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하천부지 영농행위 금지… 농민들에 ‘사형선고’
ㆍ정부 “수질오염 원인”… 점용허가 안내줘
ㆍ보상비도 턱없이 낮아… 농민 “생계 막막”
경기 양평군 용담리 세미원 입구 주변 도로 곳곳에는 ‘상수원 지킨 친환경농업 살려주세요’ ‘지역생명권이 걸려 있다. 하천부지 수용 절대 반대’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다.
경기 남양주·양평·여주 등 팔당호 상류지역은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의 태동지다. 1973년 팔당댐 건설 이후 현지 농민들이 하천 상류 부지에서 배추, 고추 등 유기농 채소류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그런 이곳이 요즘 생존권 투쟁으로 들끓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에 나서면서 이들이 터전으로 삼는 하천부지 점용허가를 내주지 않고, 강 주변의 사유지 또한 수용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홍수예방과 친수공간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4대강 주변에 제방 신설이나 보강, 자전거도로, 체육공원을 지을 방침이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가야 하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20년 넘게 팔당호 인근에서 유기농을 해 온 정종수씨(69)는 “농민들을 내쫓고 한다는 게 서울사람 위한 공연시설을 짓고, 자전거길 내는 것이냐”고 말했다.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백신기씨(61)도 내년부터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그동안 하천부지에 점용허가를 받고 농사를 지어왔지만 4대강 사업이 추진되면서 정부가 더 이상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국가 땅이라고 하지만 수십년 지어온 농민들을 하루아침에 내쫓을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가 하천부지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는 4대강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수질오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하천부지의 영농행위를 금지했다. 하천부지에서 영농행위가 이뤄지면 농약과 비료 등이 유입돼 강이 오염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팔당생명살림 정영숙 이사장은 “친환경 유기농업이야말로 땅과 물을 살리고 있다”면서 “지자체가 이곳을 유기농업특구로 지정하고, 2011년 유기농올림픽을 유치한 이유도 이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정부 설명을 반박했다. 경작지 등을 밀어내고 하천 주변에 생태습지 조성, 산책로·자전거길 설치, 운동시설 등 기초 생활체육시설 건설, 공공청사, 박물관, 미술관 등 공공·문화시설을 배치하는 계획도 논란거리다.
4대강에 대규모 친수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결국 예산낭비로 이어지고 그 부담을 주민들이 져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팔당 두물머리 지역에는 4대강 사업 이후 축구장만 3곳이 된다. 또 대규모 공연장도 들어선다. 그러나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시설활용도가 떨어질 것이 뻔하다는 게 이곳 주민들의 지적이다.
부산생명그물 이준경 정책실장은 “하천부지는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는 친환경농업이 가능한 보존구역으로 지정해, 도시농업활성화와 친환경 자연학습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을 둘러싼 갈등도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보상비로 1369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상태다. 그러나 향후 얼마나 소요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금액는 미정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4대강 사업의 농가보상액 규모를 묻는 질문에 “4대강 사업의 총 예산 22조2000억원에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앞으로 진행될 지장물 조사 및 감정평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낙동강 하천부지 농민 노문기씨(62)는 “보상비로 평당 1만2000원 정도가 나온다는데, 주변 땅값이 너무 많이 올라 이런 쥐꼬리만한 보상비로는 다른 곳에서 농사지을 땅을 살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하천점용 허가 없이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은 그대로 쫓겨날 처지다. 경기 광주의 하천부지 1만9800㎡(6000평)에 토마토와 채소를 키우는 김종인씨(54)는 “시청에서 유기농을 권장하면서 도로포장도 해주고, 지원금도 줘서 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농사를 지어왔는데, 갑자기 점용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김씨 같은 사례에 대해 예의 ‘법의 엄정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보상하고 영농지원금 지원 등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겠지만, 무단점용 등 불법 행위는 법질서 확립차원에서 엄정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삶의 터전은 ‘땅’이다.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그렇지 않아도 속앓이를 하는 농민들에게 4대강 밀어붙이기는 가슴을 멍들게 하는 또다른 시련이다.
출처 : 7월 19일 경향신문 기획기사 | 박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