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길을 걸어본 사람은 금강이 얼마나 크고 예쁜 강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이 강을 바라보면서 운하라는 단어 자체를 생각하는 것 무모한 발상인지를 잘 알 것이다. 금강과 금강을 생명되게 구성되는 모든 사물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생명의 강의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회>
금강 물결을 따라 순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내린 비로 인해 금강길 산천의 생기를 더욱 빛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걸어온 금강길은 비단처럼 아름다웠습니다.
72일째 순례길은 서천군 화양면 사무소 앞에서 100여명의 동학사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의 기도회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동학사 승가대학 스님들은 발원문을 통해 “폭력적 개발과 성장의 허장성세가 기승을 부릴수록 가난한 이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가고, 산과 강이 파 해쳐져 결국은 모두가 함께 ‘멸망의 언덕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달라”며,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이 물욕의 전쟁터가 되지 않고 나눔의 샘터가 되게 하여 달라” 기도하였습니다.
동학사 승가대학 스님들의 기도에 이어 “오늘 동참하신 동학사 학감 스님 이하 학인 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마음속에 담았던 뜻을 직접 현장에 나와 표출하시니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항상 동체대비의 마음과 함께 실천함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걸음이 생명평화의 운동으로 전환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순례단의 지관 스님의 기도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점심을 마친 이후에는 역시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신성리 갈대밭에서 60여분의 교무님들이 참여하여 원불교 기도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원불교 천지보은회 주관으로 진행된 기도회에서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왕산 성도종 총장님은 “물맑은 샘물을 보고 사람이 욕심이 생겨 물을 차지하기 위해 우물을 파면 샘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며, “지금의 운하 추진 계획과 경제제일주 물신주의 사상은 우리들의 욕심에서 기인된 것으로, 개인의 탐욕과 사회적 탐욕, 국가적 탐욕을 경계하여야 할 때”라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금강은 지금도 아름답고 무한한 생명수를 공급하지만, 금강하구가 막히기 이전에는 삼남지방 사람들이 강줄기를 따라 은혜를 받고 살았던 생명수이나 지금은 많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또한 “모신다는 것은 조건이 있으면 거래이며, 무조건 모시는 것이 진정한 모심이며, 바치는 것이 모심이다”라는 말로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오늘 순례단은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에 하루 여정을 시작하여 와초리 – 완포리 – 용산리 – 신성리 갈대밭 제방길 – 부여군 시음리 – 산악산 아래 강변길을 거쳐 부여군 양화면 시음리 웅포대교 하단에 이르기까지 금강과 금강의 지천을 따라 세찬 강바람을 친구삼아 걸었습니다.
오늘 여정은 웅포대교 하단에서 “어제 촉촉한 비가 내려 세상을 맑게 씻어주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학사 스님들께서 이쁜 발걸음을 함께 해주어 아름다웠습니다. 꽃잎, 풀잎 이슬의 아름다움을 돌이켜 보면서 살아있는 강을 조금만 더 안아주면 모두 함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김현길 교무님의 기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생명의 강을 따라 흐르는 발걸음이 계속되면서, 생명이 물결치면서 평화가 화답하듯이 기도 걸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금강. 아름다웠던 길>
오늘 걸어온 길은 하천변 제방을 따라 걷는 길이었으나, 산악산 아래 강변길과 같은 곳은 제방이 아니라 옛길이었습니다. 그러한 길이 남아 있는 금강길은 비단길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마전 걸었던 새만금 순례와 달리, 여기 금강길에서 물안개 피고 수묵화 같은 강 풍경에 순례단 대열에서는 어느새인가 웃음소리 가득합니다. 걷는 과정에 주변 강산이 편하니 순례단의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순례길에서 강을 따라 길을 걷노라면, 우리의 산과 강은 참 평화롭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강이 굽이치는 곳에서는 길도 굽이치고, 강이 사나워지는 곳에서는 땅도 사나워지고, 강이 평화로운 곳에서는 산도 길도 평화로운 곳입니다. 그렇게 자연은 서로 순리대로 조응하고 화합하면서 서로의 모습을 지켜주고 빼어나게 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동학사 학인스님들께서 물결과 같은 발걸음으로 자연과 함께 동화되는 모습으로 순례단의 하루 여정에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대지가 빗방물을 머금고 생기를 뽐내는 와중에, 스님들은 길을 떠나는 기러기처럼 긴 대열을 이끌고 갈대밭과 논두렁을 따라 금강길을 걸었습니다. 마치 강물이 물결치듯이 흐르고, 갈대밭이 따라 걷는 듯 하였습니다. 마치 세상이 강물처럼, 물결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하루 순례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동학사 스님들께서 멀리 길 건너편 논두렁에 서서 “건강하세요”라고 여러번을 외치시고 못내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며 다시 길을 떠납니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사람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말이 없습니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서는 ‘운하’라는 단어도 허망한 계획도 낯설 뿐입니다.
