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알람소리에 인기척을 시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새 들려오는 침낭 바스락거리는 소리, 누군지 모를 여인네의 코고는 소리들을 고스란히 들으며 잠을 설친걸 누가 알아주나, 늦잠은 단체에서 용납이 안 되는 법, 눈을 반만 뜨고 세면장으로 향한다.
아!!!!!!!!! 상쾌한 이 공기, 차디찬 지하수, 산봉우리부터 덮어 내려오는 새벽안개…….
지금 이 순간 난 설악에 푹 빠져있구나…….
산허리까지 내려오는 운무 밑에서 먹는 아침밥은 꿀맛이고,
한 끼 식사 함께했다고 벌써 친해진 모둠끼리는 정다운 대화가 오고가는 보기 좋은 풍경.
이제 점심밥과 반찬을 도시락에 채우고 오늘산행의 일정을 알리는 박그림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산양이 서식하는 길을 따라 올라가보면서 그들이 남겨놓은 똥과 족적을 찾아보자.
그들이 쉼터가 자칫 훼방 받을 수 있음을 미안해하면서 잠시나마 우리도 위기의 산양이 되어 세상아래를 내려다보자.
그리고 산양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함께 안타까워 해 보자.
장수대 캠프장에 놓여져있는 구름다리를 건너서 입산금지 표지판이 붙은 쇠철조망문으로 개구멍치기를 해 들어간다.
이렇게 허가받지 않은 곳을 당당히 들어가고 있음이 박그림선생님 덕임을 고마워하면서, 또 가지 말라는 길을 기어이 가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식 등산로도 아니라 잡목이 우거진데다 낙옆층이 쌓이고 쌓여 두터운 스펀지처럼 푹신푹신한 그 길은 더욱이 하늘을 가린 교목의 가지들 때문에 어둡고 습하기 그지없는 산길이었다.
우리지역 대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이곳 특유의 식물들이 발길 옮기는 눈을 잡아당기고, 이름도 헷갈리는 다양한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우리의 식물에 대한 상식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챙겨온 간식거리인 감자나 오이 등을 서로 나누어먹으며 이제 본격적으로 위험한 길로 들어서려한다.
한사람씩 천천히 앞을 똑바로 보고 가지 않으면 내려깎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쳐서 다시는 제2회의 행사를 치루지못하는 지경에 이를 위태스런 산양길.
산양을 따라다니는 이 길은 늘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길로,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욕심과 허심을 버려야 하는 길임을 잘 보여주고 있었으니
아마 박그림선생님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발아래 아찔한 곳까지 다다랐을 때 산양의 똥을 확인할 수 있었다. 950m의 고도.
새끼와 어미의 것으로 추정하는 산양의 똥은 영역을 표시하는 의미로 파악이 되고, 그들의 작은 뿔로 문질러 대서 껍질 달아깍인 나뭇가지들도 또한 영역표시의 하나라는 것도 실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아래 펼쳐진 가느다란 실선이 한계령을 넘어가는 도로가 아닌, 실개천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나,
저 건너 대승폭포를 숨기고 있는 기암절벽들 사이사이에 스코프로 바라보면 노닐며 뛰어다니는 산양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만은…….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 이제 더 욕심을 내어 더 높은 곳까지 도전을 해본다.
이제 오르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려 오르면서 한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구역들.
몇몇 사람들은 오르다 오르다 더 오르길 포기하고 주저앉았으며, 굴복하지 않은 용감한 이들에게는 그에 마땅한 선물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어져 펼쳐진 산양의 화장실.
바위아래에 수북이 쌓여져 있는 똥들이 있는 곳. 바로 산양의 쉼터가 그것이었다.
저 발아래 우리가 묶는 장수대수련관 운동장이 초록의 도화지에 코딱지처럼 찍혀있다.
