스님의 손놀림이나 힘찬 몸짓이 눈을 떠야함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절묘한 박자와 기막힌 소리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한 타 한 타 않놓치고 바로 독경과 목탁소리 들리고, 바로 또 타종이 이어지고…
모근을 세우는 모든 의식이 끝났을 때 나도모르게 그만 박수를 치려고 한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정말 귀한 경험. 일찍 일어난 댓가였습니다.
아침 7시경 눈을 떴을 때는 동이 터 있었습니다.
어제의 찻물에 전 솜으로 그냥 얼굴을 닦았습니다. 밖이 너무 시려워 먼 세면장까지 가기엔 제 게으름이 발을 잡더군요.
아니 벌써 요강은 치워져있었습니다. 완숙님이 갖고가 이미 부셔놓으셨대요.
아침밥상을 맞이합니다. 놋쇠로 만든 밥그릇에 놋쇠 수저를 탱탱 쳐가며 밥을 먹습니다.
여행내내 두통으로 기운을 못차리고 입맛을 잃은 영미님이 오늘아침은 몇술 뜨시더군요.
그렇게 걱정하던 완숙선생님은 저리도 멀쩡하신데, 덩치 왔다인 영미님이 그만 그 자리를 매꾸고 계십니다.
아마도 대전땅이 텅 빈 것 같다는 메시지로 영미님의 가슴을 아프게하는 정숙님처럼 이심전심 마음을 나누고 계셔서 그런 듯 합니다.
다시 남은 차를 한잔씩 마시고는 짐을 문간방에 다 쌓놓고, 대흥사로 향합니다.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초의선사의 사당을 모신 곳이 함께 해 있기도 하고, 임진왜란때 의병을 이르킨 서산대사의 석탑이 있기도 한 곳입니다.
대흥사의 규모는 너무 커서 시간안에 다 둘러볼 수가 없었습니다.
애당초 오늘처럼 바람이 심하지않으면 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했었던 계획이 있었습니다.
대흥사를 뒤로하고 이제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강진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강진으로 가는 동안 또한번의 단잠에 빠져듭니다.
이때 은숙선생님께 전화가 오더군요. 정말이지 무슨말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깊게 자고 있었고, 횡설수설하다 끊어서 은숙선생님께 좀 미안했습니다.
아마도 이 여행 내내 넘 좋아서 젤 잠을 못잔 사람이 바로 저일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강진읍은 정말로 작은 시골동네였습니다.
그 작은 동네에 모란이 필때까지의 김영랑 생가가 있었습니다.
김영랑이 살던 집이라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않고, 다만 모란만 여기저기 심어놓았더군요. 모란이 심심할까봐 여러 야생초와 나무들을 이름표달아 걸어놓았구요.
덕분에 갖고 간 나무도감으로 나무공부만 실컷 하고왔습니다.
우리역사유적을 둘러보는 곳에서 우리갑천생태문화해설사님들은 문화재는 뒷전이고, 나무나 풀, 날아가는 새만 보면 떠들어대서 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강진시내의 둥지식당에서 마련된 점심상은 우리여행중 가장 만찬이었습니다.
여행 내내 호화스런 식단으로 입을 버려놨으니, 집에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도 됩니다. 또 차려주는 밥상만 이렇게 야금야금 받아먹다보니 손가락 하얗게 일어나던 버듬도 요몇일 찾아보기도 힘들고 부들부들합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청자도요지로 향합니다.
그 유명한 고려청자가 발견된 곳이고, 그 파편들을 갖고 박물관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대를 달리하며 진열된 여러도자기 가운데 유난 새와 꽃들이 그려져있을 때는 두 눈이 반짝 뜨이더군요. 이 새가 무슨 오리일까. 이새는 직박구리, 또는 해오라기…
굳이 의미를 알려고들지말아야 하면서도 근성은 다른데 못갑니다.
이제 대전으로 향하는 길.
일요일 밤이라 차가 예상대로 많이도 밀렸습니다.
고속도로상에서 거의 멈추듯 가는 우리일행은 이제 서서이 엄마와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왓습니다.
집으로 거는 전화 속에서 아이들을, 남편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말씨들이 묻어납니다.
하나같이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열심인 우리 선생님들이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저랑 현숙님, 승미님과 경해님, 완숙님과 희자님, 영미님과 혜란님은 올때부터 가는 내내 버스짝꿍이 되어 많이도 친해지고, 많이도 가까워졌을 것입니다.
제 짝꿍 현숙씨는 정말 착하고 마음이 여린 분입니다. 제 말에 귀 기울여주시고, 제 말에 동의해주시는데 기꺼우신 아주 친절하시고, 정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가까이보니 정말로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도무지 안예 쁜데가 없었습니다. 화장을 안하니 더 뽀드득하고 맑은 피부와 눈이 더 반짝였으니까요.
다들 자기 짝꿍에 대해서 새로워지셨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대전에 도착하니 8시가 되었습니다.
또 그여 주최측에서는 저녁까지 대접한다고 하십니다.
유성문화원에 버스가 도착하자, 기념품인 머그잔까지 주시면서 삼겹살집으로 안내하십니다.
영미님과 승미님, 경해님이 먼저 집에 가시고, 안여종선생님도 몇일 헤어졌던 사모님과 혜정이도 데꼬나오tu서 나머지분들끼리 삼겹살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문화유산해설사님들과도 많이 친해졌고, 유성문화원의 사무처장님과도 이야기 많이 나누었습니다. 모두 다 두리들에게 많은 관심과 기대를 나타내셨습니다.
완숙님 부군께서 나오시고, 현숙님 부군께서 친히 집까지 바래다주셔서 끝까지 남의 배려와 호의를 받고만 여행이 되었습니다.
여행내내 어린 동생들 챙겨주시느라 애쓰신 완숙선생님.
모처럼 휴식인 듯 했지만, 우리 일행 챙겨주시느라 애쓰신 정간사님.
문화유산해설사임에도 우리해설사팀에 비중을 맞춰주신 안여종선생님.
빛나는 해설로 여행의 묘를 알게 해주신 임헌기선생님.
각별한 숙소와 음식으로 황제들의 여행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유성문화원 관계자 분들.
그리고 함께한 모든 해설사나 문화연대, 언론사님들.
정말 감사드리고, 우리 선생님들의 진솔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한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에 또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모두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지혜로운 주부, 해설가선생님들로 다시 태어나시겠지요.
담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참여하도록 합시다. 우리 못가신 선생님들도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