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임항규(수의사)
하동IC에서 차를 돌려 섬진강변을 따라 19번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니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그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섬진강길인 19번 도로가 2차선에서 다시금 4차선으로 확장공사를 강행하고 있었다. 19번 도로인 기존도로와는 별도로 중복적인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것이다.
5월 21일 대전 아트씨네마에서 녹색연합 회원들과 함께 황윤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관람하였다. 필자는 지난 며칠 전 이영화의 주인공 최태영씨가 3년에 걸친 로드킬(Roadkill,야생동물 교통사고)조사를 담당했던 그 길들을 다녀오게 되었다.
조사는 마무리 되었지만 아직도 그 길에는 많은 야생동물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었다. 너구리의 끔찍한 사체와 도로 위를 염색한 고라니의 혈흔들이 지난밤 야생동물들의 끔찍한 희생을 암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1Km2의 국토위에 1Km의 도로가 있으며, 전 국토에는 10만Km의 도로가 건설되어 있다고 한다. 조사기간 동안 포유류의 교통사고 건수는 약 1,300여건에 이르며, 양서 파충류까지 합하면 5,700여건의 주검을 확인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숫자의 야생동물들이 도로에서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로드킬(Roadkill)을 조사한 도로는 우리나라 전체도로(10만Km)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도로에서 죽어가는 야생동물들은 얼마나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야생동물들은 왜 그들의 길을 놔두고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너려 할까? 무엇이 그들을 죽음의 도로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인간 중심의 도로설계, 필요이상의 도로건설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단절, 양서파충류의 주 이동통로인 강변(습지)의 도로건설등 글로 표현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도로위에 차량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조급증과 스피드를 즐기려고 속도를 높이다 보니 교통사고는 점점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함양에서 남원간 88고속도로와 남원에서 구례간의 19번 산업도로 그리고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19번국도 그리고 59번국도와 3번국도가 연결되어 지리산은 인공적인 섬으로 고립이 되어 버린다. 야생동물이 살던 터전위에 어느 날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산을 파고 다리를 놓아 도로를 건설한다. 그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야생동물들은 도로로 인하여 단절된 환경에 내몰리게 되고, 죽음을 무릅쓰고 그 도로를 횡단하게 된다.
[사진]1.교통사고를 당한 멧토끼
[사진]2.멧토끼의 골반 X-ray 사진
태영, 천권, 동기 세 사람은 자동차를 이용해 88고속도로(함양~남원 44Km),19번 산업도로(남원~구례 30Km),19번국도(구례~하동 33Km),861번 지방도로(천은사입구~성삼재 12Km) 도로위에서 사고를 당한 야생동물 조사를 위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도로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막상 조사를 진행하고 보니 로드킬을 당하는 야생동물 개체수가 예상외로 많았다. 이들은 조사의 정확성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 스프레이 페인트를 도로에 칠해가며 조사를 진행한다.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이용하여 사고지점을 하나하나 찍어보니 120Km의 도로위엔 무수한 점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새로운 도로가 형성되어 버렸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 고라니, 사고를 당한 엄마를 지키려다 다시 죽음을 맞이한 아기 너구리, 목이 말랐을까? 건너편 숲속을 향해 뛰어가던 산토끼의 안타까운 장면, 따뜻한 도로위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 유혈목이, 옹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두더지.
사고로 다리를 다쳐 구조된 삵을 정성스레 치료한 후, 생태적응 훈련 단계를 거쳐 방사하였지만, 다시금 로드킬을 당해 차디찬 죽음으로 돌아온 팔팔이라고 명명한 삵의 운명…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들이 스크린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해 죽어있는 모습들을 보여 준다.
[사진]3. 교통사고를 당한 삵
[사진]4.열차사고를 당한 수달
주인공 최태영은 “밀렵(불법수렵)으로 희생되는 숫자보다, 로드킬로 죽어가는 야생동물들이 훨씬 많으며 이로 인해 야생동물의 개체군 감소가 심각한 수준이다”라고 말한다.
