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합강리를 걷다

2010년 10월 21일 | 자연생태계

아픈 합강리를 걷다

글 / 시민참여국 박은영 부장

합강리를 걸었다. 금강하구에서 121km구간,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 거대한 모래톱을 형성하는 금강의 내륙습지인 합강리는 지금 깃발이 넘실거리고 있다. 거친 숨소리를 내던 넓은 습지와 그 위를 날던 큰고기, 기러기, 황조롱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합강리는 속살을 다 파헤치는 포크레인과 트럭들이 그 위를 오가고 있었다. 가슴이 아프고 아팠다. 이건 죄다.

아프다 하는 소리 들리는가

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의 폐교에서 오늘 참가한 회원끼리 마주보고 인사하며, 간단히 몸을 풀며 오늘 트래킹 일정을 시작했다. 연기군 토박이인 임비호 회원의 대평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왔다. 대평리는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명이다. 지금은 용포리라고 하지만 금남을 지칭할 때 대평을 많이 쓴다. 일제가 이 땅을 빼앗을 때, 기존에 있던 땅뿐만이 아니었다. 유럽식 토지개혁을 받아들이면서 하천주변에 둑을 쌓기 시작했고, 둑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하천변 습지를 소유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하천제방 대부분이 일제시대에 정비된 것이다.

대평리도 금강주변 제방으로 생긴 새로운 토지로 일본 소유이 소유했다. 지금의 금남보 근처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큰 소전을 만들었다. 대전, 공주, 천안사람들이 대평리로 소팔러 오기 시작했고, 당시 주변의 가구가 340가구였다. 인근에서는 가장 큰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재산가치인 소를 팔던 곳이라 유명해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하지만 1946년도에 우리나라에 큰 홍수가 몇 번씩 나면서 대평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둑이 무너진 것이다. 실제 지금 행복도시 건설청 앞이 큰 홍수가 났던 지점이라고 한다. 마을은 없어졌지만 소를 팔던 곳의 명성 덕분에 아직도 대평리, 대평리 한다는 것이다.
비록 한 쪽은 공사를 하고 있지만 지나면서 보이는 물봉선에 아이들이 탄성하고, 어른들은 인근에 떨어진 밤송이를 주워 나누어 먹었다. 누군가 준비해온 쑥떡에 모두가 행복했다.^^

공사현장이 많을 거라는 최수경 대표의 말대로, 오전은 공사현장이 보이는 제방길을 내내 걸었다. 이곳은 4대강공사, 공원공사, 행정도시까지 세 개의 공사가, 호남고속철이 지나갈 철로공사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습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속살이 파인 합강의 모습에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아마 그 곳을 걸었던 사람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합강이 아프다, 아프다 외치는 소리가 마음으로 크게 울려퍼졌다.

세 개의 산줄기가 모이는 합강습지

점심을 먹은 곳은 청원 부강면 일대. 부강은 금강의 소금배가 강경, 부여를 거쳐 올라왔던 곳이다. 소금과 해산물을 싣고 올라온 상선들은, 부강에서 설탕이나 면화, 농산물을 싣고  돌아갔다. 덕분에 큰 포구가 형성 되었고, 물자교환의 장소였기 때문에 크게 발전했다. 심지어는 미역으로 행주를 삼고, 북어포로 부지깽이를 하고 개도 천원짜리를 입에 물고다녔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강도 경부선과 군산항이 활력을 띄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금강을 바라보며 맛있는 매운탕을 먹고 시작한 오후 코스는 바로 전월산 밑 월산리. 이곳에도 자전거도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래도 오전과는 달리 물억새와 갈대가 수백개의 손을 흔들어주어 오전의 지친 마음을 풀 수 있었다.

합강습지에는 100종류의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곳은 계룡산에서의 금남정맥, 합강 건너 금북정맥, 백두대간이 강을 기점으로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 개의 산줄기가 이쪽에서 딱 모이기 때문에, 삼태극이라 칭하며 귀한 장소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굉장히 넓게 형성된 모래톱은 다양한 생물종이 모일 조건일 수 밖에 없다.
흙길을 걸으며, 강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트래킹길은 서둘러 가는 길은 아닌지라, 주변의 꽃과 나무, 곤충들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닌 생명을 돌아보는 여유로 걷는 길만큼 우리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길이 없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양화리의 은행나무. 암수가 서로 나란히 보호수로 지정되어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노란 은행열매가 많이도 달렸다. 가을이 도시가 아닌 이 곳에 오니 느껴진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유난히도 피곤한 기색이 짙은 회원들을 보면서 초록이 없는 길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마음을 닫히게 하는지를 깨달았다. 아직은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길들이 다음에 갈 때는 얼마나 더 황량할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래도 가을이다. 느낄 때쯤이면 얄밉게 가버리는 가을, 겨울의 숨소리가 들리기 전에 어서어서 만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