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떡 버티고 있는 배추 25포기!
일요일 시댁에서 모셔왔으니, 벌써 이틀 묵혔네.
월요일, 탑립돌보에 가서 철새 탐조하랴 딸아이 학부모 모임 참석하랴 하루가 휙~
화요일, 교양? 쌓으러 유성문화원 강좌 듣고 오니, 반나절이 다 지나갔다. 배추 껍데기가 말라 들어간다! 야속한 배추. 너 왜 그렇게 빨리 왔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마음의 결정을 하자. 저녁나절에 배추 절구고 한밤중에 마늘 까기 시작해서 새벽2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일이 산더미라 도저히 수요일 마을조사에 참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참에 집에서 차분히 일 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규수업에 처음으로 땡땡이 쳤다. 김장을 끝내고 나니, 속은 시원하다만 어딘가 좀 허전하다.
녹색연합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김장을 밤새워 하는 한이 있어도, 마을조사에 참여할걸 하는 후회감이 든다. 선생님들의 진솔 담백한 조사내용과, 노인 분들의 연륜 깊은 삶의 모습과 떠나가는 가을의 고풍스러운 풍경들을 마주 하고 앉아 있으니, 우리 해설사 선생님들이 경험했을 그날의 느낌이 전해져오는 듯 하다.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하루의 떠나있음이, 한 달 이상의 공백 감으로 다가오는 이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오늘, 갑천종주에 나서본다.
바쁜 일 제쳐놓고 뛰어나왔을 갑천 생태문화 해설사 선생님들은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추슬러 더 노력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석기문 선생님, 한 완숙 선생님, 정 경례 선생님으로부터 세월이 가도 무디어지지 않는 지성과 감수성을 배운다. 세분들처럼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10년 후의 내 모습. 상상만 해도 멋지다!
노랑 왜개연꽃을 처음 보았던 양산교를 기점으로 갑천종주 출발이다.
아자! 구호외치며 전체사진 한 장 찰카닥!
굽이굽이 물길 따라 한발 한발 내딛는다. 밭이랑 사이로, 흙길로, 낙엽 쌓인 아스팔트 위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쏟아지는 개울 위를 펄쩍 나르면서 우리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우명교를 지나 만난 원앙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백로들의 날개짓은 우아하고 청초하다. 둑을 따라 걷노라니, 아주까리, 나팔꽃, 갈대, 이름모를 식물들이 바삭거리며 엉클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씨가 달려있는데 껍질을 까보니 귀여운 모습으로 숨어있다. 대롱대롱 매달린 쪼그리한 고욤도 맛보면서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본다.
오늘의 도착지 증촌교를 2백 미터 남짓 앞두고 덩굴식물인 박주가리를 보았다.
뿔모양으로 박처럼 쪼개져서 흰털이 삐죽삐죽 나온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안양천 갔을 때,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흰 즙액이 나온 보라꽃 핀 녀석이 바로 박주가리다. 이름은 요상한데, 씨에 흰털을 달고 날아다니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선생님들이 일부러 날려보더니, 그 모습에 반해서 환호성을 부른다.
하늘 위로 유유히 떠가는 모습이 이 경해 선생님 표현대로 피터팬에 나오는 요정 팅커벨을 연상시킨다. 경해 선생님은 얼굴도 예쁘지만 표현도 너무 예쁘게 한다.
몽롱하고 뿌연 하늘 빛 속에 팅커벨은 춤추고, 감성이 풍부한 소녀(?)들은 삼삼오오 짝지어서 가을 길을 걸어간다. 갑천이라는 네버랜드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느끼고 체험하게 한 뒤 현실로 돌려보내는 정기영 선생님은 우리들 마음속의 지워지지 않을 피터팬이 아닐까?
맑은 물이 흐르는 갑천, 새들과 물고기의 낙원 갑천이 환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갑천과 나란히 했던 가을날의 동화속 같은 추억을 가슴 속에 꼭꼭 채워본다.
소중한 인연들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음이 진정 행복했고, 이러한 여건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