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한폭탄, 석면

2009년 11월 3일 | 자연생태계

조용한 시한폭탄, 석면

글 / 이토 아키코 (오사카 진폐석면변호단 변호사)  

2009년 8월 20일 ~ 23일 한국을 방문하였다. 방문단은 오사카지자체문제연구소 부이사장 후지나가(藤永), 사무국장 타니구찌(谷口), 니츠메이칸대학정책과학부 모리(森)교수님. 오사카 진폐석면변호단 무라마츠(村松)변호사, 오카(岡)변호사, 그리고 나 6명이었다. 대전 근교의 석면광산 주변은 “센난(泉南)”과, 부산, 대전시내의 석면공장주변은 “아마가사키 (尼崎)”와 그 피해가 흡사하게 퍼져 있었다.
■ 석면광산주변의 피해 (홍성/보령)
8월 21일 아침 대전 근교인 충남 홍성으로 향하였다. 대전에 도착해 한국환경시민단체 대전충남녹색연합(그린코리아)의 양흥모 국장과 통역을 담당하셨던 이영애씨, 이영애씨의 부군 되시는 유영춘선생이 안내해 주셨다.
자동차로 1시간 남짓, 산 사이에 사과과수원과 전원이 펼쳐지는 한가로운 동네에 도착하니, 마을회관에 20명정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대략 70세 정도로, 여성이 약 10명, 남성이 약간 많았다. 피해자단체 대표인 정지열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홍성과 보령의 석면광산주변의 주민은 전(前) 노동자로 전원 피해자라고 한다. 폐기종, 석면폐, 흉막플라크, 폐섬유증 등의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폐암과 중피종 환자는 아직 없다고 한다. 보령광산의 피해자 대표 신씨도 건강불안을 호소하였다.
한국의 석면광산은 1930년대에 일본이 군용물자를 위하여 개발하였다. 당시 광천석면주식회사는 아시아 최대의 석면광산회사였다고 한다. 전후에는 한국기업이 생산을 지속하였고, 1980년대 후반에 폐쇄하였다. 채굴된 석면원료는 전전은 물론 전후도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었다.
광산에서 일하고 있다는 63세의 남성은 약 2,700명의 노동자가 있었으나, 모두 이미 사망하고 자기가 제일 젊다고 한다. 한국기업은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수속에 필요한 서류입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재해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원래부터 기업은 노동재해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았으며, 아무 보장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2008년에 정부가 수행한 석면피해조사에서 홍성, 보령 등의 석면광산 주변의 주민 215명 중 97명에 석면관련질환의 확정진단이 내려졌다(110명이 의심소견). 이 샘플조사의 결과가 중대하므로 정부는 조사대상을 확대하였다. 주민이 2009년 4월에 검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과가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 때에 환경부의 위탁을 받아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순천향대학교 의학부 이용진교수가 도착하였다.
이 선생의 말에 따르면 홍성과 보령 주변에는 5개의 석면광산이 있으며, 추가조사에서 광산에서 반경 1km내의 주민 약 4500명을 대상으로 한 X선, CT검사를 실시하였다. 결과발표가 늦는 이유는 최초의 석면관련질환조사이며, 지역에 따라 의료기기가 따로 따로이며, 의사교육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한국정부는 전국의 석면광산 7개소, 공장 2개소를 대상으로 주민의 건강진단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조사의 규모면에서 놀란 것은 석면관련질환연수에 전국에서 약 90명의 의사가 참가하여, 최종적으로 64명의 의사가 2명 1조로 화상진단을 수행하는 실천적 대처를 했다는 것이었다.
마을회관에서 수백미터, 밭 사이를 가로질러 석면광산의 입구에 도착하였다. 진행측에서 마스크를 준비해 주셨으나 출입금지의 간판이 걸려 있어서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속에는 광대한 석면광산 자취가 펼쳐져 있었고, 지금은 녹화 복원 중이라고 했다.
정지열 선생은 누나, 형이 광산에서 일하고 있으며, 자신도 어렸을 때에 쇠망치로 광석을 깨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식민지시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린이들도 일해야 했다고 한다. 징병에 가던지, 가족 모두가 총출동하여 광산에서 일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만큼 석면이 군용물자로서 중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아버지가 광산에서 일하고 있어서, 자신도 어렸을 때에 도와준 적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광산에서는 백석면을 산출하였다. 갱도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노천굴로 파낸 석면광석을 어느 정도 분쇄하여 반출-운반했었다고 한다. 분쇄기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봉지에 담는 작업은 하지 않았으며, 자갈과 토사와 같은 석면을 산처럼 쌓은 트럭이 마을 안을 달렸다. 몇 십년동안 하루에 몇 십대가. 정선생님은 “집 안에도 분진이 들어와 온 집이 햐얗게 변할 정도”였다고 한다. 센난과 아주 비슷하다. 잘 보면 밑부분에 하얀 줄이 들어 있는 돌이 있다.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은 강한 햇빛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손톱으로 하얀 줄 부분을 긁으면 간단히 긁힌다. 얇은 석면섬유가 손쉽게 바로 만들어진다. 청석면이라면 장난이라도 이렇게는 할 수 없다.
홍성, 보령 주민은 일본의 석면신법에 대하여 강한 관심을 보였다. 한국정부는 프랑스의 FIVA(흉막플라크도 대상, 보상수준도 일본보다 수배 높다)가 아닌, 일본의 석면신법을 참고로 한 법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석면신법을 개정하고, 대상질병을 확대할 것, 보상수준을 높이는 것은 한국의 석면피해자 구제로도 이어진다.
■ 일한석면대책 국제심포지움
일한석면대책 국제심포지움은 대전광역시가 주최하고, 대전광역시의회, 을지대학의학부산업의학과가 후원했다. 그리고 대전환경운동연합, 대전시민환경연구소, 대전충남녹색연합이 주관하여 진행되었다. 요컨데 지자체와 지방의회와 시민단체가 공동주최하는 국제심포지움이었다.
