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돈으로 만드는 생명평화공동체

2009년 4월 12일 | 자연생태계

행복한 돈으로 만드는 생명평화공동체

글 / 박은영 시민참여팀장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먹는 것을 통해, 어떤 사람은 사람 만나는 것을 통해, 어떤 사람은 연애를 하면서! 그러나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는 행복의 기준은 뭐니뭐니해도 돈이 아닐까.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하지만 솔직히 주머니가 두둑하면 행복한 건 사실이다.
돈은 배춧잎만 있는가 하면 아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돈이 있다. 다들 가격이 매겨져 있고, 가진 가치가 틀리다. 용도는 모두 같다. 자, 그런데 조금 차원이 다른 돈이 있다. 그것은 일반 시장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돈이다. 백화점이나 슈퍼에서 쓸 수는 없지만 그 가치를 알면 유용하고 얻을 것이 많은 돈이다. 그것은 바로 공동체 화폐이다.
대전지역에서 공동체화폐운동을 하고 있는 한밭레츠는 1999년에 70명의 회원과 함께 창립하여 올해 10년째를 맞는다. 한밭레츠에서는 ‘두루’라는 지역화폐를 사용한다. 두루거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시장에서 사고 파는 물건 외에도 사람이 가진 이러저러한 ‘능력’을 거래할 수도 있다. 수도를 고칠 줄 아는 A씨의 도움을 받고 몇만 두루를 주었다, A씨는 그 두루로 쌀을 생산하는 B씨의 쌀을 살 수 있다. B씨는 한의원을 운영하는 C씨에게 치료를 받고 두루를 낸다. 두루거래는 빚이 없고, 이웃과의 관계와 신뢰가 바탕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의 돈’과는 확연히 틀리다. 한밭레츠는 이러한 두루거래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공동체화폐운동을 지속해왔다.
지난 4월 11일, 공동체 화폐운동을 오랫동안 해 온 한밭레츠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들 스스로도 만찬이나 작은 모임에 익숙해서 그런지 형식을 갖춘 심포지엄이 무척 어색하다 한다. 심포지엄을 막을 여는 순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한밭레츠의 회원들이었다. 2004년부터 활동해온 버들치(고연 회원)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도 전에 눈물을 보였다. 그만큼 그가 가진 애정과 열정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에서 공동체화폐운동을 10년이나 이어온 회원들은 그들 스스로 이 운동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한때는 즐겁게, 한때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한 때는 함께 일하던 이를 떠나보내기도 바로 지금의 한밭레츠를 만들었음을 발제하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역레츠운동을 함께 설계했던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의 발표도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애정이 듬뿍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 주었다. IMF라는 ‘국가와 은행부도’를 경험하면서, 90년대 말에 활성화된 레츠운동은 30여개 곳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남은 곳이 별로 없다. 운영경비와 실무자 등 안정적인 재원확보가 중요했지만 그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회원들의 헌신으로 레츠는 끈끈하게 이 운동을 지속해 왔다. 최근 대안운동에 대한 관심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레츠운동이 관심을 받고 있지만, 여전한 재정어려움과 지역화폐를 토대로한 다양한 실험의 역부족, 내부역량이 지역화폐운동을 더 펼칠 길잡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정부나 재단에서도 이 운동에 대한 기여가 필요하며, 시민사회에 지역화폐운동을 확신시킬 수 있도록 도움주는 역할을 레츠가 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이어 도법스님은 레츠운동의 기초인 공동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과연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우리는 모두 “생명평화의 삶”이라는 답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이는 공동체를 통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절대적인 사명임을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전쟁도 했고, 개발도 했지만 우리는 결국 행복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배와 강탈의 악순환을 겪으며 생명평화 위기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한 처방만 고집했지, 그 원인이 무엇이고 왜 해답이 나오지 않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과 말만 넘치는 세상에 이러한 보편적 진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단순 소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이 세계와 온 우주가 한 공동체임을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맥락에서 레츠운동이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해 주었다.  
레츠운동의 핵심은 ‘관계’와 ‘공동체’가 아닐까 한다. 그것은 우리들만의 공동체이기보다는 열린 공동체로서 더 넓은 관계를 지향하리라고 본다. 이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원하기도 하는 모습이다. 한밭레츠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오래전부터 지속해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웃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는 특별한 끈으로, 더 많은 행복을 끌어안게 되리라 믿는다.
박용남 소장은 자신의 이야기 마지막에 “잘 살아남아주세요.”라고 말했다. 그것은 가볍게 들리지만 절대 가볍지 않았다. 돈으로 황폐해지는 지금 이 시대에 행복한 돈으로, 이 시대의 대안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자 부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