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갑천”
오늘 수업은 올해 초에 녹색연합의 몇몇 선생님들이
갑천을 종주하시며 찍어두었던 귀한 자료들을 비디오를 통해 시청하고,
오후에 원천교 이후의 갑천을 둘러보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비디오를 시청하기 전에 잠깐동안 안선생님께서
그동안 하천을 강의하면서 느꼈던
대상자들에 대한 반응, 방법, 앞으로의 방향등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이 있으셨고,
이내 불이 꺼지고 종주자들에 의해
깊은 동면 속에서 깨어나고 있는 갑천의 모습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각 배경마다 좀 묘한 음악들이 나오고)
650년 수령으로 시목으로 지정된 괴곡동 느티나무에서 이번 종주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주한잔에 정성스런 절로 제를 올리며 종주를 시작했다.
—- 대둔산 낙조대 꼭대기에서 발아래를 세계를 내려보고 — 낙조산장에 위치한 샘에서 흐르는 물을 수락계곡의 발원으로 —- 양옆으로 깍아지른 절벽을 이르며 솟아있는 둔지계곡은 한여름에도 한기를 돋운다고 —- 수락폭포 —- 산세를 휘감아 내려오는 맑은 물들을 가둔 수락저수지 —- 우리 눈에 익은 잉스힐 레스토랑 —- 마을로 끌어들인 빨랫터로 유명한 중보실 마을 —- 한산대교 —- 신양리 둑길의 갈대밭 —- 어곡교 —- 원앙이 숲을 옆에 끼고있는 천에서 짝을 지어 노닐고 있는 모습 —- 들 가운데 주막이 있었다는 장밭탱이 옆의 평촌동 증촌교 —- 물고기가 역류하기 용이하게 만들어놓은 어도—- 미리미 마을 용두바위 —- 용촌철교 —- 두계천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의 정뱅이마을과 봉곡동 야실마을 —- 야실마을의 소나무 —- 물안뜰 —- 들뫼풀 회원님들이 공동으로 구입한 농가에서 삼겹살 —- 흑석동 노루벌 —- 도선바위 고인돌 —- 자연하천구간의 물달팽이, 다슬기 —- 까르프 앞의 흰뺨과 청둥오리 —- 유성천 합류점 —- 엑스포 앞 둔치 —- 신구교에서 고니 2마리 발견 —- 금강합류점에서 만세삼창
3일간의 종주동안 약간의 인원이 추가되기도 하였지만,
때는 하필이면 몇십년만에 찾아 온 엄동설한 강행군이라 많은 고생을 하신 듯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번 태고사와 수락계곡 들어가는 양 입구를 시작으로 해서
차를 타거나 간간이 도보로 거닐었던 구간구간들을 영상을 통해 재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짧게나마 차에서 내려 걸었던 구간들은 우리의 뇌리에 꽉 박혀 절대 잊혀지지 않고 있지만, 차를 타고 다녔던 구간은 역시 아직도 가물가물하기 이를데 없으니 말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앞서 가신 선생님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길을 꼭 가고야 말 것임을 기약하며 귀한 고생과 경험을 보여주신데 감사를 드립니다.
야외로 나가기 전, 앞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있었지요.
정규과정이 끝나고라도 차후 일주일에 한번씩은 계속 연구과정을 거치기로 한 점.
갑천이 아우르는 대전권의 문화나 유적지 등도 함께 병행해서 공부해 나가기로 한 점.
안선생님이 계획하고 있는 갑천의 현장수업서 형식의 책 발간을 함께 만들어가기로 한 점.
차후 녹색연합의 이름으로 갑천해설가들이 지지기반을 견고히하기 위한 작업에 다같이 참여하기로 한 점.
차후 해설활동시에 발생되어지는 해설사례비와 해설방법, 해설자료집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이 모두 우리가 함께 고민하면서
향후 몇 년간은 갑천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자는 의지를 굳혔습니다.
오후는 지난번 갑천상류지역 탐사가 괴곡동 느티나무에서 마무리 되었지만,
곤충탐사나 식물탐사 수업때 도안동 자연하천구역을 경험했던 바,
까르프 앞과 엑스포 앞을 생략하고, 원촌동에서부터 시작을 하였습니다.
자동차가 원촌교를 지나 신탄진으로 향하는 천변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이 도로가 왜 이리 울퉁불퉁하고 가드레일이 변형되었는지는
바로 이전에 쓰레기를 매립해서 생긴 땅이라 지반이 침하하다보니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원촌동은 옛날에 서원이 있었던 마을이라 원촌동이 되었고,
원촌교는 옛사진 속에 교복을 입고 서서 사진을 찍었던 그 위치였다고 합니다.
