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찾아 나무 찾아 도솔산으로
오늘은 식물 수업이다. 대전충남생명의숲 이인세 선생님이 오셔서 강의해주셨다. 교실 수업에서 식물에 대한 대략적인 강의를 듣고 현장수업을 위해 월평공원으로 갔다. 월평공원은 옛날 신신농장이 있던 월평동에서 갈마동, 내동, 도마동, 정림동에까지 넓게 이어져 있다. 서대전여고를 지나 월평공원 입구에 충주박씨 재실인 영모재라는 고풍스런 기와집이 공원입구에서 우리를 맞는다.
소나무 숲
야트막한 산길을 올라가는데 흙 냄새 풀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더니 산 아래에서 찌든 폐의 허파꽈리들이 신나라고 펌프질을 해댄다. 돌탑에 눈인사하고 소나무 숲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추석명절을 끝내고 나서 맞는 첫 수업이라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고 정경례 회장님이 가져온 송편을 한 입 먹으니 넉넉한 보름달 향기가 난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소나무 숲이었다. 그곳엔 리기다 소나무와 적송이 서로 큰 키를 자랑하며 하늘을 가리고, 솔잎을 빠져나온 가을 바람이 약간 선뜩하다. 소나무에는 리기다소나무, 적송, 잣나무가 있는데 모르고 봐서는 얼른 구분이 안간다. 적송은 나무껍질에 붉은 빛이 나고 바늘잎이 2개이다. 리기다 소나무는 껍질이 거무스름하고 잎이 3개, 스트로브잣나무는 잎이 5개이다. 바늘잎의 개수는 나무이름의 음절과 똑같다.
나무에도 정신세계가 있다고 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나무가 무슨 마음이 있을까?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기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인데. 그런데 그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숲 길 바로 옆의 소나무와 길에서 떨어진 숲의 나무를 비교해보았다. 길가의 소나무는 숲 속의 소나무와 비교해볼 때 더 많은 솔방울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데 지나다니며 만지고 가지도 꺽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땅이 다져지는데 대한 불안한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라 한다. 결국 이 소나무는 불안정한 심리에 생장보다는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더 많은 솔방울 맺어 번식에 열중한 것이다. 알고 나니 나무가 안쓰럽다. 걱정말고 잘 자라렴!
참나무
내원사 쪽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생태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아직 활엽수가 번성하지 않은 단계의 숲이다. 그러나 갑천 쪽으로 갈수록 참나무가 많이 발견되었다.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숲에 참나무가 터를 잡을 때의 과정이 재미있다. 소나무가 이미 크게 자라 있으므로 참나무가 그 아래 그늘에서 햇볕을 듬뿍 받아 자라기가 어렵다. 참나무는 키를 쑥쑥 늘려 소나무 위로 가지를 뻗어 활엽을 쫙 펼치면 그때부터 전세는 역전된다. 소나무는 상대적으로 햇볕을 받지 못해 광합을 못하고 앓게 된다. 그러면서 참나무같은 활엽수종이 침엽수종을 밀어내는 것이다. 이인세 선생님은 숲은 고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무들의 세력다툼으로 치열한 전쟁터라고 한다.
참나무에는 상수리, 떡갈, 굴참, 갈참, 졸참, 신갈 6종이 있다. 참나무는 도토리 열매를 맺는다. 상수리나무는 상수리열매로 묵을 쑤어서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기 때문에 ‘상수라나무’라고 불리다가 ‘상수리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쌉쌀하고 고소한 도토리 묵 생각이 난다. 도토리묵을 만들어 주시던 외할머니 생각도 나게 해주는 나무다. 상수리나무는 나무 껍질이 일정하고 촘촘하게 균열이 가있다. 그 옆의 굴참나무는 같은 참나무 종류이지만 껍질이 울퉁불퉁하였다. 선생님이 나무껍질을 조금 떼어 보여주었는데 콜크가 잘 발달 되어 있었다.
