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녹색연합 공동탐사>
납만들고개 고속도로 ‘세동강’
7. 금북정맥 취암산-차령고개
<글:이 용 대전일보 기자, 도움:정기영 간사, 탐사기간:3월15일~27일>
금북정맥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천안 취암산(천안 목천면 응암리, 229m)-차령고개 구간도 예외는 아니다. 도로와 철도, 터널 등으로 끊기고 골프장 조성과 쇄골재 채취 등의 개발행위로 인해 정맥의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취암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금북정맥은 납만들고개-돌고개-한치고개-굴머리고개-애기미고개-고려산-고등고개-덕고개를 거쳐 차령고개에 이른다.
▲돌고개와 한치고개 사이의 야산이 공장부지로 인해 수 백m나 절개된 채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취암산에서 다시 시작된 탐사는 납만들고개에서 바로 멈춰서야 했다.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에 의해 세 갈래로 끊겨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납만들고개와 도리티고개, 돌고개 등 세 개의 고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로 두 개의 고속도로가 통과하고 1번과 21번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도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금북정맥을 탐사하는 산악인들도 이 곳에선 하산해 이리 저리 도로를 건넌 뒤 다시 산행에 나서야 하는 구간이다. 칠장산부터 태안 안흥의 지령산까지 끊어지지 않은 산길로 정맥 산행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납만들고개 옆의 계곡으로는 골프연습장이 들어서 있고 고갯마루에는 장례식장이 성업중이었다. 정맥의 산줄기를 장례식장이 누르고 있는 셈이다. 도리티고개 주변에는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과 아파트단지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돌고개도 목천읍의 용원리와 도장리를 잇는 도로로 끊긴 상태다.
돌고개와 한치고개의 중간 지점에는 200여m의 산자락이 산사태를 맞은 것처럼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공장부지 조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산을 절개한 것이었다. 조만간 이 곳에 공장 건물이 들어서면 주변지역으로까지 오염과 훼손이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금북정맥은 충남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유일한 기맥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13정맥중 하나로 ‘개발과 보존의 조화’라는 명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금북정맥을 따라 불과 수 십km를 탐사했을 뿐인데 이처럼 파괴와 훼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국내의 다른 정맥들의 현실도 가늠이 되는 대목이다.
돌고개를 지나면 천안 목천읍과 성남면의 경계를 따라 한치고개-굴머리고개-애기미고개-고려산(307m)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은 금남정맥 구간중 드물게 개발행위로 인한 훼손이 거의 없는 곳이다. 저수지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는 강태공들을 뒤로 하며 한치고개 산마루까지 다다르자 평화로운 전원마을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나타난다.
한치고개에서 굴러리고개와 애기미고개를 지나면 고려산이다. 이 곳에는 흙과 돌로 만든 고려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말기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도성이 무너진 후 백제 중흥군이 3년여간 항쟁했던 본거지였다. 산성 아래로는 ‘아야목’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천안시 성남면의 돌고개의 고갯마루, 누군가에 의해 산이 파혜쳐진 채 방치되고 있다.▲
고려산에서 700-800m를 지나면 고등고개다. 고등고개는 대곡리와 고등리를 잇는 도로가 개설돼 있다. 고등리에서 고개를 넘어서자 산이 파헤쳐진 채 쇄골재 채취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대규모 축사들이 산마루를 비집고 들어서 있다. 고등고개와 비룡산(248m) 사이에는 1470m의 경부고속철도 고등터널이 뚫려 있다. 금북정맥 탐사 이후 가장 긴 터널이다.
금북정맥은 비룡산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가로 막히고 만다. 골프장과 1번 국도로 인해 단절됐기 때문이다. 27홀인 골프장인 부지면적이 44만8840평이나 된다. 비룡산을 감싸듯 둘러싸고 있어 산줄기가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 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주변 생태계에 골프장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골프장 동쪽의 마루금을 따라 우회하면 덕고개이다. 덕고개 바로 아래로는 1번 국도와 627번 지방도에서 갈라져 나온 도로가 정맥을 막아서고 있다.
덕고개에서 차령고개까지는 23번 국도와 691번 지방도 사이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능선이 이어진다. 천안과 연기를 거쳐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금북정맥이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구간이다. 차령고개부터는 공주지역으로 진입한다. 차령고개 역시 국도 23호의 차령터널과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의 차령터널 등 두 개의 터널이 뚫려 있다. 그 사이에는 봉수산(366m)이 양 옆으로 씽씽 지나는 차들을 바라보며 외롭게 버티고 서 있었다. <글=李龍 기자, 도움말=대전·충남 녹색연합>
<소박스>
금북정맥 성거산-차령고개 구간 도로·철도만 11개
일제 감정기에 금북정맥도 수난을 면할 순 없었다. 기맥을 단절시킨다며 일인들이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
천안 목천읍 지산리에사 만난 정용운씨(74)는 “흑성산 바로 옆의 유량리 고개와 무지치고개에 일인들이 쇠말뚝을 박아 놓았었다”며 “광복 이후에도 한 동안 철거되지 않은 채 방치됐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개발행위가 금북정맥의 기맥을 무차별적으로 끊어 놓고 있다. 천안 성거산부터 공주 차령고개까지 금북정맥을 타고 넘거나 산줄기 아래로 뜷린 도로와 철도는 모두 11개에 달한다.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각종 국도와 지방도들이 금북정맥의 이 곳 저 곳을 헤집어 놓은 상태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의 지리적 특성상 개발은 불가피하다. 이제라도 금북정맥과 그 주변의 문화유적, 생태환경을 보존하고 가꾸는 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