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소짓게하는 갑천순례 – 이문호 회원 후기

2010년 9월 1일 | 갑천자전거순례

자전거로 만나는 착한 갑천여행

                                                                                                                      작성 / 대전충남 녹색연합 회원 이문호
                                                                                                                             충남대 동물자원생명과학과 4학년
                                                                            
어느덧 9월이 코앞이다. 갑천 자전거 순례를 다녀온 지 달포가 되어간다. 대학 4학년이라 마음 편히 놀지 못하고 학교 실험실과 집을 반복하는 생활이지만 문득 갑천 자전거 순례가 떠올라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느 방송에서인가 “뜨거운 감자”의 보컬 김C가 왜 악보를 만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악보는 없어요… 노래를 불러봤는데… 이게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이 됐는데 기억이 안나요. 그럼 이건 별로 안 좋은 멜로디인 거죠… 어제 불렀던 게 오늘 기억이 안 나면 그건 ‘안 좋은 걸 꺼야’라고 생각하고 접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도 생각나면 ‘역시 괜찮으니까 생각이 나는 거지’라고…”
갑천 자전거 순례를 기억하려 애써 기록하고 사진을 남기지 않아도 그 날들이 떠오르는 것은 (김C의 말을 빌리자면) ‘역시 괜찮으니까 생각이 나는 거지’인 듯하다.
갑천 자전거 순례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올 봄이었다. 학기 중에 자원봉사로 녹색연합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평소 자전거 타기를 좋아 했던터라 녹색연합 내에 ‘푸른자전거’라는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자전거를 좋아하니까 여름에 갑천 자전거 순례에 함께 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의가 있었다. 갑천의 발원지인 대둔산에서 시작해서 만년교까지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3박 4일을 여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갑천 자전거 순례는 ‘아이들과 함께’가 아닌 ‘갑천을 자전거로’가 주 관심사였다. 순례를 시작하면서 이 ‘자전거’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되었지만.
3박 4일… 이것이 자전거 순례에 할애되는 시간이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세 차례에 걸쳐 사전답사를 하고,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으며, 순례 중 프로그램을 미리 연습하고, 필요 물품을 준비하기까지 준비기간이 한 달 가량 되었다. 자원봉사대학생인 나도 이렇게 일이 많았으니 순례를 기획하고 진행한 순례 단장님과 담당 간사님은 얼마나 고심하고 준비를 많이 하셨을까!
첫 사전답사는 차량으로 전 구간·숙소를 둘러보았고, 두 번째 답사에서는 모든 선생님들이 자전거를 타고 구간답사를 하였다. 총 구간 거리가 50여km 였는데, 이것을 하루 만에 자전거로 돌아보는 것이었다. 가끔 자전거로 장거리 주행을 하는 나였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자갈길, 흙길, 뚝방길을 달리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자전거에 익숙치 않은 선생님도 있었는데 끝까지 함께해서 답사를 마쳤다는 것에 그 선생님이 새삼 대견해진다.
순례에서 내가 맡은 일는 안전팀이었다. 안전팀은 2명이 대열의 선두와 후미에서 길잡이와 차량통제 등 주행 중 안전에 중점을 두는 역할이었는데, 아마도 자전거 순례 중에 나만 홀로 마음껏(?)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것 같다. 순례단은 안전을 위해서 되도록 오른쪽 한줄로 주행하였는데, 나는 차량통제를 하다가 선두로 복귀하는 등 변화가 많다보니 대열의 왼쪽을 나의 길로 내어 주셔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중에는 안전팀으로, 자전거에서 내려서는 모둠에 들어가 아이들과 어울리고, 일손이 부족하면 지원팀 돕는, 나름 팔방미인이 안전팀이 아니었나 싶다.

▲갑천순례 발대식 모습
순례 첫 날. 일찍 녹색연합 사무처에서 짐을 싣고 출발지인 만년교로 향하였다. 만년교에는 이미 많은 순례 참가 학생들과 가족들이 모여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는 마냥 출발준비에 신경이 쓰여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날에 도착하면서 보니 참가학생들보다 이 부모님들께서 대단하신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덥고 힘들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자연을 느끼고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분들의 생각 이상으로 아이들이 많이 느끼고 생각했을 거라고 자신한다.
캠프경험이 없는 나였지만 이 갑천 자전거 순례에서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었는데 마을조사가 그 중 하나였다. 순례 중에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오전에 모둠별로 마을조사를 했는데, 마을조사는 마을을 돌며 어른들에게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고사리 손이나마 일도 도와 드리면서 마을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또, 순례 중 마을조사에서 모아졌던 이야기는 순례 마지막 밤에 아이들이 직접 연극으로 만들어서 공연을 했다. 마을조사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이 이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을까. 세상이 흉흉하다 하여 모르는 사람은 일체 경계하게 되는, 구더기가 무서워 장 담그기는커녕 장독마저 멀리 치워버린 요즘 아이들이 어른들께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마을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큰 기회인 것 같다. 순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도 어르신들에게 인사드리고 또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안전교육하는 모습

▲마을조사후 어른신과 사진
역시 가장 특별한 것은 3박 4일 동안 자연과 함께했다는 것이다. 갑천의 발원지부터 시작한 여정이 상류, 중류, 하류로 이어지면서 어류채집과 물놀이, 하천자연도평가를 통해 그곳에서의 생명과 주변 환경에 대해 직접 알아가는 것이 계속 되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어류채집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호종개도 볼 수 있어서 강의를 해주셨던 선생님도 놀라셨던 일도 있었다. 여울, 수초 그리고 자갈과 모래가 있어 다양한 생물종이 많았던 자연하천과 돌과 모래톱을 밀어버린 곧고 넓은 인공하천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이었다. 더운 날씨에 3박 4일을 달리고 물장구 치느라 아이들도 지친 기색이었다. 아이들도 힘들고 선생님들도 힘들었지만, 사실 난 이 마지막 자전거 탈 때가 제일 즐거웠었다. 대열의 옆에서 앞뒤로 다니며 아이들을 격려하고 한 마디씩 주고 받고, 장난도 치고 파이팅도 외치고. 아마 그 때 내 얼굴을 봤으면 뭐가 저리 신나나 했을 것이다. 이 때 만큼은 안전팀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자전거타기를 즐기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연하천 구간을 지나 만년교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나흘 만에 보는 가족들은 얼마나 대견하고 반가웠을까. 군대간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을 때 그 기분 이었을 것 같다. 열심히 부채질 해주시고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먹이려는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들은 사나흘동안 땡볕도 자갈길도 수풀도 다 헤쳐 나온 역전의 용사들인데 하하.
해단식을 끝으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족의 품으로 보내는데, 일정을 마치고 짐을 덜어놓았다는 생각보다 역시 아쉬움이 컸다. 겨우 며칠이었지만 내가 정을 준 것보다 아이들이 나에게 더 큰 정을 준 것 같았다. 자전거가 시작점이 되어 나흘간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또 함께한 여러 선생님들께 배우는 순례가 되어서 감사하고,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책으로는 배울 수 없었던 큰 경험을 얻은 기회였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받는 갑천 자전거 순례가 되어 아이들에게 갑천과 자연을 사랑하는 기회를 주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