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로 뚫리고 잘리고 파헤쳐져

2006년 4월 18일 | 자연생태계

<대전충남녹색연합 공동탐사>

난개발로 뚫리고 잘리고 파헤쳐져

5. 한밭지맥

<글:김준호 대전일보 기자, 도움:정기영 간사, 탐사기간:3월15일~27일>

‘한밭지맥’은 금산과 충북 옥천을 경계로 대전을 휘어 감듯 펼쳐진 산줄기의 이름이다. 옛 문헌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지역 산악인들 사이에서 한밭지맥(支脈), 또는 한밭기맥(氣脈)으로 불리고 있다.
주맥(主脈)인 금남정맥의 대둔산에서 갈라져 인대산(666m)-만인산(537m)-식장산(598m)-계족산(420m)에 이르는 30여km의 산줄기다.
금남정맥이 금남호남정맥의 주화산에서 왕사봉, 대둔산, 개태산, 계룡산, 망월산, 부소산의 조룡대에 이르기까지 북서쪽으로 펼쳐진다면 한밭지맥은 금남정맥의 산줄기인 대둔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나간다. 금남정맥과 금북정맥이 충남의 줄기산이라면 한밭지맥은 대전의 줄기산이다.


▲대전-금산간 국도 확장공사로 인해 다시 상하행선 두 개의 터널이 뚫리고 있다.▲

한밭지맥으로 불린 유래는 정확치 않지만 학계나 산악인들 사이에선 익히 알려져 있다. 난개발의 현장으로 방치할 게 아니라 보존이 조화된 개발을 꾀하고 수려한 경관과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복룡 충남대 법학과 교수는 “한밭지맥의 지리적, 생태적 특성을 밝혀 지역개발의 기초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리적 특성, 동식물의 생태계, 하천의 발원지와 활용 가능성 등을 공유하고 심층적으로 조사, 연구함으로써 지역의 문화발전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하지만 대전의 정기를 품은 한밭지맥은 이미 뚫리고 잘려지고 파헤쳐진 채 난개발의 현장으로 방치되고 있다.
한밭지맥이 시작되는 인대산 입구. 산벚꽃과 철쭉 등 봄꽃들의 눈인사를 뒤로 하며 임도를 따라 들어가면 굴삭기의 굉음소리가 먼저 들린다. 대규모 석산 개발이 진행되면서 산이 절개되고 나무들은 잘려지고 있다.
한밭지맥은 북동쪽으로 뻗어 올라가며 자연휴양림으로 유명한 만인산에서 봉우리를 이룬다. 대전과 금산을 잇는 17번 국도의 추부터널 서쪽에 자리한 만인산의 봉수래미골은 대전천의 발원지이다. 태봉고개 남쪽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있다.
만인산은 제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만인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불과 수 백m 떨어진 곳엔 10여년 전부터 대규모 레미콘 공장이 들어서 있다. 신록과 봄꽃들로 덮여 있어야 할 곳엔 거대한 모래산과 자갈밭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대전-금산간 구 도로의 추부터널은 큰트리로로 막힌 채 흉한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
만인산과 달기봉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중부대학교는 만인산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각종 건물을 지속적으로 신축, 학교 부지가 만인산과 달기봉 사이의 능선 부근에까지 확장돼 있었다. 능선 언저리의 깊은 골짜기에는 나무와 숲을 파헤치고 폭 40-50m, 길이 200여m의 골프연습장이 설치돼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한밭지맥은 대전과 금산·옥천을 경계를 따라 지봉산(464m)-마달령-국사봉(391m)-망덕봉(438m)을 거쳐 식장산으로 뻗는다.
대전과 금산의 경계 역할을 하는 해발 400여m의 마달령은 과연 이 곳이 역사적 의미를 지닌 한밭지맥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의 마달터널(650m) 바로 옆에 대전-금산간 국도 확장공사로 인해 다시 상·하행선 두 개의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도로 개설공사로 인해 200-300m는 족히 되보이는 산자락 2-3개가 완전히 잘려 나간 채 흉칙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 경관 훼손은 둘째치고 동물 이동 통로의 단절 등 극심한 생태계 파괴도 우려되는 실정이다. 마달령 옆으로는 석산 개발이 진행중이다.
한밭지맥은 다시 식장산으로 이어진다. 식장산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지만 앞으로 수난이 불가피하다. 이미 식장산 자락에는 대전과 옥천군 군서면을 잇는 곤룡터널(536m)이 뚫려져 있다. 앞으로 식장산 중심부를 통과하는 경부고속철도 터널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경부고속철도 식장산 터널은 대전 도심을 지하화로 시공할 경우 식장산 측면으로 뚫릴 에정이었지만 대전 도심 통과가 지상화로 변경되면서 약 4500m의 장대터널이 뚫리게 된다. 한밭지맥의 기맥(氣脈)이 횡으로 단절되는 셈이다.
한밭지맥은 대전 동구 주산동 길치고개와 응봉상을 거쳐 계족산에서 머무른다. 대전의 5대 명산중 하나인 계족산 주변지역은 도로 개설 등 각종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어지러울만큼 많은 등산로가 나져 있고 그만큼 환경 파괴와 훼손의 우려가 높다.
지역 환경단체와 산악인들은 한밭지맥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대전·충남 녹색연합의 정기영 간사는 “한밭지맥의 상징적 가치와 생태계 보존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보호돼야 한다”며 “하루 빨리 종합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