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플러스 기사

2004년 10월 7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물길이 쉬어가는 그곳에서 생명을 만나다.~’


물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흘러 이 내 저 내 만나다 보니
내가 사는 곳이 보이고,
없어진 산두덩이나 문드러진 논밭 군데군데 흔적을 더듬으니
편평해진 들녘 찾고, 덮어버린 물길 찾고…….
역사와 함께 숨쉬다가 대전으로 머물게 된 그 땅을
내 눈에 모두 넣고 내려오니
비로소 내 사는 땅이 내 손바닥위에 그려진 느낌
정말 귀한 보물지도를 손에 쥔 뿌듯한 감동이었습니다.
(중략)
거듭되는 수업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열중하고 싶습니다.
때 아닌 시기에 녹슨 머리가 어렵지 않게 돌아가고 있음에 웃음 짓습니다.
그리고 열심인 엄마들과 같이하니 더 좋습니다.
최수경(대전충남녹색연합 갑천생태문화해설사학교 게시판에서)
‘노루벌 이야기~’


노루벌은 거문들이 검은돌(흑석)로 잘못 전해진 흑석리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구불구불, 때론 곧게 흘러 내려오던 갑천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한숨 쉬어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물과 사람이 어우러진 안동 하회마을의 절경은 구봉산에서 노루벌을 내려다볼 때 그대로 재현된다.
“작년에도 노루 두 마리가 논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나락이 수북한데도 잘 뛰데.”
대전시의 자료 등은 산의 흐름이 새끼노루가 어미노루를 좇아서 뛰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마을에서 만난 주민은 “최근까지도 노루를 볼 수 있다”며 마을지명의 유래를 살아있는 노루에서 찾았다.
갑천의 기세를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 둥글게 형성된 제방은 들과 물을 나누며 그 안에 마을을 품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30여 호의 주택은 야트막한 노루산(142m)을 의지해 길게 퍼져 있다. 그 2km 남짓한 제방을 따라 걸으면 성큼 들어선 가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 동네가 원래 빈한한 동네여, 농토도 작아서 모두들 힘들게 살았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물이 좀 더러워지긴 했지. 옛날엔 마을 초입에 공동우물이 하나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다 갑천에서 길어다 먹었어. 그냥 가서 배추도 씻어먹고, 밤에는 목욕도 하고 그랬는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조차 한 가을 오후 노루벌마을에서 만난 황골 이(69) 씨 할머니는 마당 수돗가에서 벽돌 한 장 눕혀 놓고 양말을 빨고 있었다. 무에 부끄러운지 끝까지 이름을 잊어버렸다고 우기는 할머니에게 나이와 벌곡 황골마을에서 가마타고 노루벌로 시집왔다는 사실만을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고집 센(?)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혼자 제방을 따라 갈대와 버드나무 군락을 바라보며 병풍처럼 둘러쳐진 구봉산을 바라보는 맛이 특별하다.
‘들판’이라고 하기엔 왠지 옹색하기조차 한 들에는 이미 가을을 가득 담은 벼가 누런 황금색을 띠고 고개를 숙인다. 길가에는 쑥부쟁이 꽃이 한껏 자태를 뽐내며 부지런한 벌을 유혹하고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옅은 꽃향기에도 아찔한 현기증이 인다.
무더기로 핀 쑥부쟁이 꽃 앞에서 한참을 지체한 후 갑천으로 내려섰다.
속살을 내보이고 있는 갑천 바닥에는 모래무지가 달라붙어 있고 손바닥만한 제법 큰 물고기도 자유롭게 헤엄을 친다. 그 사이사이로 징그럽게 큰 황소개구리 올챙이가 승리한 침입군 마냥 위풍당당 유영한다. 자갈밭 한가운데 서서 갑천의 흐름을 따라 시선을 흘리니 쇠백로 한 마리가 구봉산 자락에 긴 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고요함으로 둘러싸인 노루벌마을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갑천, 반갑다’
옹글동글한 자갈로 가득한 노루벌 갑천 둔치에서 한참 노루벌을 감상하다가 그들을 만났다.
한여름과 달리 뜨거워도 부드럽게 대지에 내려앉는 가을 오후의 햇살 사이로 그들이 나타났다. 통통 거리는 발걸음으로 차에서 내려 내달음치는 그들의 활기에 적막하기만 하던 노루벌 갑천이 일순 생기를 되찾으며 덩달아 신이난다. 손에는 수첩을 들고 목에는 카메라를 건 그들의 얼굴은 수학여행을 나선 고등학생들처럼 달떠있고 ‘꺄르륵 꺄르륵’ 거리는 웃음소리는 갑천에 퐁당거린다.
갑천과 친구하기 위해 나선 한무리의 사람들. 대전충남녹색연합에서 진행하고 있는 ‘갑천생태해설사학교’ 교육생들이다. 20여 명의 교육생들은 이날 상류부터 따라 내려와 노루벌 갑천과 마주쳤다.
“여기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워요. 참가하는 교육생들의 열의와 자부심도 정말 대단하구요. 실습을 다니면서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돼요.”
정경례(50·중구 문화동) 회장은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아진 것이 분명한 목소리로 뜨겁기만 한 갑천생태해설사학교 분위기를 전한다.
청소년적십자수련원으로 들어가는 다리에 서서 물밑을 들여다보는 교육생들의 입에서는 연신 탄성이 피어오르고 길가에 핀 낯선 풀 한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공유한다.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더위를 피해 갑천으로 나선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친구하고자 맘먹은 대상에 좀 더 접근하고 제대로 알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제가 사는 아파트가 갑천하고 유등천하고 합류하는 지점이거든요. 항상 가까이 보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녹색연합에서 갑천에 대한 교육을 한다고 해서 신청했어요. 흔히 보면서도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게 너무 재밌어요. 어른들도 이렇게 재밌는데 아이들은 오죽 재밌겠어요.”
‘물수제비 뜨며 시간을 거스르고’


샘머리아파트에 산다는 최지형(35·서구 둔산동) 씨의 눈에 집 앞을 흐르는 도심하천은 이미 다른 모습이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에 차이를 분명히 느끼고 있다. 최 씨는 자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공부 열심히 해서 꼬마들에게 우리 갑천과 주변 생태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 줄 날을 꿈꾼다.
이번 생태해설사 학교에 입학해 하루하루 강의와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교육생들은 자연스럽게 눈이 뜨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대전 토박이인데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 몰랐어요. 관심이 생기니 이름이 궁금하고 이름을 알고 나니 더욱 관심이 가더라구요. 한 번 현장실습을 다녀오면 모두들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참, 대전천을 갔을 때 목척교 아래를 보았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3대 하천 생태복원사업한다고 하던데 거기도 원래대로 복구했으면 좋겠어요.”
교육생 중 가장 연장자인 한완숙(51·서구 내동) 씨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선택한 갑천생태해설사학교에 대해 두고두고 만족스러워 할 참이다.
일행을 인솔한 한밭문화마당 안여종 강사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고 무엇인가 열심히 적던 일행은 자갈밭에 일렬로 늘어선다. 일행의 손끝을 떠난 조약돌은 물수제비를 뜨며 물위를 비행한다.
“이렇게 물수제비 뜨다가는 자갈밭이 반대쪽으로 옮겨 가겠어~.”
누군가의 외침에 손바닥을 치며 시원한 웃음을 내뱉는 교육생들을 갑천은 친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용원 기자(lyw@daejeonplus.com)
사진/ 김성태 기자(kst@daejeon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