쏜살같이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로드킬(Roadkill)로 인하여 죽어가는 야생동물들의 슬픈 눈망울이 교차되며 영화는 마지막을 장식한다. 황윤감독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들에게 과연 어떠한 존재로 다가갈 수 있을까?
어느 날 그 길에서의 영화전단지는 이렇게 말한다”우리는 이곳을 길이라 부르고, 이들은 이곳을 집이라 부른다” 아름다운 지구엔 우리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야생동물이 편안히 살수 없는 환경이라면 우리도 살수 없는 것이다. 그들과 우리가 행복하게 공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진]5. 교통사고로 날개를 다친 조롱이
글/박승진회원(한국철도시설공단)
영화는 대형차량들이 굉음을 토하며 빠르게 질주하는 고속도로의 노면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차량들 틈에서 차량들을 피해가며 야생동물들의 사체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수거해서 비닐팩에 담아 넣는 태영과 일행이 너무나도 위험천만하여 보고 있는 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삵, 고라니, 부엉이, 올빼미, 오소리, 족제비, 황조롱이, 유혈목이, 개구리, 두꺼비 등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야생동물들의 무수한 사체들. 그 길에서는 야생동물들의 찢기고 짓밟힌 처참한 주검과 껍질만 바짝 말라붙어 있거나 아예 형체도 없는 주검의 흔적들이 무수히 발견된다.
차츰 내 가슴은 비통함과 안타까움, 그들에 대한 죄송함에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두꺼비가 도로 한복판에서 질주해 오는 차량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움츠렸다. 차가 지나가자 당황한 두꺼비는 방향감각을 잃은 채 이리저리 황급하게 움직이지만 너무도 느려 몇 걸음 못가서 또다시 자동차가 달려든다. 방금 전처럼 몸을 움츠려 용케도 무사했으나 결국 세 번째는 피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짓밟혀 졌다.
남생이가 도로를 벗어나기 위해 연석을 따라가면서 몇 번 넘어보려고 시도해보지만 남생이가 넘기에 연석은 너무나도 높다. 얼마나 저렇게 헤매고 있는지 남생이의 온몸은 매연과 시커먼 먼지로 범벅이다. 얼마나 더 저렇게 헤매야 통로가 나올지, 통로를 찾을 때까지 생명이 견딜지 의문이다.
유혈목이도 도로를 벗어나려고 콘크리트옹벽을 사력을 다해 오르지만 연신 미끄러지기만 한다. 고라니는 도로가 숲에서 겁에 질려 길 건널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두 눈에 불을 켠 네 바퀴 동물이 너무도 무섭다. 밤새도록 저 길을 건널 수 있을지…
팔팔고속도로에서 태영일행은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는 중상 입은 삵(팔팔이)을 발견한다. 순천에 있는 구제소까지 달려가 힘겹게 소생시킨 후 정성껏 야생적응훈련을 거쳐 방사했으나, 2주후에 방사지점에서 30km나 떨어진 똑같은 장소에서 2차 로드킬에 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방사지점에서 살던 곳까지 6개의 도로를 횡단해야 했다. 팔팔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왜 거기까지 가야 했는지, 그곳에선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야생동물들도 무엇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위험천만한 도로를 건너야 했는지…
고라니의 눈에서, 남생이와 유혈목이의 몸부림에서, 두꺼비의 죽음에서 나는 그들이 무엇을 내게 항변하는가를 보았다.
그들도 우리 인간과 똑같이 삶의 터전이 필요한 거다. 그들도 고향에 대한 연민이 우리 못지않다. 인간들의 삶과 그들의 삶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쉽게 잠을 자지 못했다. 인간중심의 사고 속에서 저들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각종 자연파괴 행위, 그것이 얼마나 많은 뭇생명들을 앗아갔는지… 나도 아무런 생각없이 지금까지 거기에 일조했다는 죄의식을 떨칠 수가 없었다.
2008.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