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야그가 나오니 옛날 책을 뒤적여 봅니다
다산 정약용의 시입니다.
고양이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더니
해묵고 꾀들어 요망하기 여우로세
밤마다 초당에서 고기 뒤져 훔쳐먹고
작은 단지 큰 단지 마구잡이 깨뜨리네
어둠 틈타 교활한 짓 제멋대로 다하다가
문 열고 소리치면 형체 없이 사라지네
등불 켜고 비춰보면 더러운 자국 널려 있고
이빨자국 나 있는 찌꺼기만 낭자하네
늙은 주인 잠 못 이뤄 근력은 줄어가고
이리저리 궁리하나 나오느니 긴 한숨뿐
생각할수록 고양이 죄 극악하기 짝이 없네
긴 칼 빼어들고 천벌을 내릴거나
네놈이 생겨날 때 무엇하러 생겼더냐
너보고 쥐 잡아서 백성 피해 없애랬지
들쥐는 구멍 파서 여린 낱알 숨겨 두고
집쥐는 이것저것 안 훔치는 물건 없어
백성들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마저 말랐다네
이 때문에 너를 보내 쥐잡이 대장 삼았으니
마음대로 찢어 죽일 권력 네게 주었고
황금같이 반짝이는 두 눈을 주어
칠흑 같은 밤중에도 올빼미처럼
벼룩도 잡을 만큼 두 눈 밝혔지
너에게 보라매의 쇠발톱 주었고
톱날 같은 범의 이빨 또한 주지 않았더냐
나르는 듯 치고 받는 날쌘 용기 네게 주어
쥐들은 너를 보면 벌벌 떨며 엎드려서
공손하게 제 몸을 바치지 않았더냐
하루에 백 마리 쥐 잡은들 누가 말리랴
보는 사람 네 기상 뛰어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줄 뿐
너의 공로 보답하는 팔사제에도
누런 갓 쓰고 큰 술잔 바치쟎느냐
너 이제 한 마리 쥐도 안 잡고
도리어 네놈이 도둑놈 되었구나
쥐는 본래 좀도둑 피해 적지만
너는 기세 드높고 맘씨까지 거칠어
쥐가 못하는 짓 제멋대로 행하니
처마에 올라가고 뚜껑 여닫고
심지어 담벽까지 무너뜨리네
이로부터 쥐들은 꺼릴 것 없어
들락날락 희희낙낙 수염을 쓰다듬네
쥐들은 훔친 물건 뇌물로 주고
태연히 너와 함께 돌아다니니
호사자들 때때로 네 그림 그리는데
무수한 쥐떼들이 하인처럼 떠받들어
북치고 나팔 불며 떼를 지어선
깃발을 휘날리며 앞장 서 가네
너는 큰가마 타고 거만 부리며
쥐들의 떠받듦만 즐기고 있구나
내 이제 붉은 활에 큰 화살 메겨
내 손으로 네놈들을 쏘아 죽이리
만약에 쥐들이 행패 부리면
차라리 무서운 개 불러대리라
다산의 대표적인 우화시이다. 이 시에서 남산골 늙은이는 일반 백성에, 쥐는 도둑에, 고양이는 아전에 각각 비유되어 있다. <목민심서>에 의하면 도둑이 아전과 짜지 않으면 ‘도둑업’을 시작할 수 없고 아전들에게 일정한 몫을 상납하지 않으면 당장 체포되었다고 한다. 도둑 잡는 토포군관이 모두 도둑의 우두머리라고 말할 정도로 도둑과 아전이 한통속이 되어 백성을 괴롭혔던 당시의 상황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송재소씨가 풀이한 다산시선에서 적어 보았습니다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시로 노래한 다산의 면모가 돋보입니다. 가혹한 세금과 관리들의 착취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편에 서서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를 많이 썻지요.
정치.사회.문화.예술.의술.군사.문학 등에 방대한 저술을 남기고 현실을 개혁하려했지만 개혁을 원하지 않는 세력에 의해 밀려난 유배자였지요.
혹여 강진에서 다산의 숨결이 느껴지면 제게도 조금 나누어 주시길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