뽕나무가 뽕하고 방귀를 뀌니
대나무가 대끼놈 야단을 쳤네
참나무가 점쟎게 하는 말 참아라
그리고 나무들, 풀들…
길가의 국수나무를 잘라 꼬챙이로 밀어 보았는데 정말로 나무 속이 쑥 밀려 나왔다.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 밀어보다가 국수 끓여 먹을 뻔했다.
때죽나무도 보았는데 그 모양새가 어땠는지는 하나도 생각이 안나고 ‘때죽나무’란 이름이 붙게 된 이야기만 생각난다. (다시 보면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이름처럼 때가 죽죽 밀린다고 붙여졌다(요즘 아이들은 때가 죽죽 밀리는걸 모를까? 그래도 온천가면 밀린다!). 두 번째 유래는 때죽나무의 열매가 예쁘고 향기롭지만 독성이 강해서 열매를 짓찧어서 냇물에 타면 물고기가 떼죽음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세 번째는 하얀열매가 나뭇가지에 줄줄이 열려있는 모양이 중이 떼지어 있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초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냄새를 맡아보았더니 추어탕에 타서 먹는 그 산초가루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 맵고 톡 쏘는 향!(언젠가 추어탕 먹을 때 그 가루가 들깨가루인줄 알고 듬뿍 넣었다가 난리 났었는데 으윽) 산초잎에서도 열매보단 옅지만 매운 냄새가 난다.
며느리밑씻개라는 엽기적인 풀과 모양이 비슷한 며느리배꼽을 보았다. 파랗고 보랏빛나는 조그만 구슬같은 열매방울이 5-6알 정도 포도처럼 모여있다. 시어머니가 보기에 그 열매가 못생겨 보였나 보다. 그래서 못생긴 열매를 미운 며느리에 비유해서 붙인 이름이라지만 내가 보기엔 귀엽고 앙증맞기만 하다. 그 때 배꼽이 밉고 예쁜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지금처럼 배꼽티를 입던 시절도 아닌데… 힘없는 여인의 눈물이 보이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청미래덩굴은 잎이 두껍고 맨질맨질하고 하트모양처럼 생겼다. 가을에 빨간 열매가 달리는데 우리 집 뒷산에서도 보았던 이 열매를 멍개열매라고 하며 소꿉놀이에 썼었다. 부부 금슬이 좋아진다고 하여 안채 뜰에 심었다는 자귀나무도 참 신기하다. 밤이 되면 양쪽으로 난 잎을 서로 맞대고 잠을 잔다고 한다. 부채모양의 분홍 꽃이 예쁘게 핀다. 나뭇잎을 찢어서 냄새를 맡으면 생강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검은 열매가 길다란 자루에 다닥다닥 모여 열리는 미국자리공도 만났다. 어릴 땐 그 열매를 따서 손톱에 바르고 멋을 냈었다
월평공원
오솔길 따라 풀이야기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오다보니 산 아래에서 갑천과 만났다. 우리가 오른 산이 도솔산이고, 산 아래 흐르는 강을 도솔천이라고 한다. 온 길을 돌아보니 떠나 온 인간세계가 아득하고 도솔천을 바라보니 강을 끼고 흐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월평공원은 도시 한가운데 있는 생태의 보물창고이다. 대전은 자동차의 교통량에 비해 대기질을 정화할 수 있는 숲이 많지 않아 대기환경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대전시와 서구청은 이러한 숲의 생태적인 환경을 무시한 채 월평공원을 개발해 테니스장을 만들고 산을 뭉개 진입도로를 확장하고 라이트를 설치하고 각종 편의시설을 만든다고 한다. 육상 및 습지생태계가 조화를 이루고 도시의 허파구실을 하는 월평공원을 보호해야 할 대전시가 시민의 건강을 염려하여 테니스장을 건설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월평공원을 다양한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하고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 했으면 좋겠다. 자연이 우리를 품어줌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숲길과 강물을 자꾸만 뒤돌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