처음에 대전광역시의회 의원 2분이, 이어서 일본의 후지나가(藤永)선생님, 한국의 대전충남녹색연합 김규복 대표가 인사말씀을 하셨다. 보고는 모리 선생께서 하셨다. 모리선생이 일본의 석면재해전반에 대하여, 무라마츠변호사님이 오사카 센난 석면국가배상소송에 대하여 보고한 후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회장 외부에는 한국산 무농약 재배 주스(오렌지, 배, 딸기 등)와 공정거래커피가 준비되어 있어, 환경시민단체의 배려가 느껴졌다.
모리 선생 다음으로 한국에서 대전광역시의 임윤식 환경정책과장이 대전광역시의 석면피해의 대책과 계획에 대하여 보고하였다. 금년 2009년 1월 대전충남녹색연합은 서울대학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대전광역시는 중피종 사망의 상대위험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전국 1에 대하여 2.34)고 보고하였다.
특히, 1970년대부터 1996년까지 26년간 조업한 석면슬레이트회사, 주식회사 벽산이 있는 중구 태평동 지역이 가장 높다(동 3.81). 이것을 바탕으로 대전광역시에서는 석면공장주변의 석면농도측정과 재개발, 해체현장에서의 폐석면 관리 외에 한국정부에 의한 석면건강진단과는 별도로 석면공장주변 500미터 내에 10년 이상 산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금년 중 건강진단을 할 예정이다. 금년 2월에 석면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하였으나, 지금 주민들로부터 신고가 2건뿐이라고 한다. 지자체에 의한 과거 주민을 포함한 건강진단이 어떻게 계획대로 수행되었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었다.
다음 보고는 을지대학의학부 산업의학과 김수영교수가 대전의 석면건강피해에 대한 보고였다. 대전에서는 상당수의 환경 노출형 중피종 발병자가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중피종 감시시스템이 있으나, 피해자에 시스템 등록을 요청하는 데는 우선 보상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또한, 과거의 노출이력 파악, 석면공장만이 아닌 학교석면과 도로주변으로부터의 폭로고려의 중요성도 지적하였다. 그리고 “석면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마무리하였다.
한국의 중피종 감시시스템은 심폐병리 전문의와 산업의학 전문의가 관여하며, 암등록 자료와 건강보험자료, 사망통계, 병원자료 등도 분석, 파악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보상제도가 충실하지 않는 한 등록제도가 진행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김선생님이 피해자의 눈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는 증거라고 생각되었다.
환경소송센터소장인 우경선변호사는 일본의 피해실태는 가까운 장래의 한국을 보는 것과 같이 두렵지만, 오늘처럼 국제협력이 문제해결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발언하였다. 석면소송에 있어 열심히 해주시길 바란다.
다음으로 우리가 센난 시민의회와 의료법률 상담 활동을 소개하였다. 상담자 350명 중 37%가 석면관련질환을 보였다고 하는 보고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석면문제는 일본과 같이 국가배상소송을 하지 않고 해결되는 것이 최고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부산대학교의 강교수님이 부산의 석면피해에 대하여, 부산의 국가배상소송판결과 한국의 보상제도의 동향이 더욱 주목된다. 순천향대학교의 이교수님이 광산주변의 석면피해에 대하여 보고하였다.  
■ 잡다한 감상
석면신법, 소송, 변호단체제. 그리고 지역밀착형 진료체제는 일본이 앞서가고 있는 것 같으나, 석면중피종연구센터의 설치, 전국적 대규모건강진단, 전문의 양성, 중피종 등록제도 등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그리고 지자체의 대응은 일본보다 훨씬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부산에서 시가 역학조사에 협력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가사키와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원래부터 지자체와 지방의회와 시민단체의 공동심포지움이라는 것에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목회에서도 시의회의원과 환경정책과장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국제배상소송에서 싸우는 변호사들과도 탁 털어놓고 교류하였다. 한국의 연구자와 변호사가 일본에 와서 지자체 담당자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의장의 인품때문일지도 모르나 환경시민단체의 역량이 배경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가자 중에는 폐석면의 용융처리플랜트기업의 CEO도 있었다. 일본기업과는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어 4분의 1정도의 코스트로 처리가능하며, 일본에서도 오이타현에서 이미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석면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이기도 하다.
부산과 대전의 석면공장( 방직, 슬레이트) 피해는 아마가사키와 홍성, 보령의 광산피해는 센난과 동일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피해자끼리 변호사끼리의 교류를 했으면 한다.
석면피해는 세계적으로 몇 십년 전부터 이렇게 확실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사용이 불가능한 것은 증명된 상태이며, 인도네시아와 중국, 러시아 등에서는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잠복기간”이 문제다. “조용한 시한폭탄”과도 같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양흥모 국장과 지속적인 교류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재회 때에는 국가배상소송에 대하여 보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