초록의 수틀 위에 수마가 핥고 간 계곡이 명주실처럼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어느새 하늘과 아주 가까운 곳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내려가는 길. 서로 건네주는 손길에 의지하고, 누군가 매달아놓은 자일에 의지하고, 뒷사람 배려해 발놓을 곳 깊게 패여 주는 배려, 녹색교육자 연수가족은 그렇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장수대 캠프장에서 정말 꿀 같은 점심을 먹고, 우린 이번에는 설악의 관광인이 되어보기로 하고, 박그림선생님은 가이드가 되어보는 시간이다.
대승폭포로 올라가는 길은 오전 올랐던 산과 마주하는 도로건너편에 있는데, 88m아래로 추락하는 물줄기를 폭포 상층부에 눈높이를 맞추면서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차라리 험하더라도 오전에 산양의 길이 나았다 싶다.
수많은 등산객들로 인하여 등산로는 이미 길이 아닌 상태. 이게 무슨 등산로란 말인가.
난 눈물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나무에게 미안해,미안해를 연발하며 올라야 했다.
아름드리 키높은 소나무는 그 뿌리의 반을 벌거숭이처럼 내밀고 흉물스럽고 위태하게 걸쳐 서 있고, 뿌리를 지지시켜야 할 흙들은 거의 사라지고 산산이 부서져만 가는 돌멩이들과 발조차 디딜 수 없는 경사언덕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나마 복원공사로 인하여 친절하게 놓았다는 돌계단은 어른무릎높이보다 더 높아 편안하고 안전한 인체공학적인 기준과는 거리가 먼, 병을 안고돌아가야하는 무성의 몰염치한 공사로 들어앉아 있었으니…….
인파가 그나마도 덜한 대승폭포 등산로도 이정도이건만, 대청봉이나 설악동의 경우는 또 어찌하리오…….
외국의 자연보존과 야생동물의 보존을 위하는 국립공원의 의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우리의 국립공원은 철저히 인간만을 위한 위락공원으로서의 본분만 다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대승폭포에 오르는 동안 그 무질서하고 황폐한 모습에 찡했던 가슴을 단번에 씻어주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반듯하고 세차고 웅장하게 내려오는 물줄기의 장엄한 모습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와 감동을 본 만큼 베풀 줄 아는 인간이었으면…….
우리는 박그림선생님의 말씀대로 눈을 감고 소리를, 바람을, 기운을 느끼는 작업을 잠시나마 해 본다.
알싸한 폭포수의 물방울들이 코끝으로 날아와 싱그러운 초가을 바람과 부딪혀 얼굴위로 쏟아져 내려온다.
이대로 양떼 몰고 가는 목동 같은 구름을 벗 삼아 머무르고 싶다. 한참을…….
모두 일어나 단체사진을 찍으매 이래저래 거부 없이 많은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시는 박그림선생님은 참으로 말도 잘 들으셨다.
하하하 그분이 찍어주실 때 우리역시 재미있고 터무니없는 주문에 고개를 돌려주니 말을 잘 듣는다고 하셨듯이…….
장수대 매표소 앞에 맨땅을 안방삼아 모두 지쳐 뻗어있다.
우리는 오늘 너무 긴 산행과 힘든 산행을 하였음에도 그러한 우리더러 그것은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산행이라 탓만 하신다.
호랑나비님은 내년엔 절대 안 오지…….하셨지만, 그래도 절대 힘들었다고는 하지말자…….하신다. 진짜로 내년에 아무도 안 오면 어쩌냐고 하시면서…….
야생동물의 통로를 보러가기로 한 계획은 내일로 미루고 숙소로 돌아간다.
이번에 가면서 건너는 계곡물은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노곤한 발을 맛사지라도 해주듯 여울물은 너무나도 부드러웠고, 냄새나는 발을 씻어주듯 물은 청량하고 더욱 맑기만 했다.
어제와는 또 환하게 달라진 일행들의 표정은 얼마나 재미있는지.
서로 장난을 치고, 물 범벅을 씌우고, 이어지는 까르르 까르르 함박웃음은 설악 어머니품 숲 속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고…….
