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오후 2시 가족과 함께 노루벌을 찾았습니다.
차를 보앞에 대어놓고 천천히 걷노라니
양쪽에 도열해있는 마른풀의 씨앗과 열매들,
털 날아간 갈대들,낫질자국 생경한 까까머리 논들이
가을을 마감하고 있노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주워 와 만들어본 씨앗얼굴들 속에 이미 제 눈에 익은 씨앗들을 보고 시종 반가워하고, 아는 체 찾아보는 모습.
그나마도 이렇게 밖을 뛰어나올 수 있음도
곧 추위에 사그러들을 가을의 마지막 날들이 아닐까 아쉬워
두 눈을 더 크게 뜨고 한낮을 보냈습니다.
많은 얘기가 귀에 거슬리는 아이인지라
열개라면 두개만 얘기해줘야지…하는 작심을 지키려 노력하였습니다.
도무지 눈앞에 펼쳐진 먹이앞에서 목까지 스밀스밀 올라오는 군침거리를 참아내느라 엄마노루는 정말 힘든 오후였지요.
초입에 굵은 자갈과 중반의 잘은 자갈과 모래를 꾹꾹 눌러밟으며,
물길이 말라 저만치까지 걸어들어갈 수 있는 모래톱 끝까지 걸어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졸졸졸 돌위를 흘러내리는 여울옆에서 귓바퀴에 두손을 모아 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요.”
마치 소라를 귀에 댄 것처럼, 소리를 모아듣는 여울의 소리만큼 맑고 청아한 소리는 없습니다.
여울은 이렇게 높이의 차이가 있을 때 물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나는 곳이란다.
시멘트 계단이나 천연의 돌들로 만들수도 있고, 저절로 진 경사가 있을때 만들어 지지.
물이 돌과 부딪힐 때 물방울을 만들어 물속에 산소를 녹게한단다.
여울에는 산소가 풍부하니까 고기들이 새끼를 낳기도 좋고, 식물들도 잘 자라서 먹을 것도 많게되지, 당연히 물고기도 많아지고, 새들도 많이찾아오겠지.
여울은 물속에 사는 것들에도 좋고, 물도 깨끗하게 해주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거란다.
구봉산 어디선가 야~호 반복적인 소리에 자꾸 눈이 산으로 올라갑니다.
몇대의 자동차가 내내 돗자리를 앞에 두고 사람에게나 듣기좋은 음악을 틀어놓고 한가한 신선놀음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 동네에서 터를 잡고 있는 새와 동물들에게는 하루종일 공해로겠구나 아이가 얘기합니다.
저쪽 숲풀 근처에는 사람들이 없는 새벽이나 늦은저녁에는 원앙이들이 살고있단다.
원앙은 다른 오리들과는 다르게 위험하면 숲속으로 들어가 숨는 성질이 있어서, 꼭 숲을 낀 천에만 살고들 있지.
저 멀리 보이는 부리끝이 노란 흰뺨검둥오리는 아주 일찍 온 겨울철새란다. 물이 깨끗하니까 멀리서 이렇게 찾아왔는데, 하루종일 시끄럽게하는 사람들 때문에 낮에는 사람들 멀리로 몸을 피하는구나.
갈대밭 사잇길로 갈대가 무리를 지어 누워있는 것으로 보아 오프로드차의 소행이었습니다.
큰 바퀴를 달고다니는 찝차인 오프로드차는 길이 아닌 곳만 골라서 다니는 악취미를 갖고있단다.
이놈의 차들 이렇게 갈대밭을 망가뜨림으로해서 여기사는 곤충이나 심지어는 풀숲에 지은 새의 둥지마져 모두 파괴시킨다는거지.
이 오프로드차들은 동호회로 줄서서 움직이는 걸 좋아하다보니 한번 이차들이 휘저어놓고 간 들이나 강가는 완전 초토화가 되기도하고,
더러는 올라가서는 안되는 방죽도 올라다님으로해서 홍수가 났을 때 약해진 방죽을 허물어지게하는 원인을 만들수도 있단다.
어영차 아빠의 손을 잡고 방죽위로 올라가다 후다닥닥 아이눈앞에서 날아올라 갑천건너 숲풀속으로 날아 내려앉는 수꿩 한 마리를 눈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 방죽이 없으면 큰물이 났을때 저 안에있는 농작물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물을 가두어 흘러가게하려고 만들어놓았단다.
물은 몇백년아니 몇천년의 역사를 두고 일정한 방향으로 제맘대로 물길을 만들어서 흘러왔단다.
더러는 s자로 휘기도하고, 일자로 뻗기도하면서 말이지.
