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연수 첫째날

2005년 9월 6일 | 갑천생태문화해설사

새벽부터 무섭게 울며 비를 쏟아내는 하늘도 무심하시지.
가족에게 미안해하며 어렵게 얻어낸 먼 길 여행길의 마음을 왜이리도 무겁게 하시는지…….
추절추절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받아내며 남문에 모인 일행은 왠만한 집 자취방살림만한 짐을 부랴부랴 차에 우겨넣고 마음만은 가쁜하게 신탄진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중부고속도로를 들어서면서부터 비는 대전만 왔던 것인가…….
더없이 한가한 도로풍경이나, 햇살 없는 축축한 공기로 인하여 상쾌함 그지없는 느낌의 시작길이 이번여행 내내 이어지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에서 홍천으로 나아가 인제-원통을 지나면서 다른 팀보다 월등히 일찍 도착할 것이라는 연락에 여유를 갖고 점심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여기까지 왔으니 황태구이는 먹어봐야한다는 의견에 목 좋은 곳에 아담하게 위치한 집으로 들어가 먹으며, 오길 잘했다는 자찬의 대화를 나눌 만큼 푸지고 맛난 황태구이백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식사 후 여유 있게 들어간 장수대는 너무 부린 여유 탓에 우리 팀은 꼴찌로 도착하였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없이 일행에 합류해 가쁜 숨을 돌리며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고 쳐다보니 모두의 한 가운데에 바로 산양을 쫓는 사나이 박그림선생님이 계셨으니 반갑기 그지없고.
우린 간단한 선생님의 인사와 함께 한계사터를 향해 줄지어 올라갔다.
습한 풀숲의 기운과 하늘을 가린 송목들 사이로 난 오솔길.
그 오솔길을 한동안 올라가니 훤하고 평평한 한계사터가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절터에 지금은 복원된 3층석탑이 외로이 남아있고, 연화문이 새겨진 광배 앞에 부처님이 앉아계셨을 8각의 대좌만이 병풍처럼 펼쳐진 가리산 기암의 절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보이는 토끼와 산짐승들의 배설물들에 우린 산양의 똥임을 먼저 외친다.
하나 산양은 이렇게 낮은 곳에는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설악산국립공원내에 설악산과 벗하며 위치해 있으면서, 한계령에서 백두대간을 향해 달리다 조금 벗어나 뻗어나간 설악산 서능선의 최고봉인 가리산.
그 높고 험한 가리산 줄기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가리봉(1519m)이나 주걱봉(1401m) 등을 눈에 넣을 수 있는데, 산양은 이렇게 인간의 접근이 쉽지 않은 능선 중턱에 자리를 틀고 이동하며 서식하기 때문이다.
8각대좌에 가부좌 틀고 앉아 저 마주한 가리산줄기의 주걱봉 바위아래 어디쯤에서 또 다른 눈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을까…….그 내려다보는 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나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 눈은 바로 인간을 내려다보는 산양의 것이며, 그에 제일 신나할 사람은 바로 작은뿔 박그림선생님이 아닐까.
한계사터를 뒤로하고 장수대로 내려간다.
한계령을 넘어가는 이 도로를 개통하면서 이곳을 기념하는 한옥건물을 지어놓고 장수대라고 부리웠다는데 별로 중요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극상으로 갈 활엽수림을 애초에 제거하고, 모습 수려한 소나무로만 키 크게 잘 키운 캠프장을 가로질러 간다.
한옆에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도 그렇고, 하늘도 가려져 안보이는 송림의 캠프장은 한여름만큼은 설악이 인간에게 허용한 소중한 잠자리, 안락한 잠자리인 것이었다.
자연의 선물에 감사하며 둘러보다가 불연 듯 큼지막하게 빛나는 것이 있어 시선을 멈춘다. 초록의 싱그런 빛깔과 보색으로 더욱 빛나는 붉은색 전자시계의 글씨가 유난히 발광한다.
더 선명하게, 더 또렷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이왕이면 더 크게, 이왕이면 더 빛나게 번쩍이는 “친절한 시계탑”.
한폭의 동양화에 페인트 한점이 튀어버린 꼴. 왜 이곳에 이런것이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의 숙소로 가자면 시냇물을 건너야 한다.
지난 8월로 물질과 족대질은 대단원의 마감을 했노라 선언했것만, 또 양말을 벗어야 한다.
맑고 투명한 여울 속에서 매끄럽고 선명하게 빛나는 조약돌들을 밟고 간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물이라면 그냥 몸을 담가도 아시울게 없을 듯 했다. 그러나 9월도 행색을 하느라 제법 발이 시리다.
도안동 갑천에서, 유등천 구만리에서 건너던 시냇물이 불연 듯 생각난다. 우리가 사는 터전에 흐르는 하천의 물들이 설악의 물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 되는 꿈을 잠깐 꾸어본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매미로 인하여 설악의 하천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어 황폐 그 자체로 변해버렸다.
