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황돈영 / 시민참여부 간사
10일간의 여정으로 떠나는 녹색순례! 민족의 정기가 숨쉬고 있는 백두대간으로 떠난다고 하니 한편으론 설레임이, 한편으로 두려움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원도 태백산을 시작으로 설악산 아래 점봉산까지의 구간은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생태계가 빼어나고, 현안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첫째날, 태백산으로 향하는 길에 미군 폭격장 이전 반대 시위 준비가 한창이었다. 매향리 미군 폭격장이 폐쇄되면서 백두대간의 한복판인 태백산으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하늘도 슬퍼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빗줄기는 더욱더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그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태백산 천제단으로 향했다. 천제단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시위현장으로 달려갔다. 집회장은 비장함과 분노로 가득찼다. 지역대표의 삭발식과 화형식, 과격하게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고 후세들이 살아야할 태백산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삭발식과 화형식을 한 것이다. 투쟁의 현장을 뒤로 한 채 우린 발걸음을 돌렸다.
둘째날, 태백산 도립공원에서 출발하여 하루종일 걸었지만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태백시를 벗어나 삼척시 경계로 들어왔다. 태백시내를 지나서 낙동강, 한강, 삼척에서 동해 바다로 흐르는 오십천의 발원지 피재(삼수령)을 넘어 갔다. 삼수령은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시원이 이 고개에 모여 있다하여 삼수령이라고 붙여진 것이다. 피재에서 점심을 먹고 또 걸었다. 계속 걸어도 태백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가운 햇볕에 뜨거운 아스팔트길에 점점 지쳐갔다.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질때 태백시를 벗어나 삼척시로 들어왔다. 숙소인 삼척 번천리 폐교까지 약 40㎞정도 걸은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양말을 벗어보니 오른쪽 발바닥에 500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이 잡혀버렸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물집이라니~’ 긴 여정에 몸은 천근만근, 쉬고 싶었지만 태백지역의 지역경제와 폐광민의 아픔을 듣는 시간이 우릴 기다렸다. 정부의 석탄합리화 정책에 의해 태백지역의 탄광은 거의 대부분 문을 닫았고 그로 인해 도심은 공동화 현상으로 지역발전은 커녕 텅 비어있는 상태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핵폐기물시설을 유치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고민거리가 주어졌다. 적절한 대안이 필요하다. 백두대간을 보존하려니 지역민의 생계가 막막하고 지역민을 위해 개발하려니 백두대간이 망가지고…공통분모가 나오지 않는 서로소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셋째날, 기획팀에서 일정변경을 했다. 지난 밤 각 모둠별 평가에서 순례가 너무 걷는 것에만 마음이 바빠 백두대간의 문화와 역사, 생태와 환경을 차분하게 느끼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30km가 넘는 일정의 일부를 줄이기로 했다. 댓재까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영동의 첫 마을인 삼척 고천리 삼거리에서 본 일정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은 무릉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쌍용시멘트 채석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순례단이 도착할때에도 어김없이 굉음이 들려왔다. 내 발아래에서 진동하는 미동은 자연의 아픔으로 느껴졌다. 녹이 슬도록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시설물들이 인간들의 비양심을 적나라하게 엿볼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동해시내를 지나 도착한 마을은 그야말로 백두대간의 마을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원방재 아래 동해시 삼흥리 서학골 마을이다. 백두대간의 주능선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골 깊은 마을이다. 물 소리, 바람소리, 그 골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마을, 풍경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코끝에 와 닿는 내음만으로도 생태계에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단번에 드러나는 골짜기다. 그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장작불로 생활하고 계신다. 도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궁이와 굴뚝들이 집집마다 있었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개구리, 맹꽁이 소리를 자장가 삼아 지친몸을 아랫목에 맡기고 잠에 들어버렸다.
넷째날, 영서지방으로 접어드는 길목, 백봉령을 넘어갔다. 백봉령 오름길은 42번 국도가 걸쳐 있어서 아스콘 도로를 지겹게 올라야 한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도 열심히 고갯길을 걸어 올라갔다.
백봉령 정상에 올랐을때 또 다른 아픔과 상처가 순례단의 눈앞에 처절하게 펼쳐져 있었다. 자병산이었다. 국가자원 공급이라는 목적을 앞세우고, 산업화에 꼭 필요한 토대라는 필요성이 덧붙여지면서 여러 기업들이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백두대간 자락으로 몰려들었다. 이중 가장 심각한 것이 석회석광산이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곳이 ‘라파즈 시멘트사’의 동해시 자병산 석회광산이다. 순례단이 쌍용 광산을 넘어 자병산 맞은편 백두대간의 언덕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직 항공촬영을 해야만 전체 지역이 다 잡힐 정도로 너른 지역이 훼손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사가 국내 으뜸의 석회암 식물의 보고인 자병산 정상을 모두 잘라냈기 때문이다. 백리향, 솔나리, 한계령풀, 가는대나물 같은 백두대간의 여느 산지에서도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의 터전 자병산 정상부가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이다. 얼마나 아파하고 있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절인다.
