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수습기간을 마친 김민성 간사의 교육참가보고서 입니다.
< 2014년 녹색순례-강이 바라는 바다 강이 그리는 바다, 강강순례>
사람은 그 나이에 맞는 고민을 짊어지고 산다. 나이도 어렸건만, 이전엔 도대체 어떤 것이 삶의 무거움 되어 성지를 찾았던지. 이번 녹색순례는 종교생활을 하며 체험했던 순례의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다. 고통스러울지라도 현재를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이번 순례 키워드는 ‘비움’이었다.
혼란스러운 시국과 신입생활로 어지러져 있던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순례기간 내내 말을 자제했다. 도중에 넘어져 다쳤지만 돌이켜보면 그 것이 오히려 조용하고 끈기 있게 긴 걸음을 버티게 해준 동력이 된 것 같다. 일찍 끝내고 가버리면 이후에 더 부끄러울까봐 집에 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만 손을 다치는 바람에 참여한 기간 내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 것 같아 미안했다. 다음 순례 때 갚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나의 순례 시작지점, 하동군 우계저수지.
새만금에서 시작하여 금강, 섬진강, 지리산, 남해에 닿는 여정이었으나 나는 사무국 일정으로 4일차 코스인 지리산 길부터 걷기 시작했다. 첫째 날엔 좋은 숙소에 묵었으나 아주 간소했던 체육대회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밤사이 통증이 심하게 일어 충분히 자두지 못했다. 결국 그 다음날 최장거리 도보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5일차 전체코스 중 하동송림공원-광양 쪽 섬진강 자전거길-망덕포구-진월초등학교까지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섬진강변을 걸을 땐 광양만 녹색연합 국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4대강 사업 당시 섬진강은 사업지로 선정되지 않아 강 정비나 보 준설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는데, 이에 지역 주민들은 차별적 개발 선정이라며 반발을 했다고 한다. 정부는 반발을 막기 위해 섬진강 주변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했는데, 새로운 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인공적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섬진강 유역은 금강의 모습과 아주 비슷했다. 이용하지 않는 주차장과 도로가 밉살스러웠다. 강에 있는 넓지 않은 모래 뻘에는 포크레인이 많았는데, 섬진강 모래톱은 아주 곱고 건설용으로 쓰기 좋아 이전에는 강물 속에서도 퍼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채굴을 막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개발 규제가 풀리는 추세이니 영구적인 제한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조사 발표 때의 양흥모 처장님. 전우치 전설을 맛깔나게 전해주셨다.
6일차 일정은 섬진강 하구에서 이루어졌다. 망덕포구를 지나 태인대교를 건너 광양국가산업단지 인근에 당도했다. 이곳에서는 모둠별로 지역 환경 조사를 하였는데, 내가 속했던 ‘땅’모둠에서는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봤다. 오전에는 전라남도 무안군의 삼봉산에 올라 인근 지역을 조망하였다. 섬진강 하구는 내가 생각했던 기수역의 참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포스코가 구불구불한 해역을 간척하여 제철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철소가 들어오기 이전, 이곳은 소금의 농도가 다양한 기수역의 특징대로 풍부한 어업 활동이 이루어졌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김 시식을 시작한 곳도 바로 이 유역이었다고 하니, 주민들은 강 덕분에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포스코는 정부와 협력하여 1982년 이 곳에 제철공장을 조성했는데 이후 1만명이었던 인구는 현재 2천 6백만 명 정도로 감소했다. 도시화로 인한 인구 감소도 분명 중요한 이유겠지만 주민들은 환경오염이 심해 사람이 떠나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업장 주변의 ‘제철 중학교’에는 한 학년이 10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포스코는 지역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클린태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60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 주민에게 목욕탕과 버스 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모둠은 이 내용을 연극으로 승화하여 순례 참가자 앞에서 발표했다.
*기수역: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

▲요리경연대회.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바다 건너 보이는 노도의 모습(위). 모둠별 자유여행 발표 모습(아래).