신탄진 육교를 넘어 첫 번째 철로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더니 들어간 곳이
용호동 바로 신탄진정수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대전의 문화유적을 함께 공부하자는 교육생들의 의지를 참작하여
안선생님이 바로 실행에 옮겨주시기 위해 돌장승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지방 2급 하천인 용호천은 바로 금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고,
계족산자락의 끝자락으로 계족산 주변이 돌장승 문화권임을
장동 산듸마을의 장승과 함께 잘 보여주는 석탑과 돌장승의 마을이었습니다.
87년 큰홍수로 둑방이 터져 장승마져 떠내려간 적이 있었고,
이후로 세 번의 자리옮김을 통해 이곳에 모셔졌으며,
비로나자불처럼 두 손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지요.
코는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신앙에 의해 많이 문드러져 있었습니다.
금산에서 이어진 돌탑문화권은 동구관내로 계속 이어졌고,
탑위에는 머릿돌이라는 큰돌을 올려놓았으며, 금줄이 치어진 모양이었습니다.
용호천을 따라나오면서 발견한 물총새들 그리고 산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요새같이 숨어있는 공간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얻었습니다.
금강이 용호천과 합류하는 지점인 마을에도
오래 된 나무와 돌탑, 아주 키가 큰 탱자나무도 볼 수 있었으며,
특히나 신탄진정수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다 구석기시대의 유적터를 발견하고
일대를 유적터로 묶어 길도 나다 끊긴 두물머리마을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바로 대청댐의 보조댐이 앞에 있는 지역,
직진하면 충북 노산리로 바로 갈 수 있는 곳이었지요.
대청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새로 설치한 금강변 데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댐이 방류를 하는 장관이랄지, 찾아오는 철새를 쉽게 조망할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나무데크가 아주 예쁘게 설치되어 있었지요.
대청댐을 옆으로 하고 다리를 건너 우리는 노산리로 향했습니다.
배산임수의 형상으로 국립현충원이 이 자리를 검토했을 정도로 명당이라고 하는 지역이며, 곧 여울식당에서 곧장 다리가 날 계획이라는 금강가로 차를 몰아 허기진 배를 달랬습니다.
낚시군들이 힐눈질하며 쳐다보는 가운데 강가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문화재청이 대전으로 내려와서 이곳 노산리에 연구원을 차리고,
본격적인 문화재 해설보급에 주력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차는 신탄진에서 구즉으로 향하는 길을 일부러 금강변을 끼고 달렸습니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 졌다는 신탄진철교, 신탄진 수영장…
그러나 이내 한국타이어가 자리 한 구간에서는 자동차가 가기엔 어려움이 많아 다시 3공단을 끼고, 큰도로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탄진과 구즉을 연결하는 신구교를 건너
유명한 묵마을이 있는 바구니 동네 안쪽으로 차를 밀고 들어갔습니다.
이 길로 쭉 가면 대평리가 나오고, 주변에 카페들이 간간히 눈에 띄기도 합니다.
차가 동네를 벗어났다 싶을 즈음, 우리는 이제 산행을 시작하여야 했습니다.
오봉산,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 산인데,
이곳에 올라가면 전민동에서 흘러내려오는 갑천이 이곳 송강을 거쳐
다시 대청호에서 내려오는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훤하게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익히 눈에 익은 풀이며 열매, 꽃 또는 첨 보는 것들을 탐색했고,
나무나 이파리, 산소주변의 돌장승 등 선생님들은 이미 예사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끼엉끼엉 한 20여분 오르자,
신탄진과 대덕 뒤쪽이 한 눈에 들어오는 훤한 조망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갑천이 S자로 휘어들더니 금강과 만나고, 개발안된 신탄진 3,4공단의 맨땅도 두드러지며, 원색의 소각장 굴뚝, 계족산이 흘러 뻗어가는 모습,
대전으로 들어오는 우리나라 동맥교통줄들의 모습들…
아주 가슴 시원 눈을 즐겁게 해주는 풍경이었습니다.
이제 갑천의 하류지역의 모습을 머릿속에 넣었으니,
이로써 갑천의 전부를 대충은 훓터 본 셈이 되었습니다.
이제 부분적으로 자리 한 기억들을 잘 짜깁기해서
전체를 잘 그려내는 일은 우리들 각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갑천의 생김세에 치중한 공부는 여기서 마무리가 되었으니,
이제 갑천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갑천이 지향해야 할 인간의 과제는
또 하나의 숙제로 남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이라 생각됩니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간만에 선생님들과 산에 오르면서 가을을 느껴 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