다섯째날, 임계리 임계초교 화성분교에서 점심을 먹고 교정뒤쪽에 50년이 넘는 마을 숲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도 태풍 루사와 매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고 절벽은 더 깎여져 있었고 작은 다리들도 끊어져 있었다. 마구잡이식으로 벌이고 있는 토목공사로 인간들이 살기에는 편리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생태계에는 멸종의 위기를 맞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임계리 골짜기 맨 위 평양마을에서 고개하나를 넘어 삽당령에 도착했다. 노면에 옛길의 흔적이 뚜렷했다. 이 길을 다녔던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운치있는 길이었다. 마실 나가고 장보러 가던 길, 보부상의 봇짐이 오가던 길, 시집 장가가 가는 가마가 오가던 길, 그 길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다만 지나는 사람들이 적어 낙엽이 쌓여 있을 뿐이다. 고개를 오르는 길에 동의나물, 둥글레, 태백제비꽃 살포시 피어난 풀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머리 위에는 소나무, 당단풍, 고로쇠, 피나무, 졸참나무 같은 자연숲들이 서로 하늘을 먼저 보겠다고 비상하듯이 뻗어 오르고 있었다.
해 떨어져서 대기리에 도착했다. 겨울이면 폭설이 온 마을을 고립시킨다는 동네. 눈이 많이 내려 대관령 영동고속도로가 막힐 때면 텔레비전에 눈에 지친 노루나 고라니가 마을로 내려오는 모습이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바로 그 동네가 대기리다.
여섯째날, 백두대간 난개발 현안 중 고랭지 농업단지도 무시할수 없는 환경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 전체가 겉가죽이 벗겨진 듯 드넓은 밭으로 흉물스러울 정도로 펼쳐져 있었다. 기업형으로 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농약은 무수히 많이 뿌려지고 더불어 토양은 오염되고 비가 오면 오염된 토양은 하천으로 씻겨 내려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씻겨져 내려간 밭을 채우기 위해 멀쩡한 산을 깎고 이렇듯 고랭지밭이 자연훼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피동령을 지나 도암댐을 만났다. 유역변경식의 대표적인 댐으로 만들어졌으나 인간들의 교만함으로 지금은 아무런 쓸모없는, 또한 골칫거리로 남아있는 댐이 되어버렸다.
일곱째날, 백두대간 최고의 숲길인 오대산 전나무숲길을 걸어갔다. 그동안의 피곤함이 한순간에 풀어질 정도로 싱그러운 내음새와 공기가 우릴 맞이해 주었다.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그리고 북대사에서 점심시간 겸 휴식을 취하고 명개리로 향했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골고루 섞여 원시림형태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오대산을 벗어나려 할쯤 하늘에서 갑자기 폭포수 같은 비가 내리쳤다. 1시간정도 비가 와서 다행이었지만 오대산처럼 큰 산에서는 아주 위험한 일이 아닐수 없다. 갑작스레 계곡물이 불어날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덟째날, 삼봉휴양림을 떠나 점봉산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 오후 각각 하나씩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는 기획팀의 설명에 대원들은 피식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제는 그 어떤 길이든 자신있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재현 군, 박경수 군, 윤기돈 국장, 네 명은 뒷정리를 다 하고 맨 마지막으로 일행을 뒤따라갔다. 10분정도면 따라잡을수 있겠다 싶었는데 첫 번째 언덕은 용납하지 않았다. 자연을 결코 이길수 없다는 진리를 망각해 버린 것이다. 어렵게 따라잡은 일행과 함께 아침가리골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갯길로 꼽히는 아침가리골 주변에는 1급수인 내린천과 계방천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꼬리치래도룡뇽도 만날 수 있었다. 새끼는 발가락마다 있는 검은점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 성체는 두 눈망울이 송아지 눈처럼 크고 귀여웠다. 기나긴 고갯길를 지나 방동약수터에 이르자 하늘에서는 아름답게 펼쳐진 붉은 노을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홉째날, 어느덧 녹색순례의 마지막 날이다. 설악산아래 점봉산에는 양수발전소 댐이 자리잡고 있다. 양수댐 100여 미터 정도 위쪽에는 백두대간 주능선이 있다. 그 능선을 따라 조침령까지 걸어갔다. 능선을 걸어갈 때 곳곳에 있는 여러 야생화와 식물들… 아침가리골 숲길에 이어 잊혀지지 않는 길이었다.
조침령을 지나 마지막 숙소인 미천골 휴양림으로 들어섰다. 들어선후 10여분이 지났을까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순례 첫날 비가 왔는데 마지막날 비로 마무리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0일동안 약 320㎞를 걸으면서 몸은 많이 지쳤지만 벅찬 감동과 아쉬움이 많이 남은 순례였다. 태백지역의 지역경제, 고랭지 농업단지, 쌍용 채석장, 자병산, 점봉산 양수댐 등.. 백두대간을 지키기 위해 할일은 끝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할 우리의 땅 백두대간! 공존을 꿈꾸기엔 아직 멀다는 느낌마져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고 맞서 싸운다면 언젠가는 인간과 백두대간이 공존하는 날이 올 것이고 지금부터라도 공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백두대간으로 가는 길은 끊어져 있다. 분단 현실로 더 이상 북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을 가져본다. 언젠가는 녹색의 깃발아래 지리산에서 금강산을 지나 백두산까지 걸어서 가는 그 날을 기약해본다. 이번 순례 기간동안 백두대간의 일부 구간을 오직 두 다리로 걸어서 온 우리는 앞으로 조국의 산줄기 백두대간을 지켜낼 것이다. 녹색순례가의 한 구절처럼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