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즐기고, 강과 동화되어
글/ 임대중 회원
사진 / 최수경 대표
★코스 : 둔주암 정자 – 연남면 운주리 – 강변따라걷기 – 청남분교
출발은 밝은 햇살만큼 설레었다. 개인적으로 두번째 참석한 트래킹 모임은 5살짜리 아들이 오지 않았어도 편했다. 지난번에 자연으로부터 얻은 느낌이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두운 기억보단 밝고 기분좋은 기억을 남기는 자연이어서 좋았기 때문이다. 둔주암에 도착하였다. 오르는 길은 초반부에 숨을 헐떡거리게 할 만큼 가파르기도 하였다. 둔주암 정자에 이르기까지의 길 주변에는 많은 소나무들이 있었으며, 잡목들도 많았다. 그러나, 잡목들은 거의 베어지고 소나무들은 가지를 턱 밑까지 쳐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숨차 오르는 것이 당연한 듯한 기분이었다.
둔주암 정자까지 오르는 길의 기억을 뒤로 한 채, 마침내 올라와 본 풍경은 이런 곳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이렇게 가까운 지역에 생각할 것이 많은 이 지형은 나에겐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우선, 한반도 지형의 거울상이라는 느낌, 그래서, 반대편이며, 이지형을 깍아낸 물길은 저항의 기호인 오옴을 연상케 하였다.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의 애정만큼이나 넓고 광활하였다. 우리가 제주도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선 느낌이랄까? 반대편은 평창에 있으니, 거울은 바로 하늘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지 성찰하였던 것 같다. 하늘이 거울이라는 생각. 반골을 가진 선비들이 즐긴 것은 토론이었으며, 그런 장소가 좀 더 아래쪽에 위치한 독락정이라고 한다.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으며, 나라의 돌아가는 형국을 멀리 옥천 이곳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뜻이 다름을 비춰보며 자연에 대한 관조를 즐겼으리라. 마치 그렇다고 맞장구 치듯, 주변의 물들은 숨을 죽였으며, 한가로이 보이는 작은 배 한척이 기슭에 머물러 한반도로 갈 손님을 기다리느라 잠을 자고 있었다. 흠이 있다면, 위의 그런 생각들을 막고 싶었는지 시야의 정면에 양수장을 지어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자유를 억압하는 듯 하여 답답했다.
이번 코스의 주 테마 중의 하나는 제비집 관찰이다. 제비집이 우체국 처마밑 타일 위에 달려있다. 제비 구경하기 어려운 시대다. 제비는 농촌에선 그리도 흔하던 것이 이제는 흔적만 남긴 것 같다. 이렇게 마지막 남은 것 같은 제비는 우리에게 어떤 우편물을 전달하기 위해 우체국 처마 밑에 위험을 무릅쓰고 집을 지었을까? 사람과 가장 친하게 지내며 우리의 고전에도 등장하기도 하는 제비. 어린시절, 아버지와 논에 농약을 뿌리는 주변에 달려들어 날아오르는 벌레를 잡아먹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 때문에 서서히 제비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흥부가의 이야기처럼 혹시 우리가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보낸 것은 아닌지 상상속의 자성을 해보는 것이다. 제비에 대한 쓸쓸한 애정을 담아 손두부 집에서 동동주 한잔을 곁들이니 세잔만에 취기가 돌았다.
모두들 흙 길 속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강을 따라 길게 흘러가는 신작로는 차 한대 다닐 정도였다. 따라 걷는 데 20여분 간이나 차가 없어 편했다. 그곳에서 만난 브로치 모양의 선물을 준 식물과 코일의 원리를 이용한 물봉선의 과학을 느끼며, 자연의 위대함을 나누며 걷는 동안 우리는 편했다. 자연앞에 철없는 상상을 하기도 하며, 즐거웠다. 이런 편안함이 어디에서 왔을까하며 뒤돌아보니 강물 따라, 산능선이 따라오고, 강물따라 하얗게 빛나는 모래사장들이 드러나 있고, 버드나무와 물풀들도 모두 함께 따라왔던 것이다. 모두를 감싸않는 듯한 그들과 그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산 식물들의 어울림,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가 풀고자 하는 숙제가 있다면 모두 다른 우리가 어떻게 자연처럼 조화롭고 어울림속에 아름다움을 만들며 살 것인가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려면, 말없이 편안하게 하늘처럼, 산능선처럼, 버드나무처럼 그저 감싸주듯 따라오면 될 일 이었다. 나중에 깨닫고는 우리는 그 고마움에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일원중에는 보답하고자 강물속에 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 느낌, 포근함이다. 거의 모두는 양말을 벋고,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점점 앞으로 자연과 동화되어 갔던 것이다.
@임대중
민물조개가 물을 걸러주는 정수기 역할을 한다는 사실, 그들마저도 점점 이렇게 껍질만 남아가고 있다. 껑충껑충 날아가 뿌리 뻗은 식물 하나는 바닥에 철사를 드리운 것 같았다. 혹시 자신이 홍수대비하기 위해 돌맹이 그물 만들어 보려는 듯 말이다. 모래밭도 지나고 자갈밭 길도 지나면서 자연스러움에 도취되어 갈 즈음, 나의 이런 기분에 걸리는 무언가가 조금씩 느껴졌다. 모래벌판에서 어렵사리 피운 꽃한송이 피우지 못하고 말라가는 풀 한포기, 그리고, 강주변에 늘어선 갈대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은 모양이어서 달랐다. 모래벌판이 늘어나면 마치 사막이 늘어나는 것과 같아 점점 식물들이 설자리를 일어가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화의 가속화 원인으로 온난화도 포함되리라. 상류에 강바닥을 파헤치는 공사중인데, 우리는 차라리 그 모습을 일부러라도 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산쪽으로 눈을 돌려 포크레인의 손길이 아닌 신의 손길을 느꼈다.
날씨가 이상해져서 민들레는 두번째 번식에 들어갔다. 상황이 안 좋은 시절 후손에 대한 욕구가 높아져 높은 번식력을 나타내게 된다. 무엇이 민들레에게도 상황이 안좋은 것으로 만들었을까? 이런 식물들의 조그만 변화가 우리에게는 어떤 신호일까? 경고의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어느 교수님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착각하고 있다. 엄청나게 위기를 극복해 왔으며, 우리 인류를 잘 지켜 왔으므로 앞으로도 잘 될 것이라는 낙관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태초의 지구로부터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잊고, 우리가 지금 당장에 매몰되어 있다면, 우리에게 다가올 거대한 우주 질서의 흐름속에서 소외 될 것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의 느낌도 소중하단 생각이다. 또한, 그런 느낌에 귀를 기울여 후손도 지키며, 지구도 지켜내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폐교를 귀농인을 위한 학교로 변모시킨 곳이다. 아자학교인데, 그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우리는 마지막 소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널뛰기도 좋았다. 서로 도전하며 즐거워했다. 원리에 빠삭한 교수님, 예전에 타보신 아주머니, 혈기와 실천주의자 청년,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 그러나, 이론보다는 실제였으며, 혈기보단 경험이었다. 두 분의 널뛰는 모습은 서로간의 호흡과 널판 반동원리를 몸으로 체화한 것이었다.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무엇이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품어야 할 가치는 무엇이었는가에 관심이 갔다. 그것이 우리 안에도 항상 존재하여 그로부터 우리에게 자연이 묻어나오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더 많은 트래킹 사진은 활동사진첩과 회원사진첩에 있어요^^
* 녹색연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2-28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