웅포대교가 바라다보이는 산악산 길은 참 아름답더군요. 순례자들의 입에서는 ‘제2의 개비리’라는 말도 들렸습니다. ‘개비리’는 창녕군 남지읍 아지리 창아지에서 남지읍으로 이어지는 산길입니다. 오늘 걸었던 산악산 밑 강변길은 과거에는 사람이 다녔을 법한 길이지만, 지금은 길손이 끊겨 수풀만 무성한 길입니다.
‘개비리’처럼 벼랑끝 길은 아니지만 주변에는 금강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이름모를 산새소리뿐이고, 순례단과 하루종일 함께하였던 강바람은 어느새 산을 돌아가며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산 기슭 물길에는 여러개의 도룡뇽알이 보이고, 산자락을 따라 너무나 정성스럽게 손질한 논두렁의 모습이 예뻤습니다. 순례단의 앞쪽에는 진행팀과 길잡이가 마음 급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있었지만, 순례단의 발걸음은 느긋하기만 합니다. 운하를 추진한다고 이곳을 훼손하여 우리가 얻을 것이 과연 무엇일가요?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받아가는 일상의 평온함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더 소중할 것입니다.
오늘도 순례단은 그렇게 금강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난 밤새 바람따라 흔들렸던 들풀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도 들풀도 모두 순리대로 흘렀습니다. 바람은 길을 가다 길이 막히면 돌아갔고, 들풀은 바람의 손길을 거스르지 않고, 그 바람따라 바람길을 기록해주었습니다. 바람은 들풀을 어루어만지고, 수풀은 그 바람의 일생을 몸으로 기록해주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그 길에 맺혀진 이슬방울이 참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봄 날의 금강길은 그렇게 평화로웠습니다.
우리 땅과 그 땅을 따라 형성된 우리의 강은 원래 이렇게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로운 땅에 사는 사람들도 평화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에 인격을 부여하며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존중하였을 것입니다.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스릴 수 있다는 오만함에 국토 전체가 곳곳에서 파헤쳐지는 여전히 존중되어서는 안되는 정책이며 가치입니다.
오늘 발길 따라 걷는 곳곳에서 불어오던 평화바람과 자연의 순리를 따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행복한 순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대한불교조계종 동학사 비구니 스님들의 기도회와 원불교 천지보은회 교무님들의 기도회가 아침과 점심에 진행되었습니다.
아침 출발에 앞서 열린 동학사 비구님 스님들의 기도회에 하루 순례길에 참여하셨던 동학사 학감이신 경진스님은 오늘 순례를 참여하시고 소감의 말씀을 순례단에 보내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원각경 보안 보살장에 ‘一身이 청정하면 多身이 청정하고, 多身이 청정하면 一世界가 청정하고, 一世界가 청정하면 온 세계가 청정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온 우주법계의 생명체가 하나임을 알게 하고, 또 그 생명체들을 위하여 100일 동안 순례에 동참하시는 분들이야 말로 마치 차마고도에서 본 순례자들과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부어도 부어도 끝없는 욕망의 독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끊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反問으로 오늘의 잠깐 동참 순례를 마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진행된 원불교 기도의 날에 참석하셨던 성도종(원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교무님은 “운하로 인한 생명파괴를 좌시 할 수 없고 순례단의 뜻과 함께 하고 싶어 참여했다”고 합니다. 교무님은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자 모태입니다. 운하 구상을 하는 자체가 터무니 없습니다. 이건 실용도 실리도 아니며 경제적 이익도 없습니다. 논리적 타당성도 없는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이라며 운하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또 “천지자연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시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보은행입니다. 문명의 도구나 인위적 힘으로 훼손, 파괴하는 것은 배은 행위이며 결국 자멸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셨습니다. 또한 현 정부 정책과 관련하여 “운하는 전면 백지화 되어야 합니다. 큰 안목으로 보아도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자연은 우리의 안목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 정책의 전환을 추고하였습니다.
지난 몇일동안 순례단과 함께 생활한 가톨릭 의정부교수의 김승한 신부님은 얼마 전 순례단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참여하고 싶었다며, “제 개인적인 생각은 예수님이 무능력(무저항)으로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변화시켰듯이, 능력을 믿기 보다는 오히려 무능함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 줄 것”이라며 개발과 물질에 치우쳐 있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사랑과 자비, 그리고 순수함으로 회귀하여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전북 완주에서 활동하시는 양용석 목사님은 “최근 현안, 특히 운하 관련하여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에 대해 배우고자 참여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장로도 그렇고 제대로 된 가르침을 교계가 한국사회에 전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책임감을 느끼셨습니다. “운하는 국부낭비, 자연파괴, 후손들에도 큰 짐이 됩니다. 21세기인 지금 시대에 19세기나 쓰던 운하 사업을 펼치려고 하니 대통령은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일반인에게 공개해야 하는 운하 정책을 기밀로 하는 비겁한 행위를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앞으로 “시대가 요청한다면 다양한 방안으로 참여할 것이며 참회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