저녁밥을 빨리 해치우고, 박그림선생님의 동물의 뼈와 똥에 관한 강의가 이어졌다.
마치 5일장에 나온 장사꾼처럼, 그보다 더 재밌게 표현하자면 권금성 앞에 앉아있는 솜다리액자 장사꾼처럼.
우리의 왕성한 호기심을 양껏 채워줄 만반의 태세를 하고 조신하게 앉아있던 선생님…….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모두 축 쳐진 모습으로 등 기댈 벽에 딱 붙어서 약속이나 한 듯이 늘어져 앉아있는 모습에 일침을 가하신다.
“아이들이라면 벌써 이곳에 다닥다닥 달라붙어있을텐데…”
이크! 그 말씀 떨어지기 무섭게 죄다 몰려드는 일행들…재미있다.
산양, 멧돼지, 너구리, 고라니 등의 두개골과 그들의 뼈들, 배설물들. 그리고 각나라의 도감들을 보여주시면서 왜 우린 이런 도감을 만들 수 없는지도 한탄하셨다.
다시 환기하고 이어지는 각 지역 활동에 대한 사례발표와 문제점토론시간.
광주전남부터 시작해 인천, 서울로 이어지는 동안 활발한 지역교사들의 활동상과 내재되어 고민해야 할 문제점들을 나열하며 지역의 교사중 한분씩 지적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대전의 차례.
대표한분이 구두로 설명하고 지적해주는 방식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프리젠테이션자료를 만들어갖고 온 대전은 시작부터 박수로 환영을 받기 시작하더니.
수료이후의 자발적인 활동수업모습. 종주모습. 조류의 관찰과 모니터링활동, 곤충, 야생동물, 식물, 어류채집관찰, 마을조사, 역사문화 등 총망라하는 수업으로 각 분야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수업방식을 설명해나갈때는 관망하는 이들의 입들이 모두 벌어져있었다는 것을 앞에 있던 나만 보았을까…….
고라니나 멧돼지의 똥이나 고라니의 잘려나간 다리, 너구리의 구출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에서 더 눈빛이 빛나면서 부연설명을 아끼지 않으시며 신나해 하던 박그림선생님의 표정은 또 어떠했는지…
각 기행이나 학교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으로 output되는 과정들이 이어지고, 마지막 월평공원과 자연하천구간의 사진설명과 장애우의 환한 얼굴을 끝으로 일련의 사진설명이 끝났을 때의 그 우레와 같은 찬사는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모두 이어지는 부럽다, 장하다. 대단하다…….등의 찬사는 우리선생님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고, 일정에도 없는 질문들로 가득했던 장시간은 또 얼마나 흐뭇하던지…….
갑천의 선생님들이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시간들 속에서 이렇게 장대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고, 그 열정과 분위기가 타단체의 모범이 되었으며, 녹색연합의 하나의 전례 없는 사례가 되어 앞으로 갑천해설사들을 배우기 위하여 대전을 모두 찾겠다는 부담 가는 제안도 끊이질 않았다.
시간은 12시를 향해가건만, 어제부터 이어진 오늘까지의 일정들을 사진 속에 넣어 하나하나 되새겨보자는 의도 하에 박그림선생님, 이희자선생님, 인천 장정구선생님의 사진들을 보기 시작하였다.
역시 이 시간에도 단연 대전의 이희자선생님의 실력은 빛이 났고, 우리 갑천팀의 보배임이 또 한번 증명되어 대전은 막판 다크호스로 부상하여 흥분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정상에 우뚝 서 모든 일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다소 상기된 선생님들도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아도 모두 느끼고 있었으리라.
나 하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런 날이 올 수 있었음을.
그래서 언제나 서로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있음을.
어제의 잠못이룸과 오늘의 피곤, 그리고 만족스러운 교사공동연수를 마친 뒤끝인지 정말 순식간에 잠이 들고 만 둘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