더 이상 설악의 계곡이라 할 수도 없을 만큼 그 모양은 마치 강도에 유린당한 처녀의 헝클어진 매무새 같았다고나 할까.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강우 때문에 계곡의 양쪽을 지붕처럼 덮었던 아름드리나무들은 송두리째 뽑히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고, 상류에서 굴러 내려온 암반과 토사는 어지럽게 내려와 흩어져 하천의 지형자체를 바꾸어놓았다.
뿌리내리려면 몇 년을 있어야 할 척박하고 메마른 하천의 가장자리는 생태계가 완전 파괴되어 황량하기 그지없었고, 하늘로 머리를 풀어헤친 듯 나뒹구는 고목의 뿌리들은 마치 수습 못한 전쟁의 시체들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아직도 그렇게 누워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어김없이 생명의 흔적들은 찾아들고 있었다.
물을 건너고자 또는 마시고자 내려오는 귀여운 야생동물들의 발자국과 그들의 배설물들이 그나마 계곡의 쓸쓸함과 을씨년스러움을 달래나 주듯 열심히 도장을 찍으며 다니고 있었으니.
혹여 밟아 덮어버릴까 조심스레 걸으며 찾아봤지만, 어제까지의 잦은 비로 인하여 이미 발자국은 지워져있었고, 내일을 기약하며 아쉽게 숲길 위로 올라올 수밖에.
지역의 교사들은 참으로 식물지식에 해박하시어 지나는 길에 꽃이나 나무는 서로 질세라 아는 바를 열창하시니 입 잘못 열어 창피당할까, 연신 난 그들의 해박함에 감탄만 하고 있었다.
특히 인천녹색연합에서 오신 송홍선선생님은 저서도 상당수 있으신 만큼 연수자들에게 틈나는 대로 식물의 이해를 위해 설명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 당도한 곳에 바로 폐교된 숲 속 분교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가 묶을 장수대수련관.
이곳의 화전민들을 모두 몰아내고 국립공원으로 묶으면서 유일하게 남겨놓은 곳으로 아담한 운동장과 자그마한 한 동의 교사만이 설악의 장중한 품속에서 점처럼 남아 있던 것이었다.
이제 지역별로 분산되어 모둠배정을 받았다.
서울경기, 인천, 대전충남, 광주전남, 설악의 박그림선생님 등 모두 30여명을 산양, 구상나무, 수달, 솜다리 모둠으로 섞어 나누었고, 모둠별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평소의 별칭도 일러주고, 앞으로 2박3일 동안의 일정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으로 짐을 풀었다.
모둠마다 똑같은 메뉴의 식사지만, 그 하는 사람들의 정성과 취향에 맞는 또 다른 맛의 결과가 매번 등장한다.
다행히 우리 모둠은 일머리 있고 음식솜씨 좋은 갑천의 이영미선생님과 함께하다보니 뚝딱하면 금방 먹을 수 있는 기동력과 일미를 맛보게 해주셨고, 착하고 멋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을 안 한 일색의 노총각들이 솔선수범하여 돕고자하니 분위기 좋고 시종일관 화기애애 정다운 수달모둠을 만들어갔다.
밤 시간은 인천녹색연합 유종반선생님의 발제로 “녹색연합에서 하는 녹색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주제로 50여분을 말씀해주셨다.
이어 박그림선생님이 그간 활동하시며 모은 자료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면서 왜 그가 산양에 집중하는가, 설악의 현재는 어떠한가를 감동 깊게 보여주셨다.
설악이 보여주는 하루일과, 일년의 영상은 시와 같은 박그림선생님의 내레이션과 만나니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그 아름답고 찬란한 우리의 마지막 보물 설악이 인간에게 정복되면서 펼쳐져간 유린과 파괴의 현장, 그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얼마 안남은 생명 있는 움직이는 것들의 안타까움, 또 어쩌다 끝내 삶을 영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불쌍한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욕심의 끝이 과연 어디까지일 것이며, 그 말로를 우려하지 않는 정책자들, 이기와 내 안위만 채우는 탐방객들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어…….
난 로드킬당한 녀석들의 사진이 나열될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침낭으로 몸을 쌓고 누운 채 고요와 정적의 밤을 맞는다.
내가 누운 이곳 장수대수련관 창 너머로 바라다 본 설악의 밤하늘과 이 숲을 둘러싼 산의 신성한 기운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기만 하건만, 설악의 어머니인 대지는 이 순간도 말없이 그 고통에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구나.
설악의 얼굴 반달가슴곰도 덫에 걸려 고통 속에 죽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며 이제는 추억속의 동물이 되어버린 지금.
곧 그를 따를지 모를 산양도 그 위기를 더 이상 위기로 여기지 않는 무심한 현실.
1등인 곰만 있고 2등의 야생동물은 안중에도 없었던 우리의 세속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노루와 너구리가 설악의 진귀한 동물로 자리매김할 기막힐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절체절명의 자연의 충고들을 왜 왜면하고들 사는지…….
내일은 강행군이라는데 청하는 잠은 오지도 않고 이래저래 많은 생각 속에 어느덧 액정화면속에 글자는 5시를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