자연의 섭리인 물길을 인간은 잔디둔치를 만들기위해서 일자로 만들어버리고, 도로나 아파트를 만든다고해서 폭을 좁게 만들고, 심지어는 보기싫고 불편하다고 복개해버리기도 한단다.
그러나 큰물이 났을때 물살이 부딪히는 부분은 계속 부딪혀서 지반이 약해지고, 물량이 많아지면 물이 넘쳐나기도하고, 햇볕도 안들게 만드는 덮어버린 하천은 동식물도 살 수 없는 죽은하천으로 만들어 죽은물만 흘러가게 하는거지.
방죽위를 걸으면서 도꼬마리 다트도 해보고,
박주가리도 건드리며 팅커벨들의 춤도 감탄하며 넋을 빼어놓았지요.
늦은가을 하천변의 씨앗과 열매는 참으로 많은 놀거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지천에 깔린 손높이의 장난감들을 또 겨울방학 숙제용으로 미리 쟁여두기위해 연신 주머니에 주워담기도 잊지않았구요.
해가 서산에 기우는 때.
이제는 천변의 노닐던 차들도 모두 떠나고 오로지 우리가족만 남아 그 적막한 가운데.
이따금 멧새들의 천지가 되어버린 방죽가의 풀가지들에서 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아이와 느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중 몇몇놈 이따금씩 보여주는 자태속에서 머리에 왕관같은 것을 쓴놈들,
엉덩이에 하얀점을 양쪽에 하나씩 단 놈들,
날개깃에 참으로 알록달록한 색깔을 입힌 놈들…
참새같이 생긴 멧새라는 것들이 이토록 다양하고 아름답다는 것도 우리가족 조용히 확인했습니다.
천변 들판에 느닷없이 서있는 저놈들은 버드나무야.
어떤놈은 뿌리를 물에 푹 담구고 있어도 절대 썩지않는 물과 친한 나무지.
물과 친한 것들은 갈대도 있고, 부들도 있고 미나리도 있지.
이것들의 뿌리와 줄기는 물속에서 나쁜물질을 흡수하고 산소를 내뱉어주는 좋은 역할만 한단다.
둔치가에 저절로 자라는 식물들이나 버들가지도 지저분하고 보기싫다해도 절대 베어내거나 뽑아서는 안된다는 거야.
사람들이 잘못생각하고 바다를 막았다가 크게 후회하는 시화호같은 경우
그 일대 세 개의 하천에서 내려오는 하류에 갈대를 엄청나게 심어서 저절로 물을 정화시킬 수 있는 면적을 만들었어.
갈대의 힘은 아주 굉장하단다.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의 모습도 예쁘지만, 갈대가 하는 착한 일은 더 예쁘다는 거지.
도시안에 있는 하천은 요즘에 사람들이 운동하기 좋게, 고기 구어먹기 좋게 하천가에 잔디도 깔아놓고, 하이킹도로도 만들어놓고, 자동차가 다니게도 만들어놓았단다.
참 편리하고 보기좋지?
그러나 물이 많을때나 적을때나 제 멋대로 흘러가게 놔둘 수 있는 하천의 땅을
인간은 그것도 아까워 하천에게서 빼앗았단다.
대신 거기를 잔디를 깔고 자전거도로를 내는 것으로 덜 미안해하면서.
그러나 잔디를 가꾸기위해 뿌려야하는 농약은 그냥 하천으로 흘러들고,
삼겹살을 구워먹고 난 기름도 그냥 하천땅으로 흘러들고,
더군다나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놀아야하는 땅이니 갈대나 버드나무나 하는 잡풀이나 나무들은 아예 심지도 않아서
하천은 스스로 물을 정화시킬 수 있는 도구들을 다 빼앗아 가버린거지.
이렇게 단순한 도심둔치에서는 까치나 비둘기,토끼풀처럼 단순한 생태환경만 가질 수 밖에 없는거란다.
그렇다고 편리한 둔치를 안만들수도 없는 노릇이니
차라리 하천의 한쪽만 둔치로 만들고, 한쪽은 자연하천구간으로 그냥 놔두는게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인 것 같단다.
반반씩만 갖는거지. 자연과 인간이말이야.
구봉산자락이 석양에 반사되어 주황의 산기운을 입고있을 때.
따뜻한 코코아 한잔씩을 손에 쥐고서
오늘 노루벌에 정말 잘 온것 같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응 정말 재밌었어. 요놈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이제 엄마와 너의 눈으로 보는 자연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자연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시나브로 자연에 하나가 되어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눈이 되어감에 기뻤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당분간 밖에 못나올 녀석.
온가을을 진하게 느껴 본 하루여서 엄마는 이 가을 할일 한 것같아 정말 좋았습니다.
시골길에선 의례히 빈집이나 관심두던 남편도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 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