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에 갑천에서 흰 갈매기를 보았다네요…

2004년 10월 30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제 목 : 옛 시에 갑천에서 흰 갈매기를 보았다네요…
대전관련 기록을 뒤적이다 대전에 살았던 옛 선인들이 그들의 시에 남긴 새에 관한 기록을 찾게 되었습니다. 재미도 있고 흥미 있는 내용이 있어 함께 나누려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조선환여승람(주1. 1910∼1937년까지의 인문지리 현황을 담은 국내 최대의 지리서)에 대전팔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 계족소우(鷄足疎雨) : 계족산에 성근비
2. 보문초월(寶文初月) : 보문산의 초생달
3. 구봉촉석(九峯矗石) : 구봉산에 뾰족 쌓인 돌
4. 갑천낙안(甲川落雁) : 갑천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
5. 유성모연(儒城暮烟) : 유성에 저녁 연기
6. 초강어화(楚江漁火) : 초강(대청호)의 고기 잡는 횃불
7. 식장반조(食藏返照) : 식장산에 반사하는 해 비침
8. 고산효종(高山曉鐘) : 고산사의 새벽 종소리
이 중 갑천낙안(갑천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의 아름다움이 대전팔경 중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갑천낙안의 장소가 도룡동 일대이거나 전민동에서 갑천 하류지역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지금 대전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환경이 많이 변했지요. 그런데 불과 20여 년 전 신탄진에 3. 4 공단이 들어오기 전에는 갑천 하류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수만 마리의 청둥오리 무리들과 함께요.
경험담을 말씀드리면 올 1월 하순에 갑천 하류인 신구교 지점에서 해가 질 무렵 갑천 둔치에 내려앉는 큰기러기 30여 마리의 모습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 놈들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어제 내려앉은 그 둔치 근처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전팔경에서 이야기한 기러기 떼는 수백 마리 이상은 되었을 거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래야 장관이었겠지요.
중구 무수동에 사셨던 유회당 권이진(1668-1724) 선생님이 희암 박자임이 은거하는 곳을 중심으로 대전팔경을 이야기 했습니다. 정확한 은거지는 모르겠지만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아마도 지금의 서구 일원 중 탄방동(숫뱅이)의 모노래 소리가 들리는 유등천 부근 어디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권이진 선생님의 시에 보면
1. 문산조하(文山朝霞) : 보문산의 아침안개
2. 원촌모연(遠寸暮烟) : 머티에 저문 연기
3. 동봉신월(東峰新月) : 동봉의 초생달
4. 계악석조(鷄岳夕照) : 계족산에 저녁 해 비침
5. 탄평농가(炭坪農歌) : 숫뱅이에 모노래
6. 애천어화(艾川漁火) : 애천의 고기 잡는 횃불
7. 예정창취(藝亭蒼翠) : 예정(가장동)의 푸른 산
8. 유포귀안(柳浦歸雁) : 버드내 물가에 돌아드는 기러기 떼
이 중 유포귀안(버드내 물가에 돌아드는 기러기 떼)이란 시구에서 유등천 주변에도 300여년 전엔 기러기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유등천에는 도심하천에서 드물게 한밭대교를 중심으로 한 유등천 상,하류지역과 특히 수침교에서 용문교 사이 그리고 가장교와 수침교 사이에 매년 10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는 다양한 철새들 수천 마리를 관찰 할 수 있습니다. 재작년(2002년-2003년)까지 만해도 유등천에 대여섯 마리의 큰기러기와 큰부리큰기러기를 볼 수 있었는데 작년 겨울에는 한 마리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지금부터 400여 년 전 금암 송몽인(1582-1612) 선생님이 갑천팔경을 노래했습니다.
1. 춘사새신(春社賽神) : 봄 중춘(2월)에 농사를 잘 되게 해달라는 제사에 신 굿하는 풍경
2. 하휴분앙(夏眭分秧) : 여름 논에 모심는 일
3. 동봉토월(東峯吐月) : 동쪽 봉우리에 달 뜨는 모양
4. 서령적설(西嶺積雪) : 서쪽 고개에 쌓인 눈
5. 평교목우(平郊牧牛) : 평평한 들 밖에서 소 풀 뜯기는 풍경
6. 단교기려(斷橋騎驪) : 단교에 말 달리는 풍경
7. 고산별학(孤山別鶴) : 고산에 떠 나가는 학
8. 쌍천숙로(雙川宿鷺) : 쌍천에서 자는 백로 떼
이중 고산별학과 쌍청숙로의 내용을 보면 학과 백로가 등장하는데 텃새화된 백로는 지금도 아무 때나 하천에 나가면 쉽게 볼 수 있으니 그렇다 치고 ‘학’은 짐작컨대 송몽인 선생님이 백로와 학을 구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학 즉, ‘두루미’가 400여년 전엔 분명 갑천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는 말인데, 현재 대전에서는 학(두루미)을 볼 수가 없습니다. 천연기념물이기도 하지만 현재 그 수가 많이 줄어서 철원이나 천수만, 순천만 일대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새가 되었습니다. 모르지요. 수십 년 전에 두루미가 갑천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었는지도. 한번 알아보자구요.
새와 관련한 특이한 기록도 있습니다. 도룡동의 앞 시내(현 위치는 갑천 엑스포다리 부근)를 용포(龍浦)라 하여 유성팔경에서도 이 곳 용포행주(龍浦行舟) 즉, 용포에 뱃놀이가 들어 있으니 김병홍(조선후기)은 용포행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해집니다.
부세오생불계주(浮世吾生不繫舟)
만년교하수동류(萬年橋下水東流)
수간진일무인화(垂竿盡日無人話)
차락하여문백구(此樂何如問白鷗)
「들뜬 세상에 내가 나서 배에 매지 아니했는데
만년교 아래에는 물이 동쪽으로 흐른다
낚시대 드리우고 종일토록 사람과 이야기 없어도
이 즐거움 어떠하냐고 흰 갈매기에 물어보라」
이 시에서 흰 갈매기를 보지 않았는데 흰 갈매기에게 물어보라고 했을까요? 분명 갑천에서 갈매기를 보았기 때문에 물어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갑천에 갈매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매기, 어 그거 바다에서 사는 새 아닌가?’라고 말하지만 갈매기가 바다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지요. 이를 증명하듯 작년 겨울에 대전MBC 뉴스데스크 시간에 재갈매기가 대전 갑천에서 발견되었다는 방송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관심들이 생긴 것이지요. 갈매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예전부터 갑천이나 금강에 겨울이면 찾아 왔는데 몰랐던 것이구요. 작년 겨울에도 40여 마리가 갑천에 왔었습니다. 주로 재갈매기가 많지만 가끔 붉은부리갈매기나 제비갈매기도 운 좋으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유등천 가장교 부근까지 올라온 재갈매기를 보았구요. 보통 1월에서 2월사이 엑스포다리와 한밭대교 부근 그리고 갑천 하류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올 겨울에 놓지지 마시고 한번 갈매기를 만나보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참고문헌 : 아름다운 대전팔경 / 대전광역시
주1) 조선환여승람 : 목활자본. 70책. 한지. 한문체. 1922∼1937년 보문사(普文社) 발간.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충남 공주(公州)의 유학자인 이병연(李秉延:1894∼1977)이 1910년부터 100여 명을 동원, 12년 동안 전국 13도 229개군 가운데 129개군을 직접 조사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적인 지리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