다음 날, 우리 모둠은 남도 기행을 떠났다. 숙소였던 남해 진목 마을회관에서 자유여행 당도지인 노도를 향해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제주 올레길과 마찬가지로 남해에는 ‘바래길’이 있다. 남해인들이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갓벌이나 갯바위에서 바래하던 생존을 위한 길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 3코스인 구운몽 길을 걸었다.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 선생의 유배지로 유명한 이 곳은 노도와 벽련마을을 시작으로 여러 유배객들의 문학작품의 바탕이 된 금산, 상주 해안 등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날이 흐린 탓에 청명한 빛의 바다와 산을 볼 수는 없었다. 노도에 발을 들이고 싶었지만 파도가 높아 섬에 가는 배가 뜨지 않았고, 요상한 카페에 들려 잠시 쉰 후 요리대회 재료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요리대회에는 오징어매운볶음과 소면을 내어 놨는데, 소면이 포개어 놓은 모양 그대로 굳어버려 심사위원이 시식을 할 수 없었다. 꼴찌를 하게되었지만 나는 고추장 소스가 따뜻할 때 밥까지 비벼 싹싹 긁어 먹었으니 별로 아쉽진 않다. 자유여행 모둠 발표로 노도를 보며 지어낸 각 조원들의 시 구절을 모아 발표했다. 내가 지은 시 부분만 넣어 본다.
그렇게 그 섬을 바라보기만 했지
바다에 손을 담글 수 있는데도
바람에 몸을 실을 수 있는데도
파도가 뻗은 손가락은 나를 밀어내었네
섬, 너의 고동은 그저 그 곳에서 퍼질 뿐인데
단 한곳의 울림도 찾지 못하는 나는
점차 네 밑의 파도 속에 잠식되어간다
순례 8일차. 비가 세차게 와 뺨을 때렸다. 비옷을 입고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상주은모래비치에서 미조, 송정해수욕장, 한솔 체험마을 민박까지 오전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였기에 기분이 나쁘거나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천하몽돌해수욕장에서 송정솔바람해변까지 이어지는 남해바래길 제4코스 ‘섬 노래길’ 일부 구간을 걸은 셈인데, 남해 최남단을 좋은 사람들과 좋은 날(?)에 걸을 수 있어 기분 좋았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하자 젖은 옷이 무겁다는 게 느껴졌고 피로가 산처럼 몰려와 바로 잠들어버렸다. 혼자 사색하는 고독의 시간 일부분을 잠으로 채웠다.
마지막 순례일에는 송정한솔체험마을민박에서 천하몽돌 해수욕장을 다시 걸어 유명한 내산 편백나무숲-편백휴양림-독일마을-불건방조어부림-물건마을회관까지 16.1km를 걸었다. 지리산부터 남해를 걷다니. 마지막 날이니 만큼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크게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편백나무 숲을 오르는 내내 피톤치드를 가득 머금은 구름을 만났는데, 구름 속에 있으니 이것이 비인지 구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정상에서 전날 먹다 남은 연양갱을 베어 먹었다. 예전엔 그냥 줘도 안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편백나무 숲. 물이 참 맑다.
해산일 아침은 부산했다. 지원팀이 옮겨주던 큰 짐들을 직접 들고 이동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물건방조어부림에서 강강수월래를 하며 즐겁게 해단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운 마음에 첫 순례를 깊이 받아들였던 것일까? 순례 며칠 후 까지도 매일 했던 통일성 없는 아침체조와 식사 전 침 흘리며 불렀던 ‘밥은 하늘입니다’ 노래가 잊혀지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의미 있었던 긴 여정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빚진 여행이기도 했다. 다쳐서 일을 하지 못해도 이해해 주었던 모둠원들에게 감사한다. 내년에는 전 구간에 참여해 그들에게 보답해야겠다. 환경운동가로서 새로이 시작하는 내 삶을 위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도 고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