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은영 시민참여국장
죽도트래킹은 개인적으로 늘 기대되는 코스 중 하나이다. 사람의 공간과 많이 떨어진, 외롭지만 신비한 금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맨발로 물길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면 세상이 내게 사랑고백을 하는 것처럼 황홀한 기분이 들 정도.^^
흐린 날씨였지만 함께 가기로 약속한 20명의 회원들과 함께 장수로 향했다.
벗, 금강
트래킹 하기 참 좋은 날씨였다. 따뜻하고 햇볕이 강하지 않았다. 멀리 용담댐의 모습을 보면서 시작하게 될 오전코스는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준비체조를 할 때 배가 고프다고 휘청대던 나를 안쓰럽게 보신 손장희 회원께서, 뭐 먹을 거 없냐는 나의 강렬한 눈빛에 꺼내신 것은 오미자 막걸리. 원래 순례 중반부터 먹는 건데 이제는 출발하면서 막걸리 판이 벌어진다. 다 큰 처녀가 아침부터 막걸리 퍼마신다고 뭐라 하시던 회원님들, 어느새 막걸리 ‘한입썩들’ 하신다. 하하호호 즐거운 마음으로 왼쪽으로 보이는 금강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금강트래킹에 참가한 회원들에게 이제 금강은 ‘벗’이다. 함께 걷는 이들도 벗처럼 정답지만 가장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은 늘 보며 걸었던 ‘벗’금강이다. 조용히 우리의 길이 되어준다. 금강을 벗삼는 마음은 참 멋진 일이다.
연화교 쪽으로 올라서니 장수의 금강지킴이 선생님을 만났다. 지역에 손님들이 왔다고 마중을 나와주셨다. 여기서 또, 약간의 주안상(?)이 펼쳐진다. 모두들 발그레한 얼굴로 정답게 이야기 나누고 인증샷도 찍었다. 그러고 보니 금강 말고 또 다른 벗은 술…인 것 같다.^^
오전코스의 마지막은 가막리 마을. 여기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무장님이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가격대비 대만족인 밥상. 뽕잎나물과 상추쌈, 노릇노릇한 조기와 부침개까지. 고기반찬 아니어도 밥 두 그릇 뚝딱 해치울 풍성한 밥상이다.
왜가리를 안은 넉넉한 죽도의 품
오후, 드디어 죽도에 든다. 죽도를 처음 갔을 때 나는 스타워즈라는 영화를 생각했었다. 수려한 바위절벽들이 왠지 어디선가 비행기 한 대가 날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볼 죽도는 어떨까.
무주 방우리와 내도리, 그리고 죽도. 이렇게 세군데는 금강 최상류 경관 좋은 곳으로 꼽는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가막리에 속한 죽도는 정여립이 지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죽도를 휘감아 도는 물길은 70년대에 농지를 만들겠다고 바위를 폭파해 물길을 돌린 흔적이 남아있다. 폭파된 바위의 흔적이 절경이 되어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죽도는 안성면의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굽이쳐 금강과 만난다. 정여립은 조선 선조 때 이이의 천거로 벼슬에 올랐지만 이상적이고 강직한 성격으로 이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후에 전주로 내려와 임진왜란에 대비, 죽도에서 사람들을 모아 훈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에서는 그를 역적으로 몰아 암살을 시도했고, 실제 천반산 주변 죽도에서 화살촉이 나왔다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고 한다.
용담호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어름치나 쉬리가 많이 살았는데, 용담댐이 만들어지고 담수가 되면서 회귀어류가 줄고 생태계도 변한 상태다. 작년에는 자갈길이 많았는데 올해는 모래가 많이 쌓여있어서 모래 위에서 쉬기도 했다.
오늘 오신 회원님들 대부분이 죽도는 처음이라 강길 건너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 만난 강은 엉덩이까지 젖을 정도여서 아이들은 아예 업거나 안고 건너야 했다. 잡아주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강이어서 남성회원들이 중간중간 서서 붙들어주고 끌어주며 건너야 했다. 강을 건널 때마다 더 끈끈해지는 회원들의 표정. 역시 트래킹의 백미는 죽도다. 서먹한 관계를 단번에 해결하는 도움주는 스킨쉽. 금강과 단번에 친해지는 발을 담그는 스킨쉽. 회원들의 끈끈한 우정이 꽃피는 5월이다.
트래킹을 마치고 나가는 길, 죽도의 품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은 하늘을 기품있게 나는 왜가리였다. 죽도의 숲 사이로 둘, 셋 짝지어 앉아있는 그들은 죽도의 품 안에서 금강의 품 안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와 보였다. 왜가리가 그 품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도록 우리 벗 금